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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26. 6. 10.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3편만 봤지만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라기 보다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져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 드라마가 현실적이냐 아니냐는 뭘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만약 이 드라마를 보고 체벌로 학생을 교육하는건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옳겠죠. 하지만 그런 답은 진짜 거대한 진실을 외면하는 겁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 교총이 선생님에게 필요한건 주먹이 아닌 법적 보호장치라고 답했다고 말하던데 그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육의 현실을 이렇게 만든 가장 큰 범인은 교총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아무 희망없는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진실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고 가장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은 이겁니다. 선생님을 포함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통제하는게 불가능해 졌습니다. 위에서 교총이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걸 저는 비판했는데 그 이유는 그런 대답에는 제가 방금 말한 진실에 대한 외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법적 조치가 필요는 하겠지만 그것이면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거라고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제가 말한 진실은 이런 질문을 통해 다시 말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 총을 든 아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아이는 아이취급을 받아야 할까요? 어른 취급을 받아야 할까요? 아이가 총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 아이는 촉법소년이므로 처벌을 받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어른처럼 사법처리를 받아야 할까요? 총으로 사람을 죽였는데도 처벌도 하지 않고 총도 빼앗지 않고 상황이 같아야 할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애초에 아이에게 총을 빼앗아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아이가 가진 총은 사실 빼앗기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직한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총의 이름은 지식이고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멀티 미디어를 통해 어른들도 모르는 것을 얼마든지 보고 듣습니다. 서로 정보도 나눕니다. 아이들도 SNS를 하면 때로 몇십만 팔로워를 가지고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아이들에게서 지식을 빼앗고 인터넷으로부터 격리해야 할까요? 그게 가능하며 가능하다고 해도 과연 바람직할까요? 20살정도까지는 티비도 인터넷도 써본적이 없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까요?

 

교총같은 단체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학교는 어른이 아이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로 설계되어져 있습니다. 그 권력은 교권으로 불리곤 합니다. 선생님들은 그 교권의 뿌리를 선생님의 지적, 인격적 능력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그건 진실의 절반도 안됩니다. 교권은 사실 학교시스템이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지금 망가진 겁니다.

 

교권의 핵심은 사실 다른 많은 권력이 그러하듯이 능력 특히 정보 능력에 있습니다. 초등학생은 왜 선생님의 말을 들을까요? 왜냐면 선생님의 말을 안 들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건 무섭죠. 무지는 선생님을 위대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물론 세상에는 지적 능력으로건 인품으로건 왠만한 사람은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스승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소수죠. 그렇다면 초중교를 채운 엄청난 수의 선생님들은 어떻게 스승 역할을 해왔을까요? 그 핵심에는 전문화가 있습니다. 학생은 혼자서 수십과목을 처음 공부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한 과목만을 가르치는데 그것도 매년 반복해서 공부합니다. 중학교부터는 그렇게 전문화된 선생님들 수십명이 한 학생을 두고 영어해라, 국어해라라고 말합니다. 이러니까 왠만한 학생은 선생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가끔 그런 학생도 있는데 그건 거의 천재급인 겁니다.

 

학교라는 시스템에는 이것말고도 평범한 인간에게 교권을 줄 장치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평가할 권리가 그것이죠. 지금은 이런게 망가졌습니다. 왜냐면 예전과는 달리 학생들은 학교 시스템 바깥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 지식과 능력이 총입니다. 어른들의 사정을 아는 아이들은 이제 선생님이 그렇게 무섭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알고, 선생님이 어떤 일에 얽히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알며 자신이 촉법소년이라는 것도 아는 겁니다. 여학생이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면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하는지도 압니다. 학교 가득히 있는 아이들에게 총을 나눠주면 이따금은 그걸로 선생님을 위협하는 아이가 나오는게 당연합니다. 그걸 쏘는 아이들도 나오는게 당연합니다. 그 결과가 비극적이라도 그걸로 놀라서는 안됩니다. 뻔한 일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시스템의 붕괴가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가를 깨닫는 겁니다. 이걸 선생님 차원에서 해결하고 전통적인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말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선생님들이 아인쉬타인 이상으로 대단한 분들이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이를 아이 취급하는 한 아이들이 누구나 총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이런데 하물며 우리는 AI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SNS 스타가 된 아이의 무서움 따위는 AI 시대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초등학생이 AI의 도움을 받아 회사 사장 역할을 너끈히 해내는 시대를 곧 보게 될 겁니다. 그 초등학생이 그런데 정말 사회성도 좋을까요? 그런 초등학생이 의무적으로 학교에 나가야 하고 거기서 자신을 애취급하는 어른이 기분나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의 근대교육은 기본적으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모든 사람을 학교에 가둡니다. 그리고 그들을 애취급하죠. 선생님은 아이들을 존중한다고 말하겠지만 학교의 시스템 자체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로 나뉘어 있으며 그에 따른 예절을 포함합니다. 선생님은 평가를 합니다. 학생이 선생님보다 뛰어나서 선생님을 평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옷매무새나 어투를 조심하라고 훈계를 하는건 아닙니다.

