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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역사에 대한 생각

대한민국의 반대말은 뭘까?

by 격암(강국진) 2023. 8. 27.

23.8.27

보름쯤 전 나는 지식과 비교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의 핵심은 우리가 뭔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암묵적으로 무엇과 비교하고 있는 지 혹은 그것의 반대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우리는 그걸 자주 잊어먹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을 때 우리는 삶에 대해 무수히 많은 지식들을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식은 우리가 무의식속에 가진 그 삶의 반대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제약되게 된다. 마음속에 친구나 형제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다보면 결국 그것은 그 친구나 형제보다 더 잘 사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집착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그런 집착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고 와서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그 집착에서 빠져나와서 삶에 대한 진짜 지식을 얻게 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도 우리는 그것의 반대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에는 우리가 주목할만한 한가지 사례가 있다. 그걸 반북 정체성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반북 정체성에서는 한국을 북한에 대한 반대로 파악한다. 즉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그것보다 우월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정체성이든 제약과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반북 정체성이라는 것은 시대에 뒤져도 한참 뒤져 있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북한을 몇십배 능가할 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북한이 한국보다 더 우월한 체제라고 생각할 사람은 북한 사람을 빼자면 정말 아무도 없는데도 여전히 반북 정체성에 빠진 사람들은 북한을 이기려고 한다. 물론 북한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어느 나라든 우리가 그 나라들 보다 더 좋은게 좋지 더 나쁜 게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한국이 북한과 경쟁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정말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

 

이건 전교에서 5등안에 드는 학생이 전교 꼴찌를 하고 있는 학생을 경쟁자로 여기면서 그 꼴찌보다 못하게 되면 어떻하냐고 안절부절하는 꼴이다. 뭐든 조심하는게 좋다는 말은 옳지 않다. 이런 집착을 하는 동안 그 우등생의 진정한 경쟁자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경쟁자들이 공부를 하는지, 무슨 참고서를 쓰는지, 잠을 얼마나 자는지는 무관심하면서 계속 꼴지가 공부를 하니 마니, 이번에 참고서를 새로 샀니 안샀니 라고 신경쓰는게 정말 우등생이 더 공부를 잘하게 되는데 도움이 될까? 물론 우리는 북한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고 끊어서도 안되지만 사실 이미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더 신경써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을 잘하면 북한 걱정은 대부분 자연히 해결 된다. 요즘 한류열풍을 생각해 보라. 이게 북한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서 이룩한 일인가? 하지만 한류열풍이 있으니까 북한 체제가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가. 결국 우리가 잘하면 북한은 저절로 흔들린다. 우리가 북한에게 과민하게 구니까 오히려 북풍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아쉬운 건 북한이다. 북한에 호들갑떠는 사람들이야 말로 북한정권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체성의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관점은 한국을 한반도 안에 가두고 한국인의 역사를 무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왜냐면 북한도 한국과 역사가 일제 이전에는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북으로 갈라져서 정체성을 따질 때 우리는 해방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거나 남한이라는 지역과 북한이라는 지역의 차이를 보게 된다. 이걸 다 합쳐도 한반도니까 세계 정세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된다. 자연히 일본을 포함해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한국과 어떻게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달랐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내가 우리 반에서 1등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다른 반이나 다른 학교에 대해서는 무지해 지기 마련이다.

 

이게 반북정체성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보수가 반문화적인 이유다.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핵심적인 일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적이란 것은 보통의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반북이고 반공이다. 그 이외의 다른 전통문화는 북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북한 이외의 세계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보수는 보통 전통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해방 이후, 남북한이 갈라진 이후의 역사와 전통 뿐이다. 그들이 조선시대 이전과는 문화적으로 다른 기독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경제는 국경선이 희미해질정도로 국제적인데다가 특히 한국처럼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런 비국제적인 사고는 위험하다. 중국 자금, 일본 자금, 미국 자금, 유럽 자금이 한국에 들어와서 사업을 하는 마당에 오직 관심은 우리가 북한을 이기니 마니 하는 것에 매몰되어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중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의 정신을 썩어가게 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우리가 지금 세계를 두고 협상하고 게임을 해야 하는 상대가 북한인가 아니면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러시아, 동남아국가들 같은 나라들인가? 구체적으로 말해서 중국이 하고 있는 동북공정같은 것을 생각해 보자. 반북정체성은 우리로 하여금 중국이 북한을 가져가건, 만주땅에서 펼쳐지던 우리 조상의 역사를 가져가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북정체성에 따르면 한국은 그저 북한을 이기려고 존재하는 나라다. 조선이전의 역사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중국만큼이나 러시아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그냥 무관심하다.

