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잊혀진 고등학교 동창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때는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 중에서 괜히 이름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다가 잘하지도 않는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데 친구로 추천이 들어왔기에 무심코 친구등록을 해놓고 말았다. 이것은 언제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의 일이다.
페이스북이란게 뭔가해서 계정을 만들어 보았고, 언젠가 한번 대학동창선배가 암에 걸렸다는 말에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을 뿐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나에게 시간은 그냥 흘렀다. 그런데도 그 언젠가 옛날에 클릭 한번을 했다는 이유로 그 친구의 소식이 가끔은 나에게 들려왔다. 1년에 한번, 몇년에 한번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할 그 친구가 늙어가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그럭저럭 고등학교를 졸업한지가 40년이다. 이젠 어린 시절의 모습이 흔적으로만 남았을 뿐 늙은 모습이 되었다. 대기업의 이사로 잘 살고 있는 듯한 그 친구는 그만큼 고생도 많이 하는지 외모로만 보면 60대같다.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일본으로 나라 바깥을 떠도는 동안 나는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런 저런 이유로 가끔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만나면 반갑지만 동시에 낯설다. 나름 친했다고 생각하던 친구가 나에게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을 보면 뭘 이렇게까지 멀어졌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이제까지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은 이제 꿈이 없거나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학시절에 황당한 꿈을 가지고 낭만을 가지던 친구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한번은 지방의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학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냐는 말을 물었더니 그 친구의 반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나도 진지하게 수학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한번 가벼운 대화가 오고간 것이었지만 그 짧은 대화속에서 나는 그가 더이상 수학에 대한 열정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이상 수학을 하기 위해서 살고 있지 않았다. 살기 위해 수학을 하고 있을 뿐인것 같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버린 사람들에게 학문의 열정이건, 창업의 열정이건 멀고 큰 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것일까? 한국의 미래나 세계의 미래를 놓고 열정적으로 떠들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젠 그런 이야기는 유치해진 것일까? 아직도 그런 낭만적이고,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느냐고 핀잔을 줄법도 하지만 나는 세월과 더불어 친구들이 돈이나 출세 이야기에 더 밀착된 것같은 모습을 보면 왠지 서글프다.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쪽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 나라고 편하게만 산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래도 세파를 피해서 산 쪽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십년간을 어떤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는다고 발버등 치다보면 시스템 바깥에서 펄펄하던 젊음은 자연스레 변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나는 자유로이 옮겨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도 집안이 망하지 않은 것은 내가 노력한 탓도 있겠지만 내가 운이 좋은 탓도 있었다.
인간이란 유한하다. 하나의 환경에 머무르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그 환경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가 든다고 꼭 그렇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미 상당히 변했겠지만 앞으로의 나도 그렇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재산도 유명세도 지위도 없는 내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국제 정세나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고, 철학을 공부하고, 문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허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 모든 생각이나 행동은 내 방문을 결코 넘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살기 위해서 다른 사회적 수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코 앞의 이익만 보면서 살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미래일 것이다. 내가 쓴 글과 내가 하는 생각을 세상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나는 안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의미한게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파에 물드는 걸 철이 드는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야말로 철좀 들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 사람 그리고 내가 알던 사람들이 노인이 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런데 나이가 들 수록 욕심을 버리고, 수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죽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보고 죽어야 겠다는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드물다. 안으로야 내가 다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겉으로 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연금이든 저금이든 잔뜩 모으고, 그걸로 비싼 음식점에 비싼 여행가면서 사는 것을 꿈꾸거나 아니면 어떤 권력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나이들어가는 것을 복이 많은 거라고 여긴다.
인간은 유한하니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허세든, 권력욕이든, 애정이든 그것을 원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나이가 들었다면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허무한 것임을 깨달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야한 사진을 보면 저절로 눈이 가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저절로 침이 흐른다고 해서 오직 야한 사진과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 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욕망과 욕심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다. 나도 돈이 좋다. 돈이 아주 많이 생기면 이것저것 사치스럽게 일도 벌려보면 좋을 것도 같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우가 아니면 허망하고 위험한 것이다. 즉 내가 해야 할 일에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우가 아니면 오히려 나에게 족쇄가 될 뿐이다. 예를들어 필요에의해서 유명해지는게 아니라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해지면 그저 바쁘고 유명세의 노예가 될 뿐이다. 좋은건 잠깐이고 유명세가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답은 여러가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답이 어느 것이든 우리는 그것을 한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식의 지평이다. 내가 우리집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집안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회사의 중역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그 회사의 안쪽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는 어떤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가정하면서 그 안에서 나를 찾고 정의하고 설명한다. 이것이 인식의 지평이다.
우리의 인식의 지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인식의 지평은 어릴 때에는 아주 작다가 청년기에 이를 때 종종 가장 커지는 것같다. 왜냐면 취업을 하고, 어딘가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세계가 줄어들기 쉽기 때문이다. 문학소녀였던 사람도 어느새 책을 읽지 않게 되고, 사회적 개혁을 꿈꾸던 청년도 어느새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이 없어지게 된다. 아인쉬타인이니 괴델이니 하는 이름을 말하면서 학문의 꿈을 꾸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런 이름들에 무덤덤해진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일상의 일들로 바쁘다. 하지만 적어도 죽기전에는 그런 고리를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죽기 전에는 그래도 좁디 좁은 인식의 지평속에 갇혀서 버둥거리는 사람으로 죽기보다는 이 넓고 큰 세상에 어떤 진기한 것들이 있는지 둘러보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세계를 여행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지식의 세계를 여행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나는 음식에 대해, 문화에 대해, 주택에 대해, 학문에 대해, 의학에 대해 뭘 아는가?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어느 정도나 알고 나는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나이가 들면 꿈이 더욱 소중하다. 왜냐면 그것없이는 실상은 자꾸만 더 작아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든 실제로는 사료를 먹는게 삶의 전부인 돼지같아 진다. 나이가 들었으니 삶은 안정된 경우가 많다. 그건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문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모르게 된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말이다.
우리는 구도자로 죽어야 한다. 적어도 무너지는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건강하고, 좋은 것먹고, 규칙적으로 살고, 뭐 이런건 다 좋다. 하지만 멀리 보고자 하는 절박함이 없는 삶은 결국 점점 작아지게 마련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그런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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