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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진보적 인간의 탄생

by 격암(강국진) 2009. 9. 22.

2009.9.22

머릿말

 

어제도 그제도 올해도 작년도 그렇게 했던 식으로 세상의 문제를 악의 탓이라고 부르는 한 진정한 세상의 변화는 올 수가 없다. 어떤 것을 악으로 부르는가 어떤 것을 선으로 부르는가 하는 그 기본적 시각의 변화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선과 악이 10년을 20년을 30년을 싸웠다면 그 선과 악은 실상 모두 악이라고 부르거나 싸우는 척만 하는 이익집단이라고나 불러야 한다. 그들은 이제 세상의 진정한 문제를 말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둘로 구역을 나눠 서민들을 착취하는 깡패집단처럼 선과 악의 양쪽진영에서 자기들 밥그릇을 챙기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세계의 문제점을 인식했다면 그 인식이 세계에 퍼졌다면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수 없다. 싸움이 일어나는 장소는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길고 오래된 생각을 뒤져야 한다. 가지가 되는 생각이 아니라 뿌리가 되는 생각을 뒤져야 한다. 그리고 뿌리가 되는 생각이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먹고 마시고 떠들고 돈을 버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 올 수 밖에 없다. 일상생활의 변화를 말하지 않는 진보, 개인의 정신적 고통과 행복에 무관심하고 단지 개인을 숫자로 생각하는 진보는 진짜 진보가 아니다. 

 

한국 앞에 존재하는 장벽

 

뿌리가 아니라 가지라는 의미에서 한국의 앞에 존재하는 장벽은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입시체제나 새로운 초중고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노동문제도 아니고 심지어 재벌개혁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 사회가 가지는 문제의 뿌리는 결국 사회가 보다 정밀화, 고속화, 전문화하는, 사회가 더 복잡한 기계로 진화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 맞는 사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데서 오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의 진화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은 문제를 더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그같은 점을 직시하지 않고 구체적 문제의 해결에 들어가는 것은 병의 치유가 아니라 병을 악화시킨다. 열있는 감기환자라고 무조건 얼음구덩이에 던져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더 복잡한 기계로 진화한다는 것은 사회가 더욱 빠르고 더욱 정밀하고 더욱 복잡한 기계처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 기계는 인간으로 이뤄진 시스템이며 따라서 그런 사회는 인간들이 더 빨리, 더욱 정교하게 그리고 더욱 전문화하여 움직이기를 요구한다. 그런 변화를 거부하는 인간들은 쓸모 없는 부속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런 시스템의 중요한 부속품이 된 인간들은 명성과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이런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어 사실상 오늘날은 한해 한해 아니 한계절 한계절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이 있을 정도의 변화를 보게 된다. 전에 없던 인터넷 서비스가 단숨에 국민적 인기를 얻어 금새 모든 국민들에게 영향을 줄정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는 본다. 현대에서 새로운 서비스란 결국 기존의 서비스를 더 만족스러운 즉 더 전문화되고 더 빠른 서비스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더 복잡한 기계로의 사회진화를 말하는 것이다. 서비스의 경쟁이란 이런 진화의 속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인터넷과 교통수단, 무선통신의 발달로 경쟁이 높아져만 가는 현대에서 사회가 더 복잡한 기계로 진화하는 속력은 어느 때보다 빠르다. 

 

문제의 심화

 

오늘날의 사회는 인간으로 이뤄져있다기 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융합체로 이뤄져 있다고 말해야 옳다. 거대한 기계의 복잡성과 속력은 이제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속력과 정교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전체 기계의 부품중 기계로 교체되는 부분은 점점 더 늘어난다. 그리고 인간은 그 기계의 속력을 쫒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다. 한국 사회는 부품으로서의 인간을 요구한다. 부품의 수급문제는 이미 심각하다. 회사들은 사람이 없다고 하고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수급의 문제가 없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국 사회를 날로 복잡해져 가는 기계로 보기만 하면 한국 사회의 변화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쉽사리 알 수가 있다. 먼저 전체 기계의 부속품으로서의 인간이 수명이 짮아지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처럼 정교하게 밤이고 낮이고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환딜러같은 직업을 보라.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을 요구하는 이 직업은 40대가 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버틸 수가 없는 직업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직업이 이것뿐일까? 한국의 대표기업이라는 삼성의 혹독한 일시키기는 유명하다. 그것은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서 요구되는 하중이 점점더 혹독해 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직업은 대개 기계로 완전 자동화하기 쉬운 직업이거나 부분 자동화를 통해서 한명의 인간이 전에 백명이 하던 일을 처리할 수 있게되는 그런 사라져가는 직업인 경우가 많다.  

