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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26. 6. 3.

이 글의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지만 아마도 이 글은 이 질문에 완전한 답을 주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글의 제목이 그것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제가 무엇을 바꿔야 할 것인가에서 확률적 사고라고 부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은 일부죠. 살자면 밥도 먹고 빨래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합니다. 여러가지를 해야하는데 밥을 먹는건 그 일부지 전부는 아니죠. 마찬가지로 확률적 사고라는 것도 삶의 방식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살자면 우리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확률적 사고란 무엇일까요? 왜 이런 것이 필요할까요? 확률적 사고는 우리의 유한성과 미래 예측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합니다. 저는 자전거타기로 확률적 사고를 잘 이야기하는데요. 자전거를 타자면 매순간 도로의 표면이나 앞의 장애물을 살피면서 행동들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먼 곳까지 가기도 하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에 장기적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리 자전거를 어떻게 탈 것인가를 정하는 것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면 상황은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출발해도 옆의 사람이 자전거 타는 것을 보고 그대로 흉내를 내면 내 자전거는 쓰러집니다. 왜냐면 미묘하게 길이 달랐기 때문이고 그것이 누적되면 같은 행동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자면 환경에 민감하고 주체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같은 개념으로 접근하면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투자로 성공하는 사람의 행동을 뻔히 봐도 똑같이 못하는 거죠. 

 

근대적 사고, 과학적 사고는 객관적 보편적 사고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교과서를 배우고 같은 메뉴얼을 외우죠. 둘이 서로 다르면 둘 중 하나는 틀립니다. 진리는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확률적 사고에서는 자기 자신만이 이 순간에 가지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진리 따위는 무의미합니다. 어떤 의미로 나를 믿고 가는 거죠. 소개팅에 나가면서 어떻게 할 지를 메뉴얼 외우듯이 하고 나간 사람은 거의 반드시 실패합니다. 매순간 자기를 믿고 감각이 이끄는대로 말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알듯이 확률적 사고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이나 시대에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데에 있어서 확률적 사고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확률적 사고와는 다른 근대적, 과학적 사고인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시대는 확률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주 고지식하고 메뉴얼대로만 따라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육이 그런게 아니라 모든 교육이 그렇죠. 

 

생각을 바꾸고 보면 아주 많은 것들이 당연한게 아니고 알 수 없는 것인데 수 많은 것들을 우리는 당연시 여깁니다. 왜냐면 계속 그런 객관적 진리가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교육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것들은 서로 얽혀 있어서 우리는 하나씩 둘씩 선택을 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정말로 모든 일이 당연하게 됩니다. 그 작은 일들이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는 일이고,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학원에 가는 일이고,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를 고민해야 하는 일이며, 뭘 먹고 살지를 고민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서울에 태어났으니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일이고, 대학에 가야 하는 일입니다. 1등이 꼴등보다 좋은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꼼작달싹 할 수 없어지는 것이죠. 매달 내야하는 카드값이 있고,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고, 갚아야 하는 주택 융자금이나 학자금 대출금이 있으며, 심리적인 부채를 지고 있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있는 등 여러가지들 것들이 우리를 꼼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서 포기하겠다고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난리가 날 것이 뻔하고 조금 지나면 일이 더 힘들어질테니까요. 답답하기는 한데 이건 탈출구가 없는 감옥입니다. 

 

