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누구인가.
한 사나이가 공사판에서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파이프가 튕겨나오면서 그의 아래턱을 뚫고 들어가서 머리윗쪽으로 튕겨나온것이다. 이 사나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실제 뇌는 컴퓨터같이 민감한 기계가 아니다. 상당히 파괴되도 그럭저럭 작동하는 튼튼한 기계다. 문제는 이 사나이는 사고이후 매우 폭력적인 사나이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비교적 온순한 사내였던 이사내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이 되고 말았고 이는 두뇌의 일부분이 파괴된 결과라고 이해된다.
이같은 사례는 뇌과학 교과서를 뒤져보면 많이 있다. 타고난 것이든 사고이든 뇌가 남달라서 이상한 징후를 보여준 사례를 통해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는 깊어져왔고 이후 짐승의 뇌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를 통해 실험이 계속되어 지고 뇌의 기능에 대한 자세한 지도가 그려져 왔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뇌에 대한 이해는 정성적인 것을 넘어 매우 정량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는 컴퓨터의 발달과 뇌의 활동을 측정할수있는 기술이 매우 빨리 발전했기 때문이다. 방대한 실험결과와 세포의 이온채널에서 전체두뇌에 이르는 다양한 범위에서 행해지는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인간은 뇌에 대한 지식을 넓혀가고 있는것이다.
예를 들어 fmri같은 방법을 쓰면 사람이 음악을 듣고 생각을 할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자세히 알수 있으며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뇌신호를 이용한 전자탁구같은 것을 실현한 예도 있다. 즉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하면 뇌의 다른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기계가 '생각'을 읽어내고 이를 이용하여 컴퓨터 스크린의 핑퐁 라켓을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두사람이 기계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움직여 핑퐁을 할수있는 시대인것이다.
뇌과학의 결과를 과대평가할수는 없다. 인간은 여전히 지성이란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자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것인지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먼 장소에 있다. 주된 발전은 분자생물학의 수준에서 일어나기 쉬운데 이는 정량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뇌를 이루는 것은 뇌세포이고 뇌세포를 이루는 단백질, 그리고 신경과 관계된 이온과 화학물질들의 결합을 연구하면 우리는 담배나 마약이 어떤일을 뇌에서 하는지 정확히 이해할수 있는 것이며 우울증의 치료를 위한 약품을 개발할수도 있다.
뇌과학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물론 이것이 이성과 자의식을 만들어 내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현대뇌과학의 가장 큰 난관중의 하나는 이런 이성과 자의식이 어느정도 수준의 복잡성에서 생겨나는가 하는것을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티브이를 보자. 티브이를 잘게 부수면 플라스틱조각과 구리선등을 얻을 것이며 그런 구성 요소의 성질을 알면 왜 티브이를 불가에 두면 안되는지 왜 티브이는 망치로 치면 깨지는지 왜 티브이를 정도이상으로 흔들면 망가지는지 따위를 자세히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게 부순 조각들에서 티브이의 원리를 찾아내기는 불가능하다. 티브이를 플라스틱과 구리선이 아닌 강철이나 나무로 만드는것도 가능하다. 즉 티브이 방송의 원리자체는 그 구성요소와 어느정도 독립하여 그 위에 있다는것이다.
지성의 원리, 자의식의 원리를 이해하기위한 노력은 많이 있지만 뇌는 매우 복잡한 기관으로 그 핵심적인 연산이 일어나는 장소와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그러나 뇌의 활동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더 엄밀히 측정할수있는 기술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신비가 영원히 신비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한 진전이 가까운 시간내에 일어날 가능성이 많이 있다.
위의 텔레파시 핑퐁의 예에서 보듯이 아주 단순한 의미로는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다만 그기계가 방하나를 가득채울정도로 거대하며 예냐 아니오냐를 구분하는것보다 조금더 나은정도밖에는 하지못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은 방을 가득채울정도로 커다란 기계였다. 우리는 지금 그보다 비교할수 없이 강력한 개인용 컴퓨터가 일상화된 세상을 살고 있다. 1-20년후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세밀히 읽어내는 노트북만한 기계를 갖게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인류최초로 인간의 마음과 두뇌를 정량적으로 연구할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적어도 프로이트가 한것처럼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라는 식으로 두뇌를 연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다른 어떤 연구이상으로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
내생각에 이같은 연구는 궁극적으로 단순히 지적인 유희나 의료적인 목적 이상의 결과를 사회적으로 만들어 낼것이다. 인간은 지동설과 진화론을 통해 두번 자기자신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돌지도 않고 우리는 원숭이와 동떨어져 창조된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물론 자기자신에 대한 착각은 뿌리가 깊으므로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바닷속의 물고기떼나 새떼를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때로는 아주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고기떼가 어느 방향을 향해 가다가 한녀석만 방향을 바꾸면 전체가 방향을 바꾸는 그런 모습을 보면 그렇다. 연어와 철새는 '본능'적으로 이동하고 '본능'적으로 짝을 찾아 번식한다. 우리는 어떤가. 인간행동은 어디까지 지성과 자유의지의 산물이고 어디까지 본능의 산물일까. 동물들의 행동은 대부분 본능이라고 이해하면서 우리는 인간은 자유의지로 움직인다고 믿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우리가 가진 우리자신에 대한 착각이 아닐까?
자유의지에 대한 논란은 당연히 윤리와 도덕에 영향을 미친다. 정신이상에 의한 범죄는 보통의 범죄와 다른 처벌을 받는다. 이것은 그몸의 주인이 자유의지로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지만 항상 떠들석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낸다. 과연 범죄자는 자기가 정신이상이라고 과학자를 속이는것이 불가능할까. 또한 정신이상과 정상의 구분은 정확히 정의될수 있는것인가. 유전자를 검사하여 유전적 질병의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취업이 거부당하는 미래를 상상할수있다. 마찬가지로 뇌스캔을 통해서 당신의 도덕성이나 판단능력등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취업이 거부당하는 미래도 상상할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동설이나 진화론이 만들어낸 신학적 충격에 대해 인간이 적응해야 하듯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면 우리도 그에 따른 문화적, 윤리적, 신학적 충격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할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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