 

이 근대교육이 언제나 틀린 것은 아닙니다. 나이 많은 어른에게 아이는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많은 지식을 빠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장같은 지금의 학교교육이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표준화된 교육은 결국 서로 다른 학생들을 같은 틀에 집어넣고 그 결과 고통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이 발달하고 이제 AI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는 그 다양성이 너무 커져서 그 고통도 더 커지게 되는 겁니다.

 

만약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졸업장을 주지 않기로 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만 나와서 배워라. 그러면 무료로 가르치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학교 문제는 사라질 겁니다. 우리는 이걸 학원에서 보죠. 학원수업 안들을 사람은 학원을 끊어야죠. 수업분위기를 해치는 학생을 학원이 참아야 할 이유도 없고 학원 안다니고 싶은 학생이 돈까지내가며 학원을 다닐 이유도 없습니다. 이게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의 근본적 차이입니다.

 

지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대부분 아무 잘못이 없지만 사회적 현실과 시스템 자체가 아이들을 아프게 하고,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교권이 무너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그 아이들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교육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강요를 하면 그 무기는 사용되겠죠. 동급생이나 선생님에게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게사회를 향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이 있으면 방법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중학생이 사회를 마비시키는 걸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체벌로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죠. 일단 인권따위는 제쳐두고 생각해 봅시다. 선생님이 무차별 체벌을 할 수 있다면 어쩌면 학생들은 폭력에 굴복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계가 있는 선생님의 판단속에서 무한한 고통을 받겠죠. 선생님 개인이 무식하고 나쁜게 아닙니다. 이제는 50명 100명의 앞에서면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의 말이 유치하게 들리기 쉬운 시대인 겁니다.

 

교총은 지금의 학교를 잘 고치면 예를 들어 법적인 보호장치가 있으면 예전처럼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학교라는 시스템의 보호자니까 그렇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고 그 거짓말을 계속한 결과 지금 모순은 계속 누적되어 왔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로 유학의 쓸모가 점점 작아지는데도 아이들 모아놓고 논어 맹자 가르치기를 강행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대중 교육의 핵심에는 읽고 쓰기의 교육 그리고 기본적인 산수의 교육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 물론 현대인은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걸 배우는 식으로는 아닙니다. 그건 마치 도서관에 가서 순서대로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이 도서관 책을 다 읽겠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의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육조차도 기본적 내용은 100년된게 많습니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배우는건 대학에 가서인데 양자역학이 나온지 100년입니다. 순서대로 배우면 이렇게 밖에 안됩니다.

 

결국 우리는 중학교 이상의 교육과정을 기본적으로 크게 바꿔야 합니다. 아예 시험이나 졸업장같은 것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태권도를 배우러 가고 거기서도 시험을 보고 자격장을 딴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여기에 강요는 없습니다. 이처럼 교육은 이제 강요가 없어야 합니다. 다만 기회를 제공하는게 되어야 합니다.

 

더해서 아이를 더이상 아이처럼 취급하면 안됩니다. 아마도 성인의 기준을 중학교쯤으로 낮춰야 할 겁니다. 이 말은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 줘야 한다는 뜻인 동시에 책임도 물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반납하고 교권을 인정할 겁니다. 왜냐면 그래야 뭘 배우니까요. 어른들이 그렇죠. 부자이고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수학을 배우러 가서 나는 영어를 잘한다고 선생님을 무시하는 어른은 없죠. 왜냐면 수학교실에서는 수학을 배우러 수업에 가니까요. 안배우면 나만 손해니까요.

 

그런데도 여전히 어떤 어른들은 애들은 애들처럼 키우겠다고 합니다. 내가 더 잘해서 선생님다운 선생님 즉 스승이 되겠다고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걸 제도로 만들고 강요하려고 하죠. 교사 자격증 따고 학교에 선생님으로 취직하면 선생님 대접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그 프로세스 전부를 보면서 그것의 얄팍함을 느낍니다.

 

이미 상황은 굉장히 안좋습니다. 당연하죠. 이건 구조적인 겁니다. 그리고 AI의 발달은 상황을 극적으로 나쁘게 할 겁니다. 모두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의 수업은 AI보다도 못할테니까요. 그런데도 시스템이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고 학생이기를 강요하면서 그들이 촉법소년이라고까지 말하면 무기의 사용은 훨씬 더 극적이 될 겁니다.

 

이런 현실에서 눈돌리는 계획은 통계적으로 사회적으로 장기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곧 지금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나빠질 겁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그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이 더이상 아이를 아이가 아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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