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사건만큼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일도 없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당연히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우리가 찾는 방향과 규모에 따라 답도 다를 것이다. 나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라는 주제로 몇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여기에 기록할까 한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은 에도시대에도 상업이 번성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에도시대란 도쿠가와 막부 성립때인 1603년부터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1863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일본의 진정한 근대화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에게 통상조약을 강요하기 시작했던 1853년정도부터 시작되지만 일본의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바탕은 일본은 이미 그 이전에 상업이 잘 발달된 나라였다는 사실에 있다.
일본의 에도시대란 조선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임진왜란(1592)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몰락하고 들어선 것이 도쿠가와 막부였기 때문이고 당시에 아주 중요한 교역품이었던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일본으로 전파된 것이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의 도공에 의해서 였기 때문이다. 본래 서양은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 오랜간 실패해서 중국의 자기를 아주 비싼 값에 구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나라는 1656년때부터 자기 수출을 금지한다. 그렇게 되자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일본의 아리타 자기를 대체 수출품으로 쓰게 된다. 후일 이 자기의 포장지를 보고 빈센트 반고호가 흉내내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일어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일본 아리타 도자기의 원류는 바로 임진왜란때 잡혀간 조선의 도공 이삼평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아이폰같은 발명품을 한국인이 만들었는데 그걸 미국에서 만들어서 미국을 부자 만들어줬다는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크다. 자기는 당대에는 아이폰 이상의 고가 수출품이었는데다가 일본은 이렇게 일찌기 네널란드와 교역했고 그를 통해 수입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소통하고 유럽 학문을 배우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이 유럽에 자기를 수출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질문은 던지지 않기 힘든 질문이다.
조선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적 근대화와 경제적 근대화의 불균형에 있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정치적 근대화가 상당히 진행된 나라였다. 중앙에서 관료를 파견하고, 과거제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며, 유교적 이념에 기반한 법치주의를 실현했다. 당시 세계의 봉건적 질서와 비교하면, 조선은 사실상 입헌군주제에 가까운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지극히 정적인 나라였다. 조선은 유학중심으로 통치되었는데 유학이라는게 결국은 공자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서구의 중세시대에 신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것처럼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굴러간다는 정적인 관점이 지배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조선에서 각 지역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자급자족적으로 운영되었다. 즉 서로 서로 교역이 작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경제적 근대화의 준비가 앞서 있었다. 일본은 여러 번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번이 서로 다른 경제기반을 가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했다. 에도시대의 일본은 해운보험제도나 어음, 환전시스템을 발달시켰고 도시의 상공업자인 조닌의 문화가 번성했다. 경제적 근대화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이 조선수준의 근대화를 이룩한 것은 메이지유신정도의 시기다. 그래서 일본 대중의 민주주의 경험은 한국인보다 몇세기나 뒤져있다. 임진왜란에서 결국 일본이 실패한 것도, 일제강점기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일본과 하나되지 못한 것도 이런 정치체제의 차이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괜히 의병이 나라를 지킨게 아니고 독립을 꿈꾼게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문명인이 수렵채집인에게 정복당해도 수렵채집인으로 살기는 어렵다. 문명사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런 것이 의병이 일어나는 근원적 이유다. 뒤에 말하겠지만 이러한 면은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이 한계를 가지는 원인이 된다.
일본은 미국의 개항 요구에 맞춰서 아직도 그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끝없이 이야기하는 메이지 유신을 하는데 성공한다. 이 메이지 유신은 정치적인 근대화측면에서 진일보였지만 앞에서 말한대로 그 수준을 보면 사실 조선의 개국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를 천황 아래로 하나로 모으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며 법치주의를 약간 더 진보시킨 것이다. 하지만 상업이 발달해서 경제적 근대화를 할 준비가 잘된 일본은 이정도의 정치적 근대화로도 경제적 근대화를 진행시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특히 당대에는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제국주의의 시대였다는 것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일본은 정치적 근대화와 경제적 근대화중 정치적 근대화를 메이지 유신으로 정말 약간 진행하고 거기서 멈추기로 한 대신 중앙의 주도로 경제적 근대화를 진행한 것이다. 본래 상업적 기반이 있었던 일본에서는 이것이 성공해서 일본은 반세기만에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한 세기 후에는 세계 대전을 일으킬 정도의 군사적 경제적 대국이 된다.
