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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적 시각, 개인적 시각

by 격암(강국진) 2008. 2. 25.

2008.2.25

 

모든 말에는 전제조건이 붙어있다. 그리고 이 전제조건이 무너지면 아무리 그럴듯한 말도 틀린 말이 되고 만다. 그런 전제조건은 간단한 경우도 있고 아주 복잡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후자의 경우, 오해와 고의적 비틀림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 만다. 국가나 공동체에 대한 말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국가경쟁력이니 국가발전이니 국가 경제회생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경우 우리는 당연히 이 세상에 국가라는 실체가 존재하며 이 국가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즉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집단이다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애초에 국가 발전이 좋은 것이라던가 국가가 중요하다던가하는 당연해 보이는 말도 의미를 잃게 된다.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해 보자. 

 

한국의 산업경쟁력이 지식기반산업에서만 비교우위에 있고 농축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우린 이것을 받아들이고 농축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더라도 지식기반산업의 발전을 위해 자유무역을 받아들여 야 한다.

 

이런 주장은 국가의 존재는 물론 농축산업이나 지식기반산업등 국가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거대한 어떤 집단이 현실로 존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말한다. 문제는 과연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그 단어들이 말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용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관세장벽 덕분에 일본자동차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어서 살아남고 있다. 이미 관세가 없을때 토요타와 현대의 자동차값에는 차이가 없다. 만약 관세가 없고 애국주의적 시각이 없다면 일본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 시장의 절반이상은 일제차가 차지한다는 것은 거의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관세로 현대자동차는 보호를 받는다. 그것은 당연히 고용과 국내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 월급은 한국의 보통 불루컬러 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으며 강력한 노조는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이 그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을 반대한다. 물론 사주집단도 돈을 번다. 그럼 그 사주집단은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는가. 회사를 버티게 만드는 것은 국가적 시각인데 회사의 운영을 보면 한 집안의 개인재산 다루듯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디에서 사회로 돈이 환원되고 있는가. 삼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물론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통신회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적 시각과 개인적 시간을 자기멋대로 섞어서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철학적 일관성을 그래도 어느정도 유지하려고 한다. 즉 국가적 시각을 말하는 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로 부터는 잔뜩 받아쓰고서 개인의 자유만을 논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한국의 소위 엘리트 계층가운데에서는 자식들이 한국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필요하면 한국국적을 다시 얻기도 쉽기 때문이다. 엘리트 부유계층의 사회적 의무의식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 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중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가. 나라는 가난뱅이국가에서 세계적 부유국중의 하나로 성장했는데 이 나라에 도대체 뭐가 있는가.

 

대학들이 훌룡한가? 본래 학문의 전당이란 입시학원과는 다른것이다. 응당 차세대를 교육시키고 지식과 문화와 기술의 발전을 통해 국민의 삶을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돈이 기부되어 돌아가는 것이 학문의 전당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그런가? 공원이나 공익 연구소, 공공 도서관이라도 많이 있는가? 

 

나라가 부자가 되서 배가 불러진것은 혈연으로 얽혀진 재벌 가문들의 사람들 뿐인것 같다. 삼촌이 회장이고 시아버지가 회장이고 며느리가 사장이고 아들이 후계자인 그런나라말이다. 할아버지 빽으로 아들은 부자가 되고 그들의 손자들은 미국에서 아무 국가에 대한 의무감없이 미국인으로 자라나는 것이 한국의 현실아닐까? 그들을 키운 돈이 나온것의 뿌리는 분명 박정희 시대부터 아니 개국처음부터 나라에 가득했던 국가요 민족이라는 이름의 시각일진데 그들은 그걸 개인적 돈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할아버지에게 감사할뿐 국가에 감사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엄격한 국가적 시각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 나라가 정말 국가적 시각이 희박한 개인적 자유의 나라라면 그렇게 살자. 모든 면에서. 우리 서로에 대해 부채의식 가지지 말고 시장 열어젖히고 각자 사는 것이다. 국적 버리는 사람 욕할것 없고, 무슨 규제며 제한이며 같은 것은 다 버리도록 하자. 누가 빨갱이던 광신도던 욕하지 말라. 또한 개인들은 국가에게 뭘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도로를 놓고 싶으면 민자회사가 나서는 것이고 학문하고 싶으면 회사가 돈을 내야 한다.

 

만약 국가를 말하고 싶으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안좋은 일만 있으면 나랏님 탓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과연 전부 국가를 거론할 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일이 잘안되면 국민탓을 한다. 걸핏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국민의 뜻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국민의 뜻을 거론 할만큼 국가적 시각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

 

국가를 말하면서 나는 이웃에게 얼마나 상냥한가. 국가를 말한다면 나는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할수 있어야 한다. 내이웃이나 내 아이들의 친구가 어찌되건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사회가 어쩌니 정책이 어쩌니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국민의 뜻운운 하면서 탈세와 투기를 일삼는 사람들은 뭔가. 우리는 가족이라 말하면서 아버지를 굶기고 어머니에게서 사기도박으로 돈을 갈취하는 자식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세상이 아주 혼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말이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말은 가득한데 서로 의미가 통하질 않는다. 세상엔 불신이 가득하다. 불만만 가득하다. 우리가 말의 근본을 살피지 않고 의무와 권한중 한쪽만 말한다면 혼탁함은 사라지질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의 사주를 받아 엉터리 식자들이 대형매체로 세상에 균형이 없는 한쪽 이야기만 잔뜩 떠들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세상을 모르는 아가에게 사탕한쪽으로 만원짜리를 빼앗으려드는 나쁜 어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른이 아니고 국민은 아가가 아니다. 정치가 썩고 기득권이 썩으면 세상 전부가 썩는다. 모두가 이기적 행동만 할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상식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 몰상식의 폐해가 우리사회를 너무 많이 상하게 하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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