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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키워드 여행

제주 한달살기 9 : 용천길과 제주 재즈 페스티벌

by 격암(강국진) 2025. 10. 26.

 

금요일에는 함덕해수욕장에서 삼양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이 길은 18번 올레길의 끝과 19번 올레길의 초반부로 우리는 그 길을 거꾸로 걸은 것이다. 다만 해변길을 선호하는 관계로 항일 기념관대신 해변쪽으로 걸었다. 이제 무료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함덕의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해수욕장을 둘러 보았다. 몇일전에 찾은 곳이지만 함덕의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다. 다른 곳도 다 아름답지만 해변의 아름다움으로 함덕만큼 인상적인 곳이 없다. 여러가지 색깔로 변하는 바다를 보며 아내는 마치 물감을 풀은 것같다고 감탄했다.

 

그 함덕 해변을 따라 계속 길을 걸으면 신흥 해변이며 관곶으로 이어지는 해변길을 따라 계속 걷게 된다. 오늘 길의 제일 문제점은 출발하는 함덕은 번화한데 중간은 그다지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출발할 때점심을 먹기에는 일렀다. 덕분에 오늘은 19km정도의 거리를 중간에 식사하는 휴식도 없이 내내 걸었다. 길은 재미있고 아름다웠지만 덕분에 삼양에 도착해서 식당에 들어갈 무렵에는 아주 지쳐 버렸다.

 

 

 

 

이날은 유달리 인사를 많이 했다. 길을 걷다보면 우리처럼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나 해수욕장에 놀러온 사람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한번은 걷다가 지쳐서 한 정자에 올라가니 나이 지긋하신 지역 주민 할아버지가 계셨다. 처음에는 무심코 말없이 그 옆에 앉았는데 그러보니 처음에 인사를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처음볼 때 하지 않은 인사를 새삼 하려고 하니 그게 또 껄끄러워 말없이 나란히 어색하게 앉아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정자를 나섰다.

 

그런 어색함을 경험한 뒤에는 나는 아예 보는 사람마다 되도록 먼저 인사를 하기로 했다. 가끔은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인사를 대개 먼저 했는데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인사를 하는 것이 좀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인사를 하면서 다니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도 젊은이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받아주신다.

 

 

 

아침의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조천은 재미있는 동네였다. 올레길이 해변으로 가다가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이따금은 길표시를 해놓았으니까 그 길을 가지 길이 전혀 있을 것같지 않은 골목으로 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내가 가 본 그 어느 제주지역보다도 용천수가 흔한 곳이었다. 여기저기 물이 솟는 용천수 지역이 있고 그중에는 남탕, 여탕도 있다. 꼬불꼬불한 용천수길을 걷는 재미를 즐기고 나면 조천에서의 올레길은 마치 작은 연못들이 계속되는 것같은 길로 이어지는데 이 길도 재미있고 장관이었다.

 

 

굶어가며 걷는 길은 즐겁지만 고되다. 가지고 간 음료수며 찹쌀떡이 아니었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우리는 쉬는 곳이 나올 때마다 앉아서 쉬었다. 가끔 보이는 새며, 물고기며, 고양이가 반가웠다. 그렇게 해서 삼양근처까지 가면 한동안은 평범한 도시길이 이어진다. 샌프란시스코처럼 경사있는 길로 이뤄진 삼양의 길을 따라서 걸어서 우리는 3시가 넘어서야 오늘의 점심을 먹으러 삼양의 낙지볶음집인 제주 정낭집에 도달했다. 아내가 찾은 이 집은 싸고 푸짐하며 맛좋은 집으로 추천할만하다. 낙지탕탕이가 4만원밖에 안되는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냥 낙지볶음을 먹었다. 배도 고팟고 너무 피곤했던 지라 식당에서의 시간은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삼양은 검은 모래가 있는 해변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하얀모래 백사장이 더 멋지기는 하지만 그대신 이 삼양에서는 해변 산책을 할 수가 있다. 사실 해변산택이야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왠지 삼양에서는 꼭 해봐야 할 것같은 분위기로 우리는 자연스레 모래길을 걷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검은 모래 백사장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발이 지치기도 했는데 맨발로 이 해변을 왕복하면서 걸으니 피로도 풀리고 좋았다. 삼양해변의 맨발걷기는 다시 온다면 또 하고 싶은 일이다.

 

 

제주에는 10월이면 아주 많은 행사들이 있다. 너무 많아서 다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올해가 1회라는 제주 재즈 페시티벌도 그런 행사들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에는 제주 돌문화 공원을 방문했다. 본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제주 돌문화공원이 입장료 무료일 뿐만 아니라 김기태, 웅산밴드가 출연하는 공연이 공짜인 이벤트인데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주의 10월밤에, 재즈 콘서트에서 멋진 음악을 듣는 일은 누구나 상상하는 꿈같은 일일 것이다. 그날 날씨는 좀 추웠지만 차에서 가져간 이불덕에 좋은 콘서트를 보았다. 김기태는 몇년전 싱어게인2에서 우승한 가수인데 가창력이 아주 우수했다. 약간 행사 운영이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 내가 본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인 것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김기태가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가는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재즈콘서트라는 컨셉에 보다 적절했던 것은 웅산밴드의 공연이다. 나는 일전에 유튜브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1962년 공연녹화를 보면서 어떤 가수가 그 자체로 장르가 된다는 느낌이 뭔가를 느낀 적이 있다. 뭔가 누군가가 흉내를 낼 수도 있고, 심지어 기교적으로는 더 뛰어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마리아 칼라스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달까.

 

그래서 인지 재즈 콘서트에 가서는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김기태는 노래는 잘 부르지만 재주가수는 아니고 웅산밴드는 어땠을까? 나에게 재즈가 뭔지 느낄 수 있게 해주었을까? 그날밤 내가 느낀 재즈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에 그 핵심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예술은 소통이 그 핵심이겠지만 재즈는 유달리 더 그런 것같다. 멋진 음악이지만 원래 정해진 대로 부르는 음악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관중 분위기나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음악이란 것이 재즈의 핵심이 아닐까?

 

그래서 재즈음악은 얼굴을 직접 맞대는 것이 중요할 것같고, 그래서 재즈음악은 어떤 의미로 시대에 뒤진 음악이라고 할수 있다.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것이 필요한데 상호 소통을 강조하다보면 그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 재즈공연은 성공적이면 아주 감동적일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이 될 수도 있을 것같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뮤지컬 공연에 가듯이 재즈 공연에 맛을 들이게 되면 재즈만의 맛에 중독될 것같다. 그건 녹음될 수 없는 맛이다. 제주의 밤은 멋졌다. 어린 시절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가 흑인 음악을 듣고 환속했다는 가수가 웅산이다. 여성이름치고는 약간 이상한 그 이름은 사실 그녀의 법명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장르의 음악을 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밤은 깊어가고 그렇게 제주에서 두번째로 맞이하는 주말도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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