 

여기서 한가지를 확실하게 하자. 반북 정체성을 주장하는 보수들은 공산주의가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건 위선적이거나 모순적인 말이다. 베트남도 공산국가고 중국도 공산국가다. 반북 정체성을 가진 우리나라 보수가 제일 좋아하는 지도자가 바로 공산주의 남로당 출신 박정희다. 게다가 공산주의하면 독재와 같은 것으로 말하면서도 그들은 군사독재를 좋아한다. 결국 그들은 그저 북한이 싫은 것이다. 그들은 아마 윤석렬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도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뭔지 생각해 본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공산당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으로 놀러가고 그들의 물건을 마음껏 쓰고 삼성같은 한국 1등 기업도 베트남과 중국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는데도 고작 개성공단같은 구멍가게를 보고 펄쩍펄쩍 뛰면서 공산당과 협력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단 그것부터 인정하고 확인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수가 싫어하는 건 공산당이 아니다. 북한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공산주의 핑게를 댈까? 공산당없이 그냥 북한이 싫다고 말하면 앞뒤가 더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과 우리는 전쟁을 치뤘다. 하지만 일제는 조선인을 학살하지 않았던가? 중공군이 북한군과 함께 대한민국을 침공하지 않았던가? 베트남전쟁에서 우리가 싸운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베트남 정부군 그러니까 베트공아니던가? 왜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북한만 절대악인가? 왜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라는 문구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들이 공산당 핑게를 대면서 한국의 군대는 오직 북한과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다.

 

반북정체성은 가장 고민해 봐야 할 한국 정체성이지만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중요한 다른 사례에는 반일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반일 정체성은 한국의 반대를 일제에 지배받는 식민지로 여긴다. 즉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가 한국이다. 이것 역시 따지고 보면 반북정체성과 유사한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그 폐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 이유는 일본은 많이 쇠락했지만 세계적인 경제대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이기려고 하는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다. 게다가 일본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이 반일 정체성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만큼 경제성장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경제 식민지로 남았을 것이다. 한국의 인재와 자원은 일본에 빨려 들어가고 한국의 성장동력은 고갈되었을 것이다. 한국내부에서도 수도권이 지방에 대해서 비슷한 일을 한다. 그러나 수도권과 지방은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 때문에 경제적 재분배가 일어나지만 한국과 일본사이에는 그런게 있을 수 없다. 문화적으로 독립적이지 않은데 경제적으로까지 훨씬 약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 옆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실질적 식민지가 된다. 기생관광이나 오고 식모나 수출하는 나라가 된다. 그리고 그런 의존이 경제를 더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북정체성과 유사하게 반일정체성도 우리의 눈을 한일관계에 고정되게 만든다. 다른 위협들, 예를 들어 중국의 위협에 대해서는 무방비가 되게 만든다. 우리가 유럽과 동아시아와 호주와 미국으로 뻣어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뭔가를 이기려고하다보면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보수가 북한과 비슷하듯 반일정체성에 빠져들면 일본만 쳐다보게 된다. 상상력이 제약되고 진정한 세계속의 한국을 꿈꾸기 어려워진다.

 

한국은 이제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계속의 한국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나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을 넘어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고민하고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봉사정신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그런 공존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곤란한 위치가 되었다. 다양한 나라와 소통하고 무역하고 발전을 같이 모색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신경써야 할 나라들은 아주 많다. 북한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특정한 나라들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가는 그런 집착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할 것이다.

 

그 말은 우리가 외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외교란 기본적으로 여러나라들과 등거리 관계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외교는 자주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와도 대화는 계속하는 것이 외교다. 이런 것을 잊은 보수정권은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다. 일단 그들은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을 반대해서 국방을 외세 의존적으로 만들고, 외교를 무조건 일본이나 미국에 의존해서 한국의 외교권을 스스로 포기한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한국의 보수정권을 종속변수로 여길 수 밖에 없으니 미국과 일본을 결정권자로 여길 뿐이다. 게다가 보수정권은 외국 자금을 들여와서 이 나라 국민들을 다시 한번 수탈하게 만든다. 부패속에서 거대 자본의 이익을 키우기 때문이다. 이게 조선 망국 직전이나 일제 초기와 뭐가 다른가. 북한만 보고 있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눈을 돌리고 뒤로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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