 

부품으로서의 수명이 짮을 뿐만 아니라 정교함을 달성하기 위해 대단한 준비기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소득수준이 높은 많은 직종은 오랜 기간의 교육과 수습을 거쳐서 10년미만의 활동기를 거치고 실질적으로 은퇴한 것이나 다름 없는 생활로 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단하나의 프로그램, 단하나의 그림, 단하나의 영화, 단하나의 책을 쓰는 것으로 인생을 소진하는 하는 인간들이 많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그 단 하나의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도 실패하고 단순히 시제품으로서의 삶으로 끝나고 만다. 

 

전문화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사회적으로 도태된다. 선진국이란 커피 한잔을 마셔도 세계최고의 방법으로 세계최고의 섬세함으로 세계 최고의 미적감각을 동원해서 만든 커피잔에다 마시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전문화되지 못한 인력이란 쓸모없는 낡은 부품으로 흔히 사회적인 짐으로만 말해진다. 전문화되지 못한 싸구려 인력은 후진국에서 얼마든지 싼값에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화 된 인간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기는 마찬가지다. 전문화라는 것은 어떤 시스템에 매우 정교하게 특화된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프로야그 리그가 없는데 프로야구선수는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 지렁이의 생식기관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그 정도의 정교함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사회적 무능력자가 된다.  그런데 정작 세계는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있다. 따라서 과도하게 전문화되어 그런 변화를 따라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사회적 적응에 실패한 인간으로 남기 쉽게 된다. 그들은 가족으로부터도 배척받고 세상의 전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기 쉬우며 변화한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적 혼란에 빠진다. 잠깐 유명세를 탓던 유명 여배우들의 삶이 비참하게 빠지는 사례가 자주 발견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같은 그림을 전체적으로 다시 그려보면 그야말로 사회는 인간이라는 원료를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기계의 부품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엄청난 양의 인간을 쓰레기로 폐품처리해 버리는 기계가 되고 만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 모멸에 빠져 쓸모없다는 생각에 빠져 괴로워 하거나 금방 타서 교체될 퓨즈처럼 빛나는 부품으로 잠깐 활용될 뿐이다. 실질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지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기계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 1

 

선진국이 되는 것, 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이란 이렇게 어찌보면 끔찍한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끔직한 것이라던가 기술적 진보가 끔찍한 상황을 만드는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헛된 시도다. 그것은 증기기관에 항의해서 파업하던 영국노동자들의 이야기처럼 훗날의 웃음거리로나 남는다.

 

일단 기억해 둬야 하는 것은 그래서 끔찍해도 우리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경쟁의 원리에 의해 앞으로 나가는데 그것을 잊고 무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단지 문제의 원인을 알고 그 손해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뿐이다. 그리고 물론 문명의 발전이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가 있으니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선진국이 사회적 안전망을 말하고 교육에 국가재정을 투여하고 선진국의 부자들이 자진해서 돈을 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에 쓰고 있는 이유는 명백하다. 위에서 말한 기계는 자폭하는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경쟁을 위한 기계를 위한 사회다. 그래서 인간은 시든다. 일하지 않는 젊은 세대, 도덕적 방종이나 허무주의에 빠진 세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 사회는 비효율적이 된다. 사회가 소비할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설치되지 않는 사회에서 전문가가 되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자살에 가까운 위험한 행위다. 세계적 명작을 쓴 소설가들, 대단한 연구를 성공시킨 과학자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온 삶을 불살라 노력했음에도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무수한 실패자가 훨씬 더 많이 존재해야만 한다. 아인쉬타인은 특허국에서 일하면서 논문을 썼다. 그렇게 구석에서 논문을 쓰다가 사라져간 아인쉬타인은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모든 사람이 성공했을까. 하버드 대학을 때려치고 사업의 세계로 달려간 천재들이 모두 빌게이츠가 되었을까? 

 

그래서 부품들은 서로 손을 잡고 보험을 만든다. 대단한 발명품으로 떼부자가 된 사람이 대학을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도서관을 세우고 의료사업에 돈을 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자인 워렌버핏과 빌게이츠가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이유는 이들이 소위 선진사회라는게 어떤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보험에 대한 신뢰가 소멸하는 순간 선진사회라는기계는 냉각기가 서버린 고성능 엔진처럼 순식간에 타버릴 것이다. 그들은 무시무시하게 돌아가는 기계가 있어서 잘살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무시무시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느릿하게 변하는 농촌마을에서 동네인심이 요즘 좀 변했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만큼 한가한 의미가 아니다. 전쟁이 발발하거나 끔찍한 환경오염이나 금융사고가 터져서 한순간에 나라가 날아갈 만큼의 충격이 올 수가 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 2

 

우리는 부품으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품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무조건 비난하고 비할일만은 아니다. 인간이 원숭이보다 잘사는 이유는 결국 인간은 거대한 규모로 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계획 혹은 거대한 논리의 구조물이라는 기계를 만들 능력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원숭이와 다르게 산다. 

