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제가 쓴 글의 댓글에 누군가가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이 힘들었지 지금이 뭐가 힘드냐는 말이 자꾸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가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이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이 더 힘들다고 썼던 글에 남았던 댓글입니다. 일단 세상에서 평균이란 것의 의미는 제한적입니다. 그러니 남자고 여자고 옛날 세대고 지금 세대고 뭉뚱그려서 다 힘들고 덜 힘든 건 아니지요. 개인차가 큽니다. 그리고 더 힘들고 덜 힘든 건 궁극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라 남이 팔이 하나 잘라진 걸 알아도 내 팔에 피나고 멍든게 안 아픈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뭐하러 언제가 더 힘드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주로 주체적 삶,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더해보자면 특히 제가 속한 세대에게 선입견에 빠져서 옛날처럼 하면 된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같습니다. AI가 아니라도 그렇지만 AI의 시대에 그런 말은 옳지도 않고 해로우며 나이든 세대에게도 해롭지만 어린 세대에게는 더 해로우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남기고 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시대를 각자 자유롭게 살면서 그들이 살아갈 세상으로부터 직접 배우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딪히겠지만 그게 근대화의 물결속에 빠진 세상속에서 여전히 유학책을 읽으면서 시간 낭비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것을 측정하는 잣대에는 주관적인 면이 있고 객관적인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보다 국민소득이 10분의 1이었을 때도 상대적으로 부자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부유함은 국민소득이 10배가 된 지금보면 객관적으로 그리 대단하지 않지요. 자가용이 있으면 부자였던 시대를 지금 보면 자가용이 뭐 대단한 일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잘사는 것과 절대적으로 잘 사는 것중에 뭐가 더 중요한 걸까요? 분명 주관적인 면과 객관적인 면 둘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종종 주관성이 훨씬 중요하지요. 만약 물질처럼 객관적 측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행복같은 걸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더욱 더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객관성이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목숨이 위협받고 굶어죽을 것같은데 상대적으로 부자고 뭐고를 따져서 뭘하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저의 부모님 세대인 지금의 노인 세대는 이 객관성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세계대전과 6.25를 겪고 한 때 한국이 전세계에서 제일 가난하여 국제구호물자를 받던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같은 세대중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가족 중의 누군가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비극적인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자입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가난과 착취와 전쟁으로 죽었으니까요. 그들은 확실히 쌀밥을 배불리 먹는게 소원인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행복을 객관적인 잣대로 재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입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래프를 AI에게 하나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건 고등교육비율로 그 세대의 인구대비 당시의 대학에 등록한 사람의 비율입니다. 1950년에는 이 비율이 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그래프는 1990년에 가도 25%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빠르게 올라가더니 이제는 100%입니다. 이 숫자는 재수생이나 나이든 사람이 대학에 다시 들어가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100%를 넘길 수도 있는 숫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일테니 이제 우리는 누구나 대학에 들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앞에서 말한 노인세대의 객관적 상황이 워낙 나빴기 때문에 자주 말하지는 않지만 노인세대가 생존자라는 사실은 의미가 큽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세계대전 이후에 경제적 황금기가 옵니다. 전쟁이 많은 것을 파괴했습니다. 인구는 줄었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만 생존자들에게는 일거리가 많았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었다는 뜻입니다. 배운게 없어도 열심히만 하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문장에서 보통 열심히만 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지만 실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이미 어느 정도 승자였고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쉬웠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시대의 객관적 어려움을 생각했을 때 여기서 쉬웠다는 단어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을 쓰는 문맥에서는 그 표현이 너무 거슬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위에서 보여준 그래프는 각각의 세대가 사회로 나왔을 때 어떤 기성세대와 경쟁하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저는 소위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앞에서 말한 노인 세대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애도 낳아서 인구가 마구 늘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당시의 저로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상황은 이랬습니다. 일단 부모 세대보다 우리가 숫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모세대보다 우리가 훨씬 더 배운게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당시의 기성세대가 만만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니들이 뭘 아냐면서 낡은 시대의 관행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고 있었죠. 하지만 교육을 통해 세계적 보편을 배운 젊은 세대는 그렇게 순순히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의 민주화 운동이 대학시위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에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도권싸움이고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싸움이었습니다. 더 많이 배우고, 숫자도 많았던 젊은 세대가 대통령을 왕과 구분못하는 기성세대들과 싸운 겁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동기가 있었지만 사실 젊은 세대로서는 기성세대의 질서가 유지되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학교에서 마구 폭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의 엉덩이를 나무방망이로 너무 때려서 피멍이 드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바지와 엉덩이가 피떡으로 붙어버리는 일을 학교에서 보는 겁니다. 그게 학교만의 일이었겠습니까. 사회도 군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안되면 되개하라는 무식한 일이 흔했죠. 그대로라면 젊은 세대는 북한처럼 권위주의적이고 불합리한 세상에서 하층민이 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싸웠습니다. 숫자로 훨씬 많았고, 교육의 수준도 훨씬 높았는데도 민주세력은 21세기인 지금도 아직도 한국의 완전한 중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한국은 독재하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당당히 정치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그런 사람들이 지지하던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민주세력이 진 건 아닙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정권도 교체되었고, 한국은 분명 민주화되었습니다. 눈높이가 달라졌지요.