저는 제 책에서 확률적 사고를 여행으로 설명했었습니다. 우리가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고 해봅시다. 근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제주도 최고의 맛집이나 최고의 경치를 찾습니다. 그리고 여행기간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여행계획은 빡빡해 집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숨쉴틈없이 여행계획은 짜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해보면 마치 자전거타기처럼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어디에 가서 맛있는걸 먹기로 했는데 그날 따라 날씨가 안좋아서, 버스가 느려서, 갑작스런 복통으로 일정이 느려지거나 사라지는 등의 일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 일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다음 일정도 문제가 되지요. 그래서 열심히 짠 계획을 지키려면 우리는 항상 발을 동동 구르면서 빨리 다음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멋진 걸 봐도 그걸 생각없이 즐길 수는 없습니다. 멋진 곳에 도착하면 우리는 서둘러 사진을 찍고 자 이제 다음 장소로 갑시다하고 말하는 식이 됩니다. 아까말한 탈출구없는 감옥과 이 빡빡한 일정과 함께 하는 여행은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는데 사는게 점점 힘들어 집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확률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여행을 그냥 하나의 게임처럼 여깁니다. 대충의 계획은 있지만 일이 저절로 흘러가게 하며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에 집중합니다. 그러니까 꼭 가야할 곳따위는 별로 없는 겁니다. 여기 저기 다니다가 어딘가가 마음에 들어서 하루 종일 앉았다가 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근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제주도에 가서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해봤는지 아냐고 자랑할테지만 확률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이야기에 집중하고 자기의 마음에 집중합니다. 중요한건 객관적으로 제주도에 있는 어떤 장소에 가봤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해변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해서 서둘러 어떤 카페에 들어갔더니 그 카페가 너무 좋아더라라는 것은 단순히 그 카페가 좋다라는 사실 하나가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나오는 카페인거죠. 같은 의자라도 모짜르트가 앉았던 의자가 대단한 것과 같은 겁니다. 운명적으로 만난 여자가 대단한 것과 같은 겁니다. 

 

근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주변을 황폐화시킵니다. 왜냐면 그가 지나간 곳은 제대로 방문했다면 2번 방문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즉 열심히 빡빡한 계획대로 제주도를 다녀온 다음에는 제주도에 있는건 다봤기 때문에 제주도를 또 갈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확률적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제주도는 여행을 다녀와도 미지의 가능성을 가진 곳으로 남습니다. 여행이 좋았으면 좋았을 수록 다음번에는 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갑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여행의 의미는 바로 그 두근거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여행하듯 사는 사람은 바쁘기만 하고 삶에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라고 여기는 삶은 그가 당연시 하는 것을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길 여유가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결국 시시한 체면이나 존재하지도 않는 사랑이나 부질없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간섭같은 것들을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야 깨닫게 되곤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더 많은 연금을 받거나 더 많은 노후자금을 모으기 위해 평생 참는 것이 됩니다. 확률적 사고는 의미있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입니다. 아직 오지않은 내일이 가슴 두근거리지 않고, 아직 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해볼 시간이 아니라 그저 또 갚아야 할 빚을 갚아나갈 뻔한 하루라면 삶에 의미가 있기 힘드니까요.

 

오늘은 아내가 태국 치앙마이에 여행간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이 한달 소비가 얼마인데 소득이 얼마고 그걸 어떻게 썼고하는 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가 매우 듣기 불편했지요. 돈을 따지고 싶다면 한국에서 조용히 라면이나 먹고 살면 제일 쌀텐데 그렇게 대단한 여행을 가면서 뭘 그리 돈을 따질까 싶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좋은 걸 먹고 좋은 집에서 잘 것이며 돈이 없으면 싼 걸 먹고 싼 집에서 자면 되겠죠. 그런 여행을 간다면 그런 것과 상관없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두근거리는 걸 생각했기에 그런 여행을 가는가가 아니라 얼마 들여서 치앙마이에 얼마동안 여행했다는 것에 주목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행계획이 치밀할 수록 여행은 무의미해집니다. 

 

다 쓰지도 못할만큼 돈이 많은 부자인데 참으로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은 꽤 있습니다. 물론 제 눈에만 불쌍한지도 모르지만 제 눈에는 분명 불쌍합니다. 왜냐면 사실 그들은 애초에 별로 하고 싶은게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하고 싶은 건 비닐봉지를 들고다녀도 마찬가지인데 천만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자랑이나 해보고 싶은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맛도 모르면서 비싸다고 하니까 비싼 걸 먹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강력한 의지가 없으니 그런 부자들은 흔히 사람의 장막속에 갇혀서 정말 오도가도 못합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데 누굴 믿고 의지할 수도 없습니다. 그 돈을 탐내서 듣기 좋은 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들은 확률적 사고에 따라서 사는게 뭔지를 진작 배웠어야 합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깊은 감옥에 빠진 사람은 어렵습니다. 눈이 멀어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댓가에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감옥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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