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차는 매우 크지만 그래도 3-40년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연애의 규칙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연애가 뭔지 자체가 많이 바뀌었고 그 결과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안타까워 진 것도 많다. 그 중의 하나는 요즘에는 연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청춘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청춘의 꽃은 연애다. 연애만이 인생의 낙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연애없는 청춘은 아주 아깝다. 우리때에도 누구나 연애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과는 분명히 다르고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연애는 양분화되고 있다. 그래서 아예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아주 많이 그리고 성적으로 개방적으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현상은 이미 일본같은 다른 나라에서 먼저 일어났는데 몇십년전에도 일본에는 초식남이라는 말이 있었다. 연애를 전혀 하지 못하는 스타일의 청년들 특히 남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그런 말이 생겼고 그런 경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증가했는데 내가 듣기에 요즘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양분화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40년정도 전과 비교해 말하자면 분명한 것은 그때는 일단 썸이라는 말이 없었고 연애는 반드시 육체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간 연애를 했지만 섹스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혼전순결도 지키는 경우가 많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애가 곧 섹스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하면 그것 자체가 연애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명의 남자나 여자가 여러 사람과 동시에 데이트를 하는 경우는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고 그 당시로는 암묵적으로 규칙위반이었다. 밥 한번 먹었다고 연애하고 있고 이 사람은 내 애인이라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남녀가 관심을 가지고 단둘이 만나기 시작하면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일단 앞에서 말한대로 썸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 말에 따르면 두 남녀가 같이 뭘 해도 그저 썸타고 있는 것 뿐이다. 사귀고 있는게 아니고 따라서 서로에게 아무런 의무가 없는 자유이며 동시에 10명과 썸을 타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둘이 사귄다고 할 정도면 섹스를 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많아졌다. 아니 심지어는 둘이서 섹스를 했는데도 사귀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관계가 늘어나는 것같다.
오늘날의 연애는 더 화려해지고 서구화되었다. 훨씬 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변화한 연애에 적응을 못해서 아예 연애를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하는 사람들은 연애를 자주 그리고 훨씬 더 성적으로 진하게 하지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데이트도 못해본 경우가 늘어난다. 방향상으로만 보면 연애는 원나잇 같은 것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거기에 발을 디디는 것이 두려워졌다. 연애가 게임이라면 그것은 훨씬 더 하기 힘든 게임이 되었다.
오늘날의 연애의 풍경은 전보다 훨씬 더 빈익빈 부익부의 상황이다. 사랑이 원나잇에 가까워 질수록 돈이든 매력이든 가진 사람들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연애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기회가 없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에게 같은 정도의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가난한 남자, 매력이 없는 남자는 이런 변화에서 최악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20대 청년 보수화의 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심지어 인기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잃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거지만 이런 현대적인 연애가 누구에게나 매력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연애에 있어서 가장 낭만적인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를 알아가는 부분이고 운명이다. 즉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낭만을 느낀다는 것이다. 서로를 알아야 잘 고른다지만 사랑은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무지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사랑이 꼭 운명적인건 아니겠지만 자유로이 모든 걸 꼼꼼히 살피고 경험한 다음에 즉 이 사람 저 사람 수없이 보고 나서 골랐다고 하는 건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보다는 눈감고 골랐는데 하필 이 사람이었고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사랑에 가깝다. 사랑과 연애에서 미지의 것에 대한 두근거림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운명은 그래서 사랑과 연애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한도 끝도 없이 썸을 탈 수 있는 상황은 오히려 연애를 시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뒤로 물러날 수 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말의 환상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독되어 자유란 좋은것이다같은 무의미한 말을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말이 무의미한 이유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규칙이 있을 뿐 규칙은 언제나 존재하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유가 없었는데 그 자유를 늘렸더니 좋은 세상이 왔다는 식의 이해는 사실 위험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칙이 다를 뿐 우리는 언제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면 우리가 왜 사법제도에 억압되어야 할까? 법치를 끝내고 도로교통법을 폐지하면 좋은 세상이 오고 모두가 자유로워질까?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자유 이데올로기의 중독자들은 연애 시장을 끝없이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고는 그걸 자유가 있어서 좋다고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게임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고기를 육지에 올려놓고 너는 이제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의 문제를 생각해 보라. 자유란 어떤 의미에서 환상이다. 그저 더 좋은 시스템이 있고 나쁜 시스템이 있을 뿐이다.
정작 그 자유롭다는 미국의 사람들이 한류드라마를 보면서 하는 말이 있다. 로맨스 드라마인데 6회 8회를 해도 키스 한번 안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좋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사랑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쟁취한 자유란게 결국 섹스할 자유였기 때문이다. 어렵고 제약이 있었던 시설에 연애는 연애이면서도 섹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낭만적이었다. 그때도 잘생긴 남자, 여자가 인기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대화를 나누면서 제정신을 차릴 기회가 좀 더 많이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섹스와는 다른 것이다. 그건 훨씬 훨씬 정신적인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사랑 이야기를 한줄로 줄여놓고 그게 같은 말이라고 하면 말이 안되듯 사랑을 그냥 섹스라고 정리해 버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지금 연애게임이 변하고 있는 방향은 그쪽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애라는 것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아예 연애를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저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것뿐이지만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웃는 연애를 할 수가 없다. 게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계속 의미를 부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섹스를 하기 전에는 한사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건 그저 썸이다. 그러니까 내일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와 같은 일을 해도 된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들은 섹스를 한 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게 되었다. 연애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과거에 아무리 여러번의 연애가 있었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은 억지고 슬픈 말이다. 과거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연애나 동거가 아무 것도 아니라면 이혼경력도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한다. 사실 다른 사람과 연애를 했는데 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슬픈 것이다. 말하지만 이건 연애를 우리의 근본을 건드리는 체험으로 여기기 보다는 점점 무슨 하룻밤의 유희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청년들은 무의미한 삶에 빠져든다.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나서 캔커피 한잔씩 들고 한두시간 떠들었던 그 남자, 그 여자를 의미있게 기억하는 사람이 바보같아 보인다. 세상이 계속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추억도 없다. 모든 만남과 관계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의미를 지워버리고 그건 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청년들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는 했다. 관계의 무의미성을 외치며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보다는 그런 작품에 감동하는 사람이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사랑과 연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것도 없는 청춘은 슬프다. 그런데 세상이 그런 청춘들을 양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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