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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3대를 가지 못하는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6. 3. 19.

세상에는 부자 3대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기 객관화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환경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극히 어렵다. 누가 자신의 그 환경을 지탱하고 있는 지를 사람들은 대개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기둥이 사라져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꽤 잘할 수 있을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물론 부자집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객관적으로 자신의 집이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10원 한장 벌어 본 적이 없지만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자기가 부자집이라는 환경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을 아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대개 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다라는 말은 매우 어려운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우리가 뭘 모르는 지를 모른다.

 

빌딩을 가지고, 거대한 땅과 현금을 가진 사람이 돈을 불리거나 자산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쉽게 느껴질 수 있다. 사실 좋은 자리가 저절로 돈을 불린다. 그래서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실은 그 저절로 돈이 들어오게 만드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며 그런 노력은 그들이 한게 아니라 그들의 부모나 그 위의 조상이 한 것이다. 그런 자리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면서도 그런 자리를 차지하려면 매우 운이 좋으며, 재능이 있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중의 어느 하나만이라도 빠지면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왜냐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그걸 알아보는 사람도 많으며 경쟁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자리가 어떤 의미인지 다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런 걸 아는 것 자체가 바로 운과 재능과 노력을 요구하고 그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유한하고, 누구나 자기 주변의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있다. 친구들이 전부 명품백을 들고 다니고, 누구나 집에 명품차가 있으며, 누구나 집이 10억이상씩 하는 집에 살고 있으면 머리로는 모두가 이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어느새 누구나 그런 것으로 사고 하게 된다. 박사들만 있는 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그런 사람만 만나면 세상에 존재하는 박사의 수를 과대평가하게 되고, 중졸만 있는 환경에서 살면 세상에는 대졸이 아주 흔하다는 사실을 모르게 된다.

 

우리가 느끼고 보는 세계란 실은 있는 대로 느껴지고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앎에 기반하여서 만들어진 세계다. 원숭이처럼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앎을 그 이상으로 확장하는 것 자체가 역사적 노력의 결과다. 즉 언어를 발달시키고, 문자를 발달시키고, 의무교육을 받고,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결과로 사람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사람은 우주론을 배워서 몇억년 전을 이야기하고, 세계 지리를 배워서 지구 반대편에 대해서 알게 된다. 이런식으로 과학과 인문학을 배워서 무수히 많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지식의 기반위에서 사고 하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으로 보이게 된다. 당신이 총알이 날아다니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장기간 시간을 보낸다면 그 경험의 강렬함으로 인해 지금이 전쟁중이라는 사실을 잊기가 극히 어렵다. 그런 사람이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오면 그 세계를 당연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정신병자로 보이기 쉽다. 장기간 정신병자같은 가족들 사이에서 성장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독립한 경우에도 정신병자같은 가족들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들은 정상인 사이에서 오히려 불편해 하게 된다. 누구나 자아 성찰을 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실제로 누구나 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유한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뭔가가 변하거나 누군가가 죽는다. 유한한 우리는 그 의미를 다 모른다. 인간의 삶이란 종종 당첨된 복권을 찢어버리면서 나는 부자가 되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가진다. 운이 좋아서 나중에 뒤를 돌아보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그때서야 아 내가 그때 정말 운이 좋았구나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정말 스스로 나를 망하게 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며 나중에라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수 밖에 없다. 그럴 정보가 없고 알아볼 식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환경이 나에게 뭘 해주는지 모른다. 자기가 노력하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라는 논리는 우리가 전부를 보았을 때나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돌아보면 친절한 누군가의 말한마디나, 그저 그런 동네에 태어났다는 행운 그리고 자신은 늪에 빠져들면서도 나를 어딘가로 밀어 올린 누군가의 애정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사악한 누군가의 말한마디나 그저 그런 동네에 태어났다는 악운 그리고 자신이 올라가기 위해 나를 어딘가로 밀어넣은 누군가의 욕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당신의 나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은 대개 점점 더 액체화되어 왔다. 즉 더 빠르게 변하고 고정된 것이 사라져 왔다. 이 말은 이 글에서 말한 그 모든 효과와 변화가 더 커지고 더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터에서 사는 법이 다르고, 평화만 있는 동네에서 사는 법이 다르듯 우리는 이제 점점 더 많이 우리가 뭘 보고 느낄 수있는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르면 변화가 더 빠르다. 어쩌면 먼 옛날에는 부자가 10대를 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즘은 부자가 2대를 가기도 어려울 수있다.

 

그래서 요즘은 공공정신을 가진 시민의 가치가 더욱 크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생각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들은 집단지성으로 움직이는 사회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집단지성이 망가지면 그 안에서 혼자서 뭘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인공지능 시대에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은 어느 정도 질문자체가 잘못되어져 있다. 그런 시대에는 개인이 혼자서 뭘 아무리 해도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야 한다. 같이 살아남자는 정신이 없으면 우리는 빠르게 망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벌써 그걸 아주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윤석렬 정권동안 망가졌던 한국이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는가 하면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이 아주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 한국의 개인은 커녕 삼성이나 하이닉스같은 거대한 회사도, 애플이나 테슬라같은 거대한 회사도 그들이 깊게 뿌리 박은 사회의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삼성의 주가가 불과 1년 사이에 4배로 뛰어오르는 일이 생긴다. 이것은 대중의 정치적 선택이 만들어 낸 일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 코앞 이외에는 보지 못한다. 그들이 운이 좋으면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운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크게 망할 것이다. 남들이 주식으로 돈버는 한국에서 인버스 주식을 사서 망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말했듯이 당첨된 복권을 들고 그걸 불태우면서 부자되고 싶다는 사람은 세상에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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