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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정치의 빈자리

by 격암(강국진) 2009. 9. 10.

2009.9.10

머릿말

 

지금 한국정치에서 확실히 말할수 있는 것은 무당파가 많다는 것이다. 현 정권을 가진 한나라당은 물론 기타 다른 반한나라당이라고 말할수 있는 반대진영도 결코 국민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지는 못하다. 정치가가 국민에게 욕을 먹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오늘날의 그것은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 과거엔 국민들이 흔히 사회적 악이 정치적 전선의 반대편쪽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했다. 즉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쪽이라면 민주당,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등 다른 쪽이 분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으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세력은 한나라당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쪽의 지지자들이 양쪽의 정치세력에게 모두 실망해 있는 상태다. 민주당이 국회와 행정부를 모두 차지하면 우리나라가 잘 되어 나갈까? 한나라당은 국회와 행정부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을 만족시키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소위 무당파가 많아졌다. 

 

좌우의 시각, 진보 보수의 시각의 문제점

 

대개 한국에서는 정치 세력들을 한줄로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좌우의 시각 혹은 진보 보수의 시각인데 이때문에 각자 자신의 정치가 어떤 정치인가를 말할때 민주노동당보다는 오른쪽에 있지만 한나라당 보다는 왼쪽에 있다는 식으로 한줄로 늘어선 정치세력의 위치를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마치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정치적 위치를 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래서 조금만 왼쪽 조금만 오른쪽 하는 식으로 위치를 매우 섬세히 조절하려는 태도를 가진 것이다. 즉 한국정치에 빈자리가 있다면 분명히 이런 좌우 선상에 있을 것이므로 그 빈자리가 어디냐고 따진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개혁을 말하며 국회는 흔히 지역감정이나 이권싸움으로 공전되는 것처럼 보이고 각당이 일관된 정치이념을 설명도 못하면서 1차원적인 정치구분으로 한국정치의 빈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오류다. 한국 정치의 빈자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를인식하고 그 사이의 어디를 찾거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사이의 어디를 찾기보다는 기성 정치세력 모두의 공통점을 찾고 그 한계를 벗어나는 1차원적인 정치구도에 수직한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한국의 기성정치에 없는게 있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수직한 방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뭘까. 그것은 한국이다. 한국정치에는 한국이 없다. 이 한국의 부재가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보수에 있어서 한국의 부재

 

도덕적 부패를 지적받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있어서 한국의 부재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경제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그들의 전신이랄수 있는 독재세력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되기 때문인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한국의 경제의 큰손이기 때문인지 현실은 그렇다. 

 

그런데 정치에서 경제문제가 무시될수는 없지만 정치가 경제문제로 환원될때 그런 정치에서 한국이란 단순한 이익집단이 되고 만다. 이익을 넘어서는 가치가 없을때 한국인들이란 그저 모여있는게 서로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니까 모여있는 사람이 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 한국이란 국적을 벗어던지고 외국으로 가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것은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의 국민앞에서 돈자랑할때나 자부심을 가질수 있는 것이며 우리보다 부유한 나라앞에서는 부끄럽고 자랑할것이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뉴라이트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과거사에 대해 돈문제를 거론하면서 좋고 나쁨을 거론할수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보여준다. 어느 미국 시민이 911의 희생자를 말하면서 덕분에 이라크에서 유전을 획득할수 있었으니 그 죽음은 좋은 죽음이었다고 말하는 일이 있을수 있을까? 그럴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어느정당을 지지하는 대표적 정치집단이 그런말을 공공연히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도 돈때문에 모여있다는 식으로 나라를 운영하지 않는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정치적 자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한국 보수정치에는 한국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마틴루터킹 목사를 거론하며 미국의 정신을 말하듯이 한 나라의 가치를 말하는데는 역사에 대한 해석과 교육이 반드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과거를 되도록 잊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한국의 보수다. 이완용의 후손들이 그 땅을 찾겠다고 나서는 일이 가능한 나라가 한국이다. 독립운동의 상징인 김구에게 공공연히 테러리스트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곳이 한국이다. 부정부패와 병역비리로 얼룩져서 엄격한 가부장적 권위를 휘두른다는 것이 가능한가? 한국의 보수에는 한국이 없다. 

 

진보에 있어서의 한국의 부재

 

