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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 인과론 중독의 병

by 격암(강국진) 2007. 9. 26.

미래에 대한 이야기.

 

1. 인과론중독의 병

 

개미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투명한 플라스틱판 사이로 개미들이 개미집을 지으면 그안의 개미생활이 관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미를 관찰할때 개미사회의 구조는 개미의 유전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미래나 개인적 미래는 어떠할까요. 우리가 부지런히 만들어 내고 있는 이 문명이라는 개미집의 설계도가 우리의 유전자에 그대로 씌여져 있다고 말한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나 인간문명이 인간본능의 산물일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고 이룩하는 일들은 인간본성과 사회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가장 큰 재능이자 저주는 이유를 따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씨를 뿌리면 곡식이 자라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농사를 지을수 있었습니다. 도구를 사용하고 만드는 능력도 단순히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현상을 관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발전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이유를 따지는 능력은 인간이 선택하여 발전시킨 능력이라기 보다는 인간에게 주어진 유전적 특성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도록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도록 본성에 의해 강요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문제의 복잡함을 생각할때 그 인과관계를 예측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끝없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고 그것을 멈추지 못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안되는 것은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해서라도 우리는 믿고 살수 있는 세상만물에 대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넣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무지한 상황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세상에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는 명제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이 세상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 답을 모르면 어떻습니까. 몰라도 그만입니다. 어쩌면 답따위 존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이 원인없는 결과에 불안감을 느낍니다. 도저히 답을 찾을수 없어도 답을 찾아헤맵니다. 그리고 신도 만들어 냅니다. 천둥이 치는 것은 천둥신이 있기 때문이고 나무가 자라는 것은 생명의 여신이 있기 때문이며 사랑에 빠지는 것은 큐피트의 화살때문이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삼신할미가 점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유에 대한 탐구, 미래에 대한 예측은 인간이 끝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인과론 중독이라는 병으로 부릅니다. 인간은 이 능력때문에 다른 동물들보다 번성하게 되었으나 이 능력덕분에 가장 비참하게 살고 있는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두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너무 커져서 종족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정도입니다. 아이가 태어날때 두개골은 말랑말랑한 상태로 태어나고 아이는 생후에 엄청난 속력으로 뇌를 키웁니다. 처음부터 발달된 두뇌를 가졌다면 태아는 엄마의 몸바깥으로 정상분만되기에 너무 큰 머리를 가질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긴 유아기를 가집니다. 인간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교육기간은 원시시대에도 10년은 걸렸을 것이고 이제는 30이 넘도록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가득합니다. 대학교육이 필수가 되었고 평생교육이라는 말도 흔해졌습니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필수불가결한 인간은 엄청난 돈과 재능이 함께할때만 만들어 질수 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렇게 피곤하게 삽니다. 태어나자마자 뛸수 있는 노루나 말, 본능이 평생배워야 할것을 대부분을 몇개월에서 일년이면 다가르쳐주는 다른 동물들과는 전혀 다르죠. 어떤 다른 동물들도 인간처럼 자살을 많이 하고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로 시달리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아이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고 바라볼수는 없습니다. 이런 유아에 대한 사랑도 실은 포유류가 가지는 특징입니다. 파충류인 악어는 동족의 새끼들을 태연히 밟아죽이거나 먹어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부모는 알을 낳고 떠나버리면 아이는 기본적으로 혼자서 큽니다. 부모의 보호가 없으면 죽어야 하는 포유류, 특히 인간의 자식은 부모의 사랑이 절실합니다. 이렇게 보면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종족생존을 위해 창조되어진 유전자의 특징일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유아기가 긴 동물의 특징일수 있습니다.

 

이유를 찾고 생각하는 능력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낳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길위에 그려진 두줄의 선사이로 걷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그길을 쉽게 걸어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폭의 길이 만길 낭떠러지 위에 있다면 발을 움직일수 없거나 두려움에 실수하여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발을 움직이는 것의 결과를 예측하고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특이한 예라고 생각할수 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아주 일반적인 경우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 혹은 사회적 집단으로 많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가 걷는 길이 만길 낭떠러지 라고 생각할때 우리는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거나 실수를 하고 맙니다.  인간들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저지르는 많은 비이성적인 행위는 이렇게 설명될수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은 모두 공포에 약하고 공포에 질려서 터무니 없는 짓을 종종 저지르고 마는 것입니다. 민족간 분쟁이나 전쟁따위가 좋은 예가 될것입니다. 우둔한 개인과 군중은 종종 두려움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유를 찾아 헤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우주의 창조원리를 찾고 생명의 비밀과 의식과 사고작용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합니다. 경제적 원리를 연구하고 예술적 감동의 원인을 탐구합니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원인도 알고 싶어 합니다.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신은 인간을 답을 찾는 도구로 창조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인간은 가혹하게 자신을 학대하며 답을 찾는 노력을 끝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미래란 그런 행보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건 우리는 지금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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