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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역사에 대한 생각

1900년 전후의 세계와 그 역사

by 격암(강국진) 2022. 5. 21.

22.5.21

최근 나는 양자론이 출현하는데 크게 기여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전기를 읽고 있다. 그런데 이 플랑크가 오늘날 양자가설이라고 불리는 혁명적 주장을 발표한 것이 바로 딱 1900년의 일이었다. 1858년에 태어나 1947년까지 살았던 이 물리학자의 삶은 자연스럽게 19세기의 유럽과 1900년의 세계를 오늘날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걸 읽다보니 요즘의 우리가 역사라고 배우고 있는 것은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그 몸통이 정치적 집단들의 내부적 외부적 다툼에 대한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같은 책들은 아예 역사서로 여겨지지 않거나 정통 역사학자에게는 심지어 금기시되기도 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어떤 거시적 주장이 확고히 증명되기 어렵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관심사가 기술과 문화같은 것보다는 정치집단과 그 지도자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산업혁명의 역사도 역시 사람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것은 철도같은 기술의 역사가 아니고 양자론같은 물리학 이론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20세기 후반의 역사를 쓰면서 컴퓨터나 인터넷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이겼다는 둥 무슨 전쟁이 있었다는 둥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도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기업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지 않은가? 스마트폰은 우리 시대 최고의 상품이 아닌가? SNS나 인터넷 상거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미국의 대통령이 부시였다던가 클린턴이었다고 하는 게 더 중요할까? 

 

조선은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는 1890년의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1894년에 있었던 청일전쟁과 1904년에 있었던 러일 전쟁이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사건에 더해 프랑스가 조선을 공격하고 약탈한 1866년의 병인양요나 미국의 침략인 1871년의 신미양요 그리고 1876년에 있었던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늘어놓음으로써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그림에는 큰 문제가 있다. 우선 한국에 대해서 알려면 한국이 아닌 나라 즉 외국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왜냐면 내 키가 160cm라도 내 주변 사람이 전부 키가 150cm미만이라면 나는 키가 큰 사람이고 그 반대라면 키가 작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만 나열해서 정말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게다가 위에서 나열한 사건에는 앞에서 말한대로 기술문명적인 것이 거의 없다.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의 체험이 없으며 그 일상의 체험이 결국 만들어 내는 인간의 정신이 없다. 이래서는 우리가 조선을 이해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1900년에 막스 플랑크가 양자가설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나 1865년에 맥스웰이 그의 맥스웰 방정식을 발표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5편의 논문을 써서 기적의 해로 불리는 때가 1905년이라는 사실은 1900년의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를 생각하는데 정말 큰 의미가 있다. 여러분이 나처럼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이걸 조선의 역사와 비교해서 본 적이 없다면 그리고 표면이 아니라 그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약간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맥스웰 방정식은 전자기학의 기본공식으로 지금도 대학교에 가면 배우는 것이며 이론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난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이미 1865년에 이런 공식이 발표되었다. 양자가설은 발표된지 20여년후에 양자역학이 출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론이다. 1905년에 아인쉬타인이 발표한 이론들은 이미 서양에서는 빛의 속도를 재고 훗날 원자폭탄을 만들 정도로 정밀 기술이 발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들은 그저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건들이 절대 아니다. 왜 이런 물리학 이론들이 발전했을까? 이는 서양이 19세기에 이미 열현상과 전기현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자연히 행해질 수 밖에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상의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인 모스가 모스부호를 만들어 전기신호를 보낸 것은 1844년의 일이다. 영국과 프랑스사이에 전신용 해저 케이블이 깔린 것은 1850년의 일이며 미국과 영국을 잇는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이 설치된 것은 1858년의 일이었다. 1876년에는 그라함 벨이 전화 특허를 얻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여 가스등을 대체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세계 최초로 증기열차가 운행된 철도는 영국의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45km의 철도로 1830년에 완공되었다. 그런데 이 철도사업은 어찌나 빨리 세계로 퍼졌는지 미국이 남북전쟁을 하던 1861년에는 이미 미국에 4만7천km의 철도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철도의 70%는 이 전쟁에서 이겼던 미국의 북부에 있었다. 철도는 대량의 물자와 사람을 빠르고 안전하게 수송하기 때문에 이렇게 철도가 있던 시기의 전쟁은 최초의 근대적 전쟁이 되어서 이전의 전쟁과는 비할 수 없는 수의 사망자를 만들었다. 즉 철도는 산업혁명을 퍼뜨리는 길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길이기도 했다. 독일제국이 만들어 지는 1870년의 독일프랑스전쟁 혹은 보불전쟁때도 이당시 이미 유럽전역에 철도가 깔려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의미가 달라보인다.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구상되었던 것은 1860년대였고 기본적인 완공을 한 것은 1897년의 일이다. 내연기관의 연구는 결국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게 했다. 라이트 형제의 동력비행기는 1903년에 나왔고 컨베이어 벨트식 대량생산으로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포드의 T형 모델이 나온 것이 1908년이다. 1927년에는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물리학은 전기와 열현상을 연구했고 급기야는 1900년에는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1900년의 조선인이 만난 외국인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열차를 가졌다던지, 전화기를 가졌다던가 하는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물질의 뒤에 있는 정신을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이나 이론은 쉽게 줄수 있다. 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면 갑자기 그들의 정신이 선진국사람들처럼 변하는게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신미양요니 병인양요니 하는 전쟁 기록만 보다보면 우리는 깊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그 전쟁에 참여한 양측의 정신이 서로 비슷하고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다는 착각이다. 물질은 쉽게 오고가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물론 장기적으로 사람은 환경과 물질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변하기 더 쉬운 것이 물질이기 때문에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주로 정신에서 나온다. 조선이 망한 것도, 한국이 지금 선진국이 된 것도 모두 조선의 정신때문이다. 이게 빠지면 역사적 사회적 이해란 모두 헛것이다. 

