세상에는 거의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도로를 무단횡단하면 될까 되지 않을까? 고지식한 사람은 이 질문의 답이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겠지만 어느 지역에 오래 살아보면 무단횡단도 문제가 안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일일이 법규를 지키면 사는게 꽤 피곤해 진다.
이런 필자의 말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사실 이런 말은 위험한 것이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무단 횡단'은 우리의 삶속에 수없이 존재한다. 만약 누군가가 모든 위험성을 다 따지고, 모든 법규를 다 따져서 위험하고 법규위반인 것을 다 피하고 지키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살 수가 없고 오히려 위험에 처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할 때도 안전거리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만 신경쓰다보면 도로의 흐름이라는 것을 무시해서 오히려 위험해지거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고지식한 사람들, 일머리가 없는 사람들은 살기가 어렵다. 모든 일이 메뉴얼만으로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유연하기만 하고, 약삭 빠르기만 한 사람도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빨간불인데 대충 건너고 무단횡단을 할 수 있을 때마다 하면 언젠가는 큰 사고를 당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거의 괜찮은 것은 괜찮은 걸까 아닐까?
무단횡단에 관한 앞의 예에서 우리는 어느 지역에 오래 살았던 경우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거의 괜찮아 보이는 것이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전혀 괜찮지 않은 것인지가 통계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수 많은 사람들이 여러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는 데이터가 있을 때에는 우리가 그런 행동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란 어떤 일이 생길 가능성이 지극히 작은데 그 일을 아주 많이 반복하는 경우이며 그 일의 결과가 치명적인 경우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그냥 우리의 직관에 따라 일을 처리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그 행동을 단 한번만 하는 경우라면 판단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그런 일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마다 하는 경우라면 어떤가? 무단횡단을 했을 때 사고가 날 확률이 1%라면 이건 충분히 낮은가? 하지만 날마다 그 길을 다닌다면 불과 3개월이면 사고가 날 확률이 꽤 크다. 그리고 만약 무단횡단처럼 그 사고의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사고가 날 확률이 1%인 것도 굉장히 높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3개월만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고가 날 확률이 이정도이고 그 길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단횡단하고 있다면 사고 확률이 1%면 날마다 그 길에서 사고가 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길을 무단횡단하고 있는데 지난 몇년간 사고가 난적이 없다면 이 말은 그 길에서 사고가 날 확률은 정말로 정말로 낮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율주행자동차가 아주 멋지게 주행을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이런 실험의 성공은 물론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실험을 볼 때도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를 기억해야 한다. 한번 멋지게 주행해서 그걸 촬영하고 동영상을 만드는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자율주행 자동차를 매일 사용했는데도 사고가 안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면서 자동차가 운전을 하는 거의 완벽한 자율주행기술과 운전자가 아예 잠을 자면서 자동차에게 운전을 시키는 완벽한 자율주행기술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있다. 사람이 한명이라도 죽으면 그 사람을 누가 죽였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치안이 불안해 보이는 밤거리를 여자가 혼자 걸으면 될까 안될까? 이에 대한 답이 내가 어제 혼자 걸어봤는데 아무 일도 없던데가 될 수는 없다. 사고가 생길 확률이 작을 때 단 한번 실험해 본 결과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누군가가 그러니까 위험해 보이는 곳은 여자는 무조건 가면 안되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도 거의 괜찮아 보이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은 그런 고지식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먼저 이것이 거의 괜찮아보이는 문제의 경우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작지만 그것을 많이 반복해야 하고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면 상황이 치명적이 되는가? 거의 괜찮아 보이는 것의 문제는 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하다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이왕이면 보다 안전한 길을 택하고, 자주 위험한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방법이고 또한 보험을 드는 것도 방법이다. 즉 비용을 들이면 그런 사고가 실제로 벌어져도 그 피해가 덜 치명적이게 만들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걸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직관에 따르지 말고 데이터에 의존하려고 해야 한다. 인간의 직관은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 앞의 예에서 말하듯 비슷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경우에 얼마나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괜찮아 보이는데도 안 괜찮은 경우가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는 풀기 어려운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피해야 한다. 첫째로 이게 거의 괜찮은 것의 문제인지를 인식하라. 둘째로는 그걸 피할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하라. 마지막으로는 데이터를 구해서 결론을 낼 수 있는가를 시도해 보라. 이 모든 것이 안된다면 결론을 낼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가능하면 보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낯선 곳이라면 괜찮아 보여도 무단횡단따위를 하지 마라. 거의 괜찮은 것을 했다가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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