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제가 사는 곳에 손님이 왔었습니다. 가끔 있는 블로그 구독자 손님이죠. 그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마음에 걸려서 여기에 몇자 더 적어 봅니다. 그건 바로 교육이 실패하는 원천적 이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지금 시대에 실질적으로 교육의 목표가 없고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배움과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오늘은 내일을 위한 거라는 생각은 존재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의미가 없어보여서 내일을 준비할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공부도 하고 싶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단계 다음 단계를 밞아 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바람직하고 쓸모있는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을 믿기에 지루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산의 정상은 멀었기에 계속 산의 정상만 생각하다보면 등산이 너무 힘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산의 정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계속 오를 수가 없겠죠.
교육에는 목표가 있고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이 뻔한 이야기는 더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가 젊었을 적에는 교육의 목표는 실질적으로 대학입시였습니다. 완전히 그렇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만 1980년대에는 오직 30%정도의 학생만이 대학에 갔고 그러니까 명문대에 들어갈 정도면 취직 걱정은 없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안되는 학생들은 기술을 배우거나 장사를 배운다는 생각을 일찍하지 않을 수 없었씁니다. 그래서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대학에 일단 들어가고 나면 낭만을 찾고 철학을 찾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적당히 공부해도 학점은 나오고 졸업은 할 수 있고 취직도 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는 후진국의 아픔이 있었지만 선진국이된 요즘 대학생들은 물론 그 시절이 부러울 것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준비하느라고 동아리 활동도 안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교육의 목표는 취업인거 같았습니다. 어디든 취업만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럴듯해 보였고 9급공무원 시험이 너무나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꾹 참았다가 드디어 취직이 되면 이제 돈도 생겼으니 연애도 하고 해외여행도 가보고 차도 몰아보는 자기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취직 자리 자체가 드물어졌을 뿐만 아니라 취직해도 그리 오래 다니지를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인격의 도야같은 고상한 목표를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겠으며 저는 그런 답도 좋다고 인정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요즘은 부모도 학생도 도대체 자신이 왜 수십년간 엄청난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고통을 감내해 가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를 알기 어려워졌고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얼마전에 새 책을 한권썼습니다. 하네스, AI 시대의 새로운 몸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그 책에서 새로운 시대의 교육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하네스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AI 시대에는 AI를 써서 문제를 푸는 법을 알아야 하고, 그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네스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네스는 새로운 시대의 언어이며 그 언어를 써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법이라는 겁니다.
일단 이 글에서는 제 답이 옳은가 그른가는 핵심적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그냥 제가 옳다고 해봅시다. 이렇다고 할 때 이런 이야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미래에 대한 비전의 존재가 교육의 의미를 크게 바꾼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보다 분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지금의 교육과정도 하네스 만들기라는 관점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미적분을 배우려면 사칙연산을 배워야 하듯이 하네스 만들기도 제대로 하려면 기초가 필요합니다.
이 비전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다시 교육을 돌아보면 우리는 새삼 느끼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교육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미래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삶의 비전이 망가졌습니다. 본래 근대 사회에서는 미래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무교육도 나오고 계몽주의라는 철학도 있었던 것이죠. 그 근대의 비전에서는 우리가 열심히 지식을 익히고 시스템을 건설하면 그 시스템이 우리를 행복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준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상이 엉망이라면 그건 세상이 아직 못배운 사람이많고, 시스템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시스템을 고치면 좋은 세상이 올 겁니다. 우리가 살아갈 길도 보일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도 베트남도 아프리카도 모두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실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대학졸업생이 너무 많은게 문제입니다. 세계는 계몽되었고 시스템도 세워졌습니다. 너무 많이 세워져서 그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졌고 그래서 우리가 억압을 느낄 정도가 되었죠. 그러니까 교육을 더 보급하고 더 시스템을 잘 만들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비전을 우리가 믿을 수 없게 된 겁니다. 경험상 우리는 법이 더 복잡해질 수록 오히려 시스템은 나빠질 뿐이라는 걸 배웁니다. 대학입시가 복잡해지고, 법체계가 복잡해질 수록 입시는 불공평해지고 재판도 불공평해지는 느낌입니다.
결국 제가 말하는 것은 교육의 실패의 뿌리는 근대의 비전이 망가졌다는 사실에 있다는 겁니다. 예전에 되던게 지금은 안됩니다. 덕분에 학생들은 지금 자신이 서당같은데에서 공자님 말씀을 배우는 느낌일 겁니다. 시험을 보자면 배우기는 해야 하고 좋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게 정말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인지 확신이 없습니다. 이제 수능시험을 만점받는 AI도 나왔으니 더하지요. 그 시험을 잘보자고 공부를 하는데 AI가 만점을 받는다면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는게 아니라 AI를 써서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대의 비전은 망가졌고 그걸 먼저 느낀 것은 아마도 선진국일 겁니다. 그래서 인지 제가 보기에는 요즘은 선진국 시민들의 대중 교육 수준이 형편없습니다. 그들은 아는 것도 없고 질서의식도 없습니다. 상대적이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근대적 비전에 따라서 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회는 근대적 비전속에서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세상을 둘러보면서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를 보면서 저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선진국이란 말인가 하고 당황하게 되는 것이죠.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는 과도기를 살고 있거나 문명의 쇠락기를 살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AI 시대의 비전에 따라서 사는 방법을 크게 바꾸는 혁명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거나 그런거 없이 그냥 비전이 망가지고 문명이 망가지는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겁니다. 황무지라도 우리 앞에 넓은 땅이 있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분명합니다. 개간을 하면 좋은 세상이 오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 바로 우리는 그런 분명함을 가지고 있질 못해서 각자 알아서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학교가 그걸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오직 크고 넓게 보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미래를 향한 보편적인 비전이 될만한 것을 찾아내는 것일 겁니다. 그게 없이는 교육을 개선해 보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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