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고질적으로 자주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이것이 제도의 문제인가 사람의 문제인가하는것이다. 요즘 우리는 이 질문을 또다시 자주 던지고 있는데 그건 윤석렬 내란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것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니라도 이제까지 많은 경우 우리는 누구누구가 잘못했다더라 같은 말이 나오면 그건 제도를 바꿔야 한다거나, 어디서 어린 아이가 난폭운전에 죽었다더라하는 말이 나오면 그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해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건 바로 근대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이념은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문제가 있으면 시스템을 고쳐라. 이 근대의 이념은 근대 시대에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종종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를 자꾸 어떤 일탈이나 사고로 보면 안되고 시스템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걸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원천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의 이념은 근대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는 습관은 시스템을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복잡성이 너무 커지면 이제 시스템은 그 복잡성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런데 근대 이념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시스템을 더 고쳐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시스템 수정의 폭주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쁜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선의로 가득 찬 근대 개혁가가 있는데 이 선의로 가득 찬 근대 개혁가들이 비극을 만드는 일도 많다. 왜냐면 그들은 메뉴얼로는 현실을 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이념가들이 만드는 문제중의 하나는 책상에 앉아서 생각한 것으로 시스템 전체를 수정하면서 생기는 적응의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세금을 이렇게 내고, 내년에는 세금을 저렇게 내는 식으로 바꾼다. 올해는 대학시험을 이렇게 시행했다가 내년에는 또 다르게 시행해 본다. 그들은 한번 도달하면 영원히 작동할 수 있는 진리의 시스템을 찾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계속 변화하는 시스템은 사람들을 매우 괴롭게 한다. 그리고 영원히 작동하는 시스템은 없고 시스템은 계속 고장난다.
예를 들어 대학을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는 대학 입시를 큰 부분으로 해서 대학을 좋게 만들려고 지난 수십년간 노력해왔다. 그렇게 해서 성과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대학입시는 헌법만큼 복잡해져서 학부모도 학생들도 이해가 안되고, 지방대학은 아예 지잡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 복잡한 제도 개혁은 다 뭐하러 있었던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인간을 주목해야 한다. 제도로는 다 안된다. 결국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왜냐면 예외적인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것이 저절로 좋은 세상 만든다라는 생각에 빠지면 안된다. 사실 시스템의 구축은 이미 오랜동안 해왔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강력하고 복잡하다. 그걸 더 강력하고 복잡하게 만들면 위에서 말한 근대의 문제가 반복될 뿐이다. 책임을 제도나 법에 떠넘기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좋은 세상은 좋은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근대 시스템을 파괴해야 한다. 인간을 강화해야 한다. 근대 시스템이란 결국 인간이 가진 한계에 기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크고 복잡해지니까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듯 여러가지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고정시킨다. 예를 들어 물류 시스템이란 생산지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어딘가에 모으고 그것이 다시 배송되어 소비자에게 도달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 일을 자동화하기도 했지만 인간이 중간에 많이 낀다. 그러니까 층층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물류라면 더더욱 복잡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기술은 달라지고, 유행도 달라지는데 시스템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렇게 빨리 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의 일부를 각자의 직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간상이 필요없어도, 도매상이 필요없어도 시스템은 그렇게 그냥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이 강화된 세상이란 인터넷이나 AI등의 기술들을 통해 훨씬 더 단순한 시스템으로도 순간 순간 필요한 조직들을 창발적으로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가 없이는 근대 조직을 무너뜨리면 우리는 전근대로 갈 뿐이다.
이러한 지능적 인프라가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존의 사회 조직 모두에 대해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한다던가, 60몇살이면 은퇴를 한다던가, 국민연금을 납부한다던가, 취직을 한다던가 하는 관행말이다. 우리는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오던 것을 멈추고 처음부터 이걸 꼭 21세기에도 이렇게 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까지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해봐야 그건 마치 이제까지 쓰던 파워포인트 소프트웨어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그때 그때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쓰자는 말처럼 황당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AI의 발달로 그 황당한 일이 점점 실현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훨씬 더 빠른 정보처리로 훨씬 더 동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이 가능해져가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절부터 재난지원금을 국민에게 주는데 똑같이 줘야 할 것인가 차등지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똑같이 줘야 한다는 사람들이 가지는 논점의 핵심중 하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을 일일이 분류하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일인데다가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고된 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AI가 전국민을 빠르게 분류하고 자동으로 계좌이체가 가능하다면 이런 논쟁의 존재이유는 상당히 사라질 것이다. AI가 인간을 모든 일에서 대체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느릿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AI가 일처리를 빠르게 해치우는 것이 좋은 점은 많이 있을것이다.
우리는 과도기에있다. 그리고 근대는 끝나가고 있다. 근대의 주장에 대해 전근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근대에 비하면 근대는 진보적이다. 하지만 근대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근대의 이념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걸 생각하면서 좋은 인간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기억하고 미래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누적되어가는 근대의 모순은 우리를 점점 더 숨쉬기 어렵게 할 것이다. 더더더 이런 저런 피해자가 있다면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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