만약 일제가 그대로 번성했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근대화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조선과 그 반대였던 일본은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각자 자신의 장단점 대로 역사를 풀어나가게 된다. 경제적으로 전근대적이었고 변하지 않았던 조선은 그저 안정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다가 싸움에 익숙한 일본에게 침략당하는 임진왜란을 겪고 한일합방으로 식민지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일본은 막부의 등장이후의 에도시대, 천황의 복귀 이후의 메이지 유신 시대에서 경제적으로 번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의 정치 사회적 수준이 조선보다 밑이었기 때문이다. 더 뛰어난 문화를 가졌던 조선의 대중은 일본인이 되어서 살 수 없었고 의병이 되어 나라를 지켰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전쟁도 여러번 이겼지만 결국 전근대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보면 정신적으로 후진적이다. 만약 조선이 일본을 합병했다면 일본 사람들은 기꺼이 조선 사람으로 살려고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 후진성은 경제적 문제도 만든다. 더이상 식민지를 만드는 제국주의 시대도 아니고, 경제적 발전으로 복잡해진 사회를 봉건적 정치체제로 운영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중앙독점적으로 나라를 운영하게 되는 봉건적 태도는 현대 경제 시스템을 다룰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일본을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세계대전에 패배하고 서구식 헌법을 가진 민주 공화국이 되었지만 그 역사를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실질적으로는 전근대적으로 정치를 한다. 마치 예전의 번주처럼 한 지역의 가문이 대대로 정치를 하는 식이다. 아직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의 영광에 빠져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가졌었던 경제적 성공에 취해 그걸 넘어 정치적 근대화를 완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침략전쟁이 불가능한 21세기에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도 정치적 발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조선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 드문 민주국가가 되었다. 사실상 유럽 이외의 나라에서 민주국가가 있다면 그건 한국 정도일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에는 오랜 과거의 역사와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부를 강조하고 법치를 강조하는 문화가 있기에 한국인들은 기꺼이 지금도 의병으로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해방 이후 세계로부터 상업에 대해서 배워서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한국이 지금만큼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운동덕분이다. 만약 한국에서 20세기 이래의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면,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 정권이 없었다면 한국은 북한 수준으로 살았을 것이다. 독재 정권이 북한의 김씨 일가처럼 자신만 잘 살자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봉건주의적으로 중앙독재를 하면 현대 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윤석렬 정권이 단 3년만에 나라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보면 안다. 나라가 군사 구데타가 일어나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의 정치적 후진성은 소프트 파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과거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은 그 경제적 성공만큼이나 컸지만 앞에서 말한대로 그들의 정신적 수준이 후진적이기 때문에 그 한계가 컸다. 일본의 문화는 궁극적으로 일본같은 나라처럼 우리나라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모두에게 심을 수 없다. 화려한 경제적 성공의 껍질을 벗겨내면 봉건시대의 야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두 근대화에 성공한 한국의 한류는 다르다. 일본의 경제가 추락하면 한국의 한류는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나라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할 수 없지만 조선이 일본을 병합할 수는 있다. 물론 21세기에 이것은 문화적인 이야기지 군사적 침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은 아직도 한국 내부에 존재하는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문화적으로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은 중요하다. 사상적으로 굳어져서 세상이 한가지 방식으로 운영되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은 그 사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회의 성장을 제약하게 된다. 조선의 패망은 이때문이다. 우리는 개혁적이 되어져야 하고 사상적으로 굳어져서는 안된다. 나라를 걸어잠그고 세계적인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동시에 길게 보면 정신적 수준이 그 사회를 지키는 힘이 되고 그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한계를 결정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민주화가 있으니까 부자나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자냐 아니냐를 넘어서는 가치도 있다. 경제적 근대화, 정치적 근대화는 모두 다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 없이는 다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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