 

다만 경쟁에 매몰되어,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매몰되어 인간으로서의 나를 잊으면 모든 승리는 승리로서의 의미가 없어진다. 부품으로서의 인간은 결국 필요악이다. 개인으로서 나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내 삶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인간으로서의 나다. 

 

우리는 편리함때문에 고층빌딩을 세우고 그런 곳에서 살고 거대한 쇼핑몰에서 소비하고 컴퓨터를 하루종일 들여다보는 삶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빠져서 보다 중요한 것을 잊는 순간 삶은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걷는다. 어느날 돌아보면 친구도 가족도 심지어 감정도 없이 그저 부품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대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그 순간이 와도 그때는 이미 부품으로서의 자신의 의미가 소진되어 인생이 망가진 후이기 때문에 너무 늦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한 부품으로서 고통을 느끼지만 원인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감성은 이미 파괴되어 있다.   

 

우리를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문화가 있다. 이것은 싸구려 대량생산된 문화가 아니라 창작자와 소통하고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으로서 지혜를 배우고 느끼게 해주는 문화다. 문예부흥은 항상 혁명의 중심적 부분이다. 고상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내가 나로서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아파트가 선진국에서는 대개 싸구려 거주지로 인식되는 것은 집이란 이제 그저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우리를 인간으로 머물게 해줄 수 있는 중대한 요소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집을 짓지만 집은 만들어 지고 나면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이 집에 적응해서 산다. 공구함같은 곳에서 살면 더더욱 공구가 되고 마는 것이며 자신이 부품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더욱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선진국에서 대량소비를 떠올리게 하는 휴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휴가를 계획하고 그에 큰 비중을 두는 것에는 선진국이란게 그런 사회이기 때문이다. 부품이 되기 쉬운 사회에서는 사람이라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숲으로 캠핑을 떠나거나 그저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가질수 있는 조용한 해변마을에서의 단조로운 몇일이 진정한 휴가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패키지 여행을 떠나서 먹을 것과 볼 것을 대량소비하는 것을 대개 멀리한다. 그것은 돈버는 기계에서 돈쓰는 기계로 역할 전환을 한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접촉하는 것은 우리를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 나무와 꽃을 키우고 공원을 산책하고 하는 일은 선진국이라서 누릴수 있는 사치인 동시에 선진국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갖춰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인간일수 있게 하는 것중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물론 인간적 정서를 나눌 가족이고 친구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고 아내에게 남편이다. 우리는 부품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도 대체품이 있다. 가볍고 자극적 흥분을 느끼기 위한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 부품이 되고 만다. 서로를 위한 악세사리거나 동업관계다. 우리는 서로를 어떤 역할을 해주는 부품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가족간의 정이 존재하지 않고 부부간의 정이 존재하지 않을때 우리는 역시 다시 부품이 되고 만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그저 돈을 주는 기계일 뿐이다. 기러기 아빠는 종종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이들은 가족적 유대의 중요성을 너무 쉽게 포기한 사람들이다. 정이나 인간적 유대는 접촉이 없으면 줄어든다. 낭비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이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맺는말

 

우리는 어떤 학교를 만들어야 할까.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하고,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이런 것에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월급봉투의 크기나 사회적 생산성, 출산율따위를 들여다는 보는 것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원시인처럼 살라고 하거나 혹은 너희들은 어서 빨리 기계 부품이 되서 인간은 잊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나게 즐기고 쉬면 쉴수록 피곤해지고 희망을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거듭해서 실망하게 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처방전은 생각지 않고 아무 약이나 삼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국이 뭔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한국은 우리들의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나라가 될것이다. 

 

수천년간 인류의 스승이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이나 종교적 인물들 즉 불교나 기독교나 힌두교의 지도자들, 플라톤이나 노자나 마르크스나 사르트르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품으로서의 인간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직업부터 묻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같다. 부품으로서의 정체성에만 시각을 돌린다. 

 

우리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알면서도 그것에 속박되지 말아야 한다. 사상과 사회라는 기계를 버리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것에 지배당하지도 말아야 한다. 행동하는 것에도 행동하지 않는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산으로 가서 산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숲에서 미아가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남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잊는 순간 우리의 존재의미는 사라진다. 특히 과학기술이 발달된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거기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이미 그저 하나의 기계이다. 생각을 하는 것같지만 사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런 의식이 없는 존재다. 기계의 의미를 알고 기계가 아니기를 유지할수 있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것이 새로운 진보적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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