이제 요즘의 청년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객관적으로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는 비교조차가 안됩니다. 국민소득이 100배이상 차이나니까요. 심지어 부모세대인 저조차 청년시절에는 해외에 여행가는건 재벌이나 하는 건줄 알았습니다. 해외 여행 자율화가 안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객관성을 빼고 주관성과 상대성을 보면 이렇습니다. 일단 그들은 숫자가 작습니다. 이제 사회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는 다름아닌 베이비붐 세대나 그들보다 좀 더 젊은 세대인데 지금의 청년들은 그들에 비하면 숫자가 작지요. 게대가 지금의 기성세대는 노인세대처럼 교육을 못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랜간 사회에서 경험도 쌓았습니다. 자본도 축적했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뭘 원하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건 그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주도권을 잡는 건 참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제가 젊어서 부터 계속 느끼는 건 같은 나이의 사람이라면 옛날 사람들이 훨씬 더 어른스러웠습니다. 지금의 30대 40대는 옛날 기준으로 보면 겉보기에도 젊을 뿐만 아니라 행동도 아이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의 의미와 이유는 여러가지이겠지만 저는 한가지 이유가 바로 주도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책임자의 자리에 앉으면 언행이 소위말하는 어른스럽다는 사람처럼 변하게 됩니다. 왜냐면 결정을 자기가 하고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하니까요. 내가 가장이라면 우리 집이 행복하지 못한 것의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내가 가장이 아니라면 나는 가장에게 떼도 쓰고 때로는 가장이 이렇게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냐며 항의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성세대가 강력히 기득권을 독차지할 수록 젊은 세대는 벽을 느끼고 조금씩 소위 아이처럼 구는 겁니다. 내가 내인생의 주인이고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체념하면 할 수록 행동이 무책임하고 떼쓰는 어린 아이같아집니다. 어차피 자기 말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자기가 누굴 책임질일이 아니고 그냥 자기는 자기일에만 신경쓰면 되니까요. 어차피 부모님이 나타나 해결해 줄테니까요. 이건 꼭 기성세대를 옹호하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능력이 없는데도 주도권을 강력하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겉보기에 어른스러운 것과 권위적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상당히 겹칩니다. 다만 젊은 세대가 책임자의 위치에 서기는 점점 더 힘들어져 왔다는 겁니다. 10대에 이미 소년 소녀 가장으로 살아야 하는 일도 많았던 옛날과는 다릅니다.
노인세대는 생존자의 시대였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면 베이비붐 세대는 더 많은 교육과 숫자를 기반으로 세상을 혁신하고자 하는 희망을 실현할 수 있었던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엄청나게 강력한 기성세대와 싸울 힘이 거의 없는 세대입니다. 게임의 규칙은 기성세대가 만들었고 그저 그 게임의 규칙에 적응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그들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삶, 주체가 되는 삶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AI 혁명같은 사회적 변화가 기성의 시스템을 흔드는 흐름을 타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들이 유치원생때부터 공부 공부하면서 크게 된 것은 물론 기성세대때문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게 정말 쓸모가 있다면 말입니다. 제 생각에 한국의 교육은 점점 무의미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계속 유지하는게 기성세대입니다. 한국의 교육은 고의로 실패하고 있습니다. 신입사원이 무능해야 상급자는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기성세대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신세대를 무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벽을 쌓고 이 안에서만 놀라고 해서 말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그들 자체가 시스템입니다. 즉 그들이 책을 만들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 시스템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시스템의 일부인 기성세대의 자연스런 반응이죠. 사냥기술로 성공한 사람은 사냥기술의 가치를 계속 긍정합니다. 옛날 교육시스템을 거쳐나온 사람들은 젊은 세대가 그걸 통과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는 학교를 탁아소나 감옥으로 씁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이를 계속 학교와 학원으로 돌리면 부모가 편하다는 겁니다. 물론 그게 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로 인한 금전적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분명 부모입니다. 하지만 노인세대처럼 아이를 골목에 풀어놓고 방목하는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 아이를 쫒아다니자니 에너지도 부족하고 자기 삶을 살 시간도 부족한 베이비붐 세대는 아이들을 계속 탁아소나 감옥에 보내는 겁니다.
세상은 바뀌어서 이제는 다수의 노동자가 필요한게 아니라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일찍부터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커야지 대체가능한 인력으로 커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입시라는 틀안에서 한국의 교육은 고정되어 있고 대다수 학생들은 그 시험이 끝나면 쓰지도 않을 지식, 모두가 배우기 때문에 차별성이 없는 지식을 열심히 배웁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니 각자 자기 길을 찾아야 하고 그러자면 자유가 필요한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자유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골목에서 어슬렁 거리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를 스스로 고민하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항상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테두리에 놓여졌죠. 세상을 보지 못하게 눈이 가리워졌습니다.다 큰 20대가 될 때 까지 말입니다. 물론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있지만 실제 체험은 불가능한거죠.
저는 이같은 현실이 모순을 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아이 취급하는 것이 그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가 어른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될거라는 점을 느끼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제가 요즘 젊은이들이 예전 젊은이들보다도 더 힘들거라고 말하는 건 이런 의미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둔다는 걸 알게 되면 진로를 바둑으로 정하기 쉽겠죠. 그런데 세상은 다 잘났고 빈틈이 하나도 없다면 뭘 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세상에 빈틈이 정말 없는지, AI가 정말 기성 질서를 뒤흔들것인지는 이 글의 주제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관련된 주제지요. 그런건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으니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런 종류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가르치는 것만을 그대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빈틈을 파고들고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행복은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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