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여러가지를 말해 왔지만 내 생각에는 그 모든 지적의 바탕에는 보편과 특수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으며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점차로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은 현실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보편적 지적 체계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 지적 체계는 고층건물처럼 한층 한층 쌓아올려지는데 앞의 것을 익히지 않으면 뒤의 것을 익힐 수 없다. 좋은 예는 구구단을 외우지 않으면 미적분을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일테지만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음악이나 미술같은 분야처럼 꼭 그럴것 같지 않은 분야도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지금의 학교 교육이 기본적으로 특정 단계에 해당하는 보편적 지식을 습득했음을 증명하는 증명서인 졸업장을 발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는데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 자연히 상급학교의 교사들이나 교과서는 학생들은 하위학교에서 어떤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교육을 진행한다.
이러한 교육현장을 보면 우리는 하나의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원칙이란 어떠한 중심적 개념은 일단 가르쳐 지고 난 후에는 다양한 구체적 사례에 적용되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어 문법을 배웠으면 그걸 사용한 영어 문장을 읽어야 하고, 그걸 사용해서 영어 문장으로 자신의 뜻을 펼쳐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수학을 배웠으면 그 수학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경험해야 하고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이것이 보편과 특수의 문제라면 그건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일반적 원칙을 배우면 그걸 구체적 사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구체적 사례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그 구체적 사례란 그걸 배우는 사람의 실제 생활에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라면 민주주의의 역사를 배우는데 있어서 프랑스나 미국의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느끼는 것보다는 한국의 역사속에서 그 사례를 통해 그걸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과 특수의 긴장을 보게 되는데 보편은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며, 똑같은 시험을 같이 치르게 되어 있다는 사실에 얽매여 있다. 특수는 이 세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져 왔으며 그래서 다양한 사례를 그 똑같은 교과서에서 언급하고 있더라도 그 사례들은 그걸 배우는 학생들의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농촌의 아이들이건 도시의 아이들이건 그들은 똑같은 사례를 읽고 공부하고 시험을 본다. 그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진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속에서 그런 느낌은 묵살되고 만다. 왜냐면 교과서에 없는 건 시험에 안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 교육은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복잡해지고 공부해야 할 것이 증가함에 따라 점점 더 죽은 지식의 탑을 가르치는 것이 되어 왔다. 학생들은 점차로 시험을 보기 위한 지식만을 공부한다. 그 지식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가치있는 것이 된다는 생각은 예전에 자취를 감췄다. 시험을 위해 공부한다는 생각속에서 그런 걸 강조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 선생님은 오히려 좋지 않은 선생님으로 말해질 것이다. 국어시간에 한줄의 글을 놓고 더 많은 것을 읽기 전에 이걸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게 기말고사에 나오냐는 말을 듣지 않겠는가?
특수란 결국 삶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특수란 공부하는 학생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는 것을 거기에 적용해 보는 자기 성찰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진정으로 보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특수를 가르치려고 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철학수업을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 교사는 교과서에 있는 10년 50년전의 세상이 아니라 지금 창밖의 현재 사회를 보라고 할 것이다. 그런 교사는 치열한 입시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같은 보편과 특수 사이의 긴장을 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이 지금의 교육제도 내에서는 해소 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은 마치 각각의 단어들을 어떻게 쓰는지를 연습하지도 않은 채 영어 사전이나 국어 사전처럼 단어들의 정의만을 나열하면서 그걸 외우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언어를 배우는데 그 언어를 활용해서 각각의 단어가 서로 어떻게 함께 사용하는 지를 느끼고, 무엇보다 자신의 상황을 그 언어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지 않는다. 그냥 단어의 정의만 줄줄 외운다. 이래서는 어학공부로서는 실패일 수 밖에 없다.
학교 교육은 사실 영어 과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걸 배우는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면 그 언어를 활용해서 이 사회를 살아갈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사람으로 키워지기 보다는 직장에서 일하는 로봇, 철학과 자기생각이 없는 로봇으로 키워지고 있다. 직장에서 일하려면 노동의 개념과 규칙등 노동의 메뉴얼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명령이 들어오면 로봇처럼 그걸 수행하는 것만 배운다.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개념들이 실은 서로 연결되어서 풍요롭게 세상을 보여줄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특수한 요구를 해소하기 위해 활용되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없다. 오히려 바쁜 입시공부를 위해 되도록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을 강요당한다.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실 2가지가 있다. 첫째로 지금의 학교교육은 사실상 100년전의 교육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면 지식체계란 순서대로 쌓아올리는 거라서 그렇다. 미적분은 350년전에 만들어 진 것이지만 21세기라고 해서 초등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우는 건 아니다. 둘째로 AI가 학교 시험을 너무 잘 본다. AI는 그야말로 보편적인 지식밖에는 모른다. AI는 희노애락도 없고 욕망도 없으며 따라서 문제도 없고 개인적인 역사도 없다. AI가 지적인 희열을 알며 사랑을 알겠는가? 그런데 그런 AI가 수능시험을 보면 만점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런 AI는 실제의 구체적인 직장이나 일자리에서는 아직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왜냐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실제로 일하기 위해서는 메뉴얼을 넘어서서 그 구체적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만 아는 AI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은 뒤집어 말해서 지금의 교육이 어떻게 로봇같은 인간만 키우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아는 학교가 거의 폭파당하는 수준으로 몰락하지 않는 한 계속 나빠질 것이다. 보편과 특수 사이의 긴장은 애초에 지금과 같은 학교 구조에서는 해소될 수 없다. 진학의 개념이 있고 시험을 통한 평가라는 개념이 있는 한 그럴 수 없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과학이나 영어에 빠져서 다른 과목 공부를 그만하고 마음껏 그 주제에만 빠져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한다면 누가 그 학생을 가르칠 것이며 누가 그 학생을 평가할 것인가? 그 학생은 현실적으로는 낙제생이 되고 진학에 실패하기 쉽상이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서는 점점 더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역사에 미쳐서 역사를 공부하다가 나중에 다른 과목의 지식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과목도 공부하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그 의미도 모르는 단어들만 외우는 공부를 10년 20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학생들은 전문성도 창의력도 없는 로봇이 되고 만다.
이 문제는 지금의 학교를 조금 고쳐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교육제도 전체가 무너지고 새로운 교육의 개념이 들어서야 해소될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그래서 마치 전근대의 서당교육같다. 이미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서당에서 이것저것 지식을 가르쳐도 그것이 근대 학교가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근대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데 근대학교에서 이것저것 다른 것을 시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시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학교가 되지는 않는다. 결국 모순은 누적되다가 터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를 자퇴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학교를 다니는데 취업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바보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서 학교 바깥에서 살 길을 찾고 나름의 사회를 구성할 정도가 되면 그런 흐름은 더 커질 것이다. 지금은 학교 바깥의 삶이라는게 아예 없으니까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학교에 가는 일도 많다.
그러나 이건 비극이다. 뭔가가 무너지면 희생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미 근대화가 한참 진행되었는데 자신은 지난 20년간 공자 공부만 했다거나 성경공부만 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희생자다. 사회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세상속으로 돌려놓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 큰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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