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20
생각해보면 지난 10년간 나는 한국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한국 사회가 뭘 바꿔야 하는가 하는 문제같은 것에 참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쓰고 들었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더들어가며 드는 생각은 결국은 대한민국이란 한국인이고 모든 건 사람들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여러가지 사람이 있다. 아주 아주 여러가지 사람이 있다. 두가지나 열가지가 아니라 수만가지 수십만가지로 나눠야 할정도로 다르며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지도 모른다. 이런데도 한국은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되고 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제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소리라도 사실이 아니다.
한국이 흥한 것도 한국 사람때문이고 한국이 망하는 것도 한국 사람때문이다. 몇사람이나 몇가지 생각이나 몇가지 정책이나 몇가지 사건때문에 한국의 역사가 흘러가는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역사가가 있고 논객이 있고 경제학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3개의 세대가 공존한다고 말할수 있을 것같다. 지금 70대 정도인 노년세대, 그들의 아들세대인 장년세대 그리고 그들의 아들세대인 청년세대다. 어릴적 버릇이며 살아온 경험이 달라서 인지 노년세대는 죽으나 사나 잘살아보세 타령이다. 아끼고 열심히 일해서 돈모으면 행복하다고 믿는다. 노년세대는 전쟁을 겪고 지독한 가난을 겪었기 때문일것이다. 장년세대는 그보다는 덜하다. 그들은 인권을 말하고 사람처럼 사는 세상에 대한 이념을 말한다. 우리나라 청년세대는 숫자도 작으려니와 경제력도 없어서 실질적으로 한국은 이 노년세대와 장년세대의 세력싸움에 의해 굴러가는 것같다.
힘은 없지만 청년세대는 뭐가 다를까. 어학연수나 해외유학, MP3며 스키여행따위에 익숙한 이세대는 장년세대의 이념도 결국은 장년세대를 위한 권력의 도구라는 것을 알아본다. 거대담론은 결국 전체주의적인 사고다. 대학시절 미팅하고 댄스파티하는 것은 이념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소리를 하던 386세대와 달리 청년세대는 개인적 행복의 추구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대다. 이런 모습은 장년세대에 의해 너희들은 희망이 없다는 소리를 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세대별로 차이일뿐 다시 학력별 소득별로도 나뉜다. 세대에 상관없이 가난하고 학벌이 나쁜 사람들에게 잘살아보세를 외치는 노년층의 철학이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학벌이높고 기술과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은 말싸움에 승리할 자신이 있으므로 진보를 지지한다. 이도저도 아니고 아직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청년층은 주로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부자면 부자의 논리를 따르고 가난하면 가난한 자의 논리를 따른다. 독립하지 않은자들에게는 집안의 승리가 자신의 승리가 되기 때문이다.
학벌이나 재산의 정도와는 달리 세상에는 중세적인간 근대적인간이 따로 있는 것같다. 세상은 복잡하다. 그 복잡함은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복잡한 논리로 이어져 있다. 그런 규칙에 잘적응하고 관심을 가지고 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관심도 없고 단순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이며 전근대적인 인간들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돈계산할때보면 대충한다. 식당도 대충 음식을 주고 항의하면 공짜로 서비스도 준다. 줄도 대충서고 법도 교칙도 대충지킨다. 이런 대충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전근대적인 인간들이다. 세상이 복잡하면 대충이 안된다. 온라인 쇼핑하면서 기계한테 대충하자고 불평하면 기계가 들어주는가? 전에는 지로용지들고가서 은행창구에서 직원한테 하소연하면 되던 문제가 이제는 할아버지도 자동화 기계앞으로 보내진다. 실수를 하면 자기 잘못이다.
여기에 종교도 있고 지역문화적 차이도 있으며 남녀간의 차이도 있다. 실은 직업군마다 사람이 다를것은 뻔한 일이다. 택시운전사와 슈퍼주인들 생각이 같을수가 있을것인가. 이렇게 여러가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한국은 진보와 보수가 싸운단다. 그리고 뭐가 진보고 뭐가 보수인지 말도 못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스라엘과 미국과 일본에서 살았다. 모두가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들이다. 우리나라가 그나라들의 어떤 면을 베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공통된 특징을 느낀다. 그건 소위 선진국이란 가장 핵심적인 원칙에 대해서는 철저하며 국민들이 잘 규칙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그렇게 규칙타령이면 사람이 답답해서 살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 핵심적 규칙을 제외하고 나면 훨씬 금기가 없고 자유다. 그게 선진국이다. 그리고 그 핵심적 원칙은 그 나라들의 정체성이라고 부를수 있을 것이다.
다 거론할 필요는 없고 미국을 말하자면 키워드는 자유다. 뭐든지 내 프라이버시라던가 내 자유라고 말하면 법을 어기지 않는한 토론종료다.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는 숭고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릴적부터 이에대해 교육받는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그게 없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문화적 정체성도 상당히 망가졌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울만큼의 대단한 문화적 부흥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멋대로 사람을 갈라 싸움을 붙이는게 정치판인것 같다. 그보다는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국민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거나 좀 세계를 보고 넓은 눈을 가지라고 세계로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뭐가 개혁인지도 모르면서 개혁세력은 모인다. 다들 진보고 다들중도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바로 반대편이다. 한나라당은 빨갱이들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야단이고 빨갱이로 취급되는 진보는 무조건 한나라당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우리가 옥수수죽먹는 거지인가 아니면 유럽의 시민들인가. 둘 다 아니다. 그런데 국민을 옥수수죽먹는 거지처럼 고기나 먹여주면 고마워하는줄 아는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가 데카르트며 막스를 줄줄이 읽으며 성장한 사람들인것처럼 생각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유럽식으로 하면 갑자기 우리가 유럽인 되는가 어림도 없다.
모든 건 사람들때문이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대중문화다. 사람들이 보고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절망이 있다면 그것도 대중문화다. 사람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좋은 세상을 굳이 보고 싶다면 음악이든 댄스든 패션이든 책이든 연설이든 대중적 인기를 얻어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기가 없다면 뭔가가 빠져있다는 뜻이다. 그건 바로 실증이다. 당신이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실증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당신의 사는 방법을 받아들일것이며 알아서 세상은 변해갈것이다. 세상 속이느라 긴장된 표정하고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참 많다. 좋은 세상만들거라면서 입에 욕을 달고 산다.
모든건 사람들때문이다. 일단 나부터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자. 행복이 뭔지 실증으로 보여주자. 그리고 누가 강권하면 말하자. 개혁이란게 사실 이런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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