 

그런데 많은 역사적 기술은 일상의 체험과 그 정신을 강조하지 않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이런 면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고조선이나 고려나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프랑스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독일이나 모두 그냥 같은 사람들이 이합집산하여 만든 나라들같다. 우리는 너무 쉽게 어떤 객관적 관점이 있다는 시점으로 빠져든다. 다 인간이고 다 인간의 DNA를 가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객관적 관점이란 실은 대개 매우 자기 중심적인 관점이다. 예를 들어 유럽사람들이 보는 세계역사는 그들의 역사나 관점을 그냥 상식으로 하면서 다른 지역의 역사를 거기에 끼워맞추는 식이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남자이고 키가 178이며 나이는 50살이고 몸무게는 80kg이며 안경을 썼고 하는 식으로 어떤 관찰결과, 측정결과를 늘어놓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그림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가 그 남자는 중국인이래라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는 갑자기 아아하고 말하면서 생각을 바꿀지 모른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숫자로 볼 때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당신은 GDP나 나라 크기, 평균기온 정도를 나열하면 그 나라에 대해 이렇군 저렇군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어떤 이해를 가져오는 것일까? 그럼 역사를 볼 때는 어떤가.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태도는 어찌보면 처음부터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상대방이 이렇다 저렇다말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정신세계, 상대방의 일상의 체험을 들여다 볼 생각은 없고 그냥 표면적인 것들 몇개로 상대방을 이렇다 저렇다 이름붙이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면 다 비슷하다는 듯이. 나는 그래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처럼 인간을 사이보그로 보는 관점이 여기서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일상의 체험은 비어있는 육체에 그 정신을 주입한다. 빈 육체를 인간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사이보그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우리가 몇만년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유전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으니 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역사를 기술하면 우리는 처음부터 뭔가를 이해하려는 것을 포기한 것과 같다. 

 

지난 몇백년간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고 지금의 세상에 있어서 기술적 과학적 측면을 무시하면서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어떤 것도 100%는 아니고 다 사회적 관계를 주고 받는 것이지만 가면 갈 수록 세상의 정신은 바로 그 시대에 체화된 기술과 과학에 의해서 나타나고 있다. 기술과 과학이 체화되었다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일상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우리의 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런 것을 그저 보조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관점은 가면 갈 수록 우리를 착각에 빠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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