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불안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이겠지만 공통되는 원인 중의 하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일 것이다. 사람은 어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아이로 태어나서 자라나고 언젠가는 부모와 같은 입장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반드시 자신의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떠밀려가듯 들어가게 되는 어떤 새로운 입장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진다는 뜻이다. 사실 청년에게 있어서 비교의 대상은 흔히 부모가 아니라 자기와 같은 세대의 다른 청년들이다.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커리어를 쌓고, 집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하는 식으로 인생이 진도가 나가는 거 같은데 나는 그걸 할 수 있을 지, 하고 있다고 해도 계속 잘할 수 있을지 어느 순간 쾅하고 망하는 거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이래 모든 나라에서는 특히 한국같은 나라에서는 구조적으로 청년을 불안하게 만드는 면이 존재한다. 근대 이래 모든 나라는 발전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건 꼭 모든 나라가 실제로 발전한다라기 보다는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게 정상이 아니라 발전하는게 정상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자 나라들 중의 하나가 되는데 3세대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근래에 이보다 빨리 부유해지고 발전한 나라가 없다. 우리는 발전강박같은 게 있다.
그런데 왜 발전이 청년을 불안하게 할까? 나는 슈퍼에서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이 아이는 고기를 좋아하지만 그 고기를 자기가 사지도 않을 뿐더러 그 고기를 공급하는 소나 돼지를 자기가 죽이지도 않는다. 어느날 그 아이가 도축장에 가서 죽어가는 가축을 보면 아마도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 예는 오늘날 우리가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시스템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발전이라고 할 때 주로 이 거대해져가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발전된 사회속의 개인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전체를 보는 눈이 없어진다. 고기를 즐기면서도 그 고기가 누군가를 죽여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이제 고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에게 도축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과 시스템이 거대해 졌다는 것을 합치면 이렇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점점 더 거대한 시스템에 적응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시스템 의존도가 더 높아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사회는 말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나에게 복종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이 시스템에서 추방될 것이다. 사회 시스템에 중독되어 있을 수록 추방에 대한 공포는 더 커진다.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불안은 도축장의 존재를 알게 되면 공포가 커지듯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록 더 커진다.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더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청년이 이런 불안을 겪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지만 사회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더 높이 뛰고 싶으면 모든 걸 잃는 걸 덜 불안해 해야 한다. 진짜로 성공하자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회가 청년을 협박하면서 더 불안하게 만들고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만 던지면 어떻게 될까? 죽자 사자 이미 공인된 안전한 길만 가려고 할 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전부 의대로 가고, 성적이 그보다 안좋으면 공무원을 꿈꾸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길은 정말 불안을 해소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일까?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태도는 오히려 스스로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의사라는 직업이 좋아서 하는건 좋은 일이지만 정말 지금 의사가 되려는 청년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의 의사는 몰라도 그 청년이 자리 잡는 20년뒤의 세상에서 의사로 훈련받은게 정말 귀한 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까? 나는 답은 모른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의사가 되면 안된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확률로 보면 답은 부정적이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추천하는 길을 가는 것은 마치 주식시장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고 할 때 사고 팔라고 할 때 파는 것과 같다. 그런 조언은 대개 틀린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야 할 때라고 느끼는데 아무도 그렇게 느끼지 않고 내가 맞아야 주식을 사는 것이 가치가 높은 것이지 모두가 사야 한다고 느끼는 경우라면 높은 확률로 반대로 팔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주식의 가치에 이미 그 주식이 올라야 할 이유가 다 반영된 후다. 이걸 의사에 적용하면 모두가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는 이미 의사가 몰락하기 시작한 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두가 미쳤다고 말하는 길이야 말로 지금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 일 수 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길로만 간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낮다. 성공이란게 근본적으로 남과 다르다는 뜻에 가깝기 때문이다. 남들과 매번 똑같이 하면서 어떻게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청년의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남의 목소리에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핵심이 두가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인생이란 확률적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인생이 정답맞추기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내릴 결론은 뻔하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경험많고 똑똑한 다수의 사람이 있다. 인생이 정답맞추기라면 우리는 남들이 말하는 정답에 따라야 한다. 자신의 삶이란 애초에 부정된다. 그러니까 인생이 확률적이라는 것, 똑같은 선택을 해도 결과가 같지 않으며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선택의 결과보다 선택의 과정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태도를 바꾸게 되면 우리는 설사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을 하라고 해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거듭말하지만 인생이란 확률적이다. 당신이 정답을 선택했으니 좋은게 나오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을 들었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고날 때를 대비해서 지불한 보험료는 낭비이고 그런 선택은 어리석은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당신이 사고가 나지 않은건 당신 힘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당신이 똑같이 운전했어도 사고는 날 수 있었다.
선택의 결과에 집중하면 우리는 게임의 본질을 잊게 된다. 이 삶이라는 게임은 본질적으로 확률적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선택했다면 그 결과가 나빴다고 하더라도 후회를 해서는 안된다. 전재산을 걸어서 대박이 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그런 도박을 했을 것이고 그것이 성공했다면 그건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당신은 어떨까? 아 나도 전재산을 따라서 걸었으면 성공했을텐데 그러지 않는 나의 선택은 틀린 것일까?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신에게는 그게 너무 불확실해 보였다는 뜻이다. 불확실할 때 전재산을 걸지 않은건 옳은 선택이다. 그 결과가 대박이었다고 해서 과거에 투자하지 않기로 한 선택을 잘못한 거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설사 한두번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스스로 금방 그걸 다 까먹을 것이다. 왜냐면 선택을 함부로 근거없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불행해 질 수있다. 사고가 나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직장과 명예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우리는 유한하다. 그런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건 마치 전재산을 보험료로 지불하는 사람처럼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간다. 그게 불안이다. 아무리 그 불안을 다 없애려고 해도 그 불안은 다 없어질 수 없는데 왜냐면 애초에 인생은 확률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해서 미래를 지배할 수 없다. 다만 확률을 바꿀 수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댓가가 있다. 그래서 특정한 불안에 몰입하면 댓가를 너무 많이 치루고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길 확률이 올라간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너무 시스템에 빠지지 않게 독립성을 유지하며, 뭔가를 선택할 때는 너무 빠르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그러러면 인생을 되도록이면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을 선택하다보면 천천히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것을 해도 인생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런 일이 벌어져도 후회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걸 대개 못한다. 그러기에는 대개 그들은 경험이 너무 없다. 그들은 빨리 성공하고 싶어하고, 실패가 너무 두렵다. 그래서 진짜로 그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길로 가지않는다. 백번 성공해도 백한번째에서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한 불안은 사라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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