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13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우리는 물론 완벽하게 자신의 생각이나 말과 일관되게 살 수는 없다. 또한 평생을 일관적으로 살지 못한것을 비난해서도 안된다. 완벽한 일관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인 것이며 생각이란 변하기 마련이니 평생을 일관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성장하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의 오류를 깨닫고 행동을 바꾼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 일관성에도 정도가 있고 변화에도 폭이란게 있다. 자기가 주장한 것을 바로 뒤집거나 주체사상을 외치며 극좌파로 행동하다가 갑자기 반공주의자가 되어 공산주의자를 때려잡겠다고 날뛰는 꼴이어서는 곤란하다.
내가 세상을 많이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살다보면 느끼는 것이 우리는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많이 진보가 된다. 사실은 조금만 진보적으로 살기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교육이 나쁘고 소용없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학부형이 되서도 자식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해보니 생각과 다르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식에게 나름의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자식에게 미안해 하셨다. 진보라면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남의 일이라고 또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진보가 되어 기존의 관습과 통념을 집어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노동자를 진정으로 따뜻하게 대할 자신이 없으면 노동의 가치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된다. 정규직에 앉아서 비정규직의 아픔을 외면하는 상황을 무시하면서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곤란하다. 진정한 남녀평등을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너무 쉽게 철저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도 곤란하다. 세상에는 여자로서 받을 수 있는 전통적 보호는 쉽사리 받아들이면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자도 많다. 학벌을 절대시하는 풍조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쉽게 학벌은 무의미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자신은 과연 자신이 유명대학출신일 때도 자신이 신입사원 선발을 할 때도 학벌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너무 쉽게 현실을 부정하거나 너무 쉽게 자신의 일관성을 자만하고 과감한 진보가 되는 것 이것은 진짜 진보, 양심있는 진보가 아니다.
나는 진보가 필요없다던가 진보가 위선이라고 말하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가 필요하며 진보는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일관성을 지키지도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주목받으면 현실적인 진짜 진보는 보수처럼 보이거나 겁쟁이 처럼 보이며 폄하 당한다. 세상에는 군대도 빼먹고 안가는 사람들이 월남전 참전용사에게 전쟁을 겁내는 겁쟁이라고 할 때가 있다. 진보에 대해서도 이런 꼴이 난다. 진짜 진보에게 허풍선이 진보들이 비웃음을 날리고 조롱을 한다.
과격한 진짜 진보는 진짜로 목숨걸고 인생걸고 하는 것이다. 튀면서 사는게 좋은 것이고 훌룡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일관성있게 많이 튀면서 살려면 정말 인생걸고 해야 한다. 젊어서 요절해도 좋다는 각오로 해야 그런 진보를 할 수가 있다. 진보는 결국 하나의 실험이기 때문이다. 과감히 크게 인생을 바꾸고 제대로 되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자신이 있고 그걸 믿는다면 그렇게 사는게 진보다. 우리는 그런 진짜 진보를 존경해야 한다. 세상은 그런 진보때문에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진보의 몫을 빼앗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겉멋만 든 진보, 위선적 진보, 허풍선이 진보는 무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너무 쉽게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 일관적 일 수가 있는가. 일관적이지 못할때 우리는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어렵게 조심스럽게 진보가 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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