그렇다면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얼마나 한국을 강조하는가. 거의 없거나 매우 표면적일 뿐이다. 그것은 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 기본적으로 서구의 정치사상과 사회현실에서 그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과 정체성보다는 세계에 두루 통용되는 보편성을 강조하고 왜 한국에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실현되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느냐고 묻는 일에 몰두해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의 인권상황이나 생활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지극히 나쁠 경우 우리는 보편성의 추구에 보다 힘을 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독재정부와 민주화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펼치던 시대에 더욱 옳았다. 한국의 문화는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근로조건이라도 생활만족도는 전혀 다를수 있으며 기본적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대단한 논리가 필요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이 달성되고 나면 보편성에 몰두해서 외국을 강조하는 일이 한계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사람도 전세계에 퍼져서 살고 있다. 유럽에도 살고 있고 미국에도 살고 있으며 일본에도 중국에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여러가지 정보를 보내오고 있다. 우리는 과연 프랑스나 독일이라고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무조건 부러워해야 할까? 보편성을 강조해서 한국을 개혁하는 힘이 충분히 나올까?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대개 현실을 모르는 정치집단, 거대 노조의 하수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전교조에 대한 이미지도 이제는 단순한 이익집단으로 바뀌고 있거나 이미 바뀌었으며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한 국민적 감정도 좋지 않다. 페미니즘을 수입하는 사람들은 과연 한국여성의 행복을 증대시킬까? 미국이나 유럽은 여성의 천국이란 말인가? 오히려 전통적 가족개념을 붕괴시켜서 이혼, 미혼모, 청소년 성매매 문제들이 더 심각해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한국의 진보적 세력이 외국의 생활을 하나에서 끝까지 복제하자고 하거나 한국의 어떤 전통적 관례, 법, 제약을 깨고 자유를 찾자고 외치는 것말고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만약 그런게 가능하다면 왜 그들은 스스로 모여서 행복한 동네, 행복한 도시, 행복한 기업을 스스로 만들어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는가. 이것은 진보가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한국의 진보가 과연 집권하는 자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감시자 비판자로서 야당의 입장만 취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집권을 하자면 그저 이게 아니다라는 양심적인 발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먹고 살 수있는 생활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들은 청소년들에게 그저 죽자고 공부만하고 돈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라고 한다면 한국의 진보들은 그저 자유를 외친다. 니 맘대로 살라는게 청소년에게 줄 수있는 최선이므로 이런 보수와 이런 진보가 어울린 한국 교육은 결국 학원에 시달리며 불쌍하게 살고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청소년을 양산한다. 

 

한국이 있는 정치

 

그럼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우리는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에서 그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 윤리의 큰 줄기는 결국 효라는 개념에서 나온다. 난 유교적 개념은 너무 많이 비판받았으므로 오히려 사면복권되어야 하는 면이 있다고 보지만 심지어 효의 문화를 꼭 유교와 등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한국적 유교문화는 사실 한국에만 있는 것이다. 중국도 일본도 다르다. 한국적 유교문화는 사실 그냥 한국문화이며 가족의 중요성은 오늘날 서구사회전체에서 반성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영화에서 애타게 가족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지만 한국의 진보는 그 중요성을 볼 논리가 없다. 그들은 경제적 구조, 착취의 구조를 찾는 그런 논리에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의 개념, 한국의 문화의 개념은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말거나 서로 섞이지 않는 불편한 두가지 생각의 동거가 되고 만다. 전통을 사랑하는 진보란 어색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투명성, 합리성을 증대시켜야 하고 도덕적 가치관적 확립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려드는 시대에 한국이 뭔지 모르니 사회문제가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따라서 일부 겁내는 한국인들은 쇄국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고 일부 생각없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외국문화의 흉내내기에 빠진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보니 보수니 하는 걸 제외하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중하는 가치, 한국 문화 즉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맞춘 맞춤형 정치를 하는 정치집단이 되도록 해야 겠다는 말이다.  이걸위해서 우리는 한국문화자체의 재조명과 조선시대의 지식인에 대한 재규정이 필요로 하다. 물론 우리는 보편성의 위에 특수성을 얻는 것이다. 마치 피자와 경쟁하기 위해 빈대떡을 상품화 하듯이 청결이라던가 가격, 배달, 친절따위의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한국적인 색깔이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보편성만 가지고는 그저 한국에서 만든 흉내낸 피자가 되어 아무 경쟁력이 없다. 

 

맺는 말

 

나는 기성 정치집단이 이런 점을 깨닫고 변화할지 새로운 정치집단이 출현하여 기성 집단들이 사멸할지 모른다. 물론 그것은 기성정치집단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신당이 갖춰야 할 덕목이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투명성제고다. 이것은 진성당원제나 전원투표제같은 것과는 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흐름이다. 정보가 권력이다. 또하나는 한국이라는 덕목이다. 한국적 윤리를 가진 생활의 비전을 찾고 그것을 강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실천속에서 그것을 강조할때 국민적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칭 보수건 진보건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들어 가장 큰 변화는 외국을 경험한 한국 사람의 증가다. 외국에서 살아본 한국 사람이 적은 시대에, 한국과 외국의 경제적 격차가 큰 시대에 미국 사람은 이렇더라라고 일본사람은 이렇더라라고 말하며 메세지를 전하거나 우리도 부자가 되면 선진국 사람처럼 잘살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이제 그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어떤 깨우침을 주고 있다. 일단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았다는 것은 한국이 뭔지 안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아닌것을 알아야 한국이 뭔지 아니까. 그 환상의 유럽이나 미국생활이 어떤 것인지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이야기고 때문에 그곳들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돈만 더 많다고 무조건 더 행복한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는 이야기다. 이민갔다가 역이민 오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런 시대에 대한 이해가 한국정치의 빈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 핵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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