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24
머릿말
여기 난파하는 배가 있다. 그리고 저쪽에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무인도까지 헤엄쳐 가자는 것이고 하나는 어떻게해서든 배를 수리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결론은 둘로 나뉠 수가 없다. 모두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다 죽을 판이다. 상당수가 무인도까지 안가면 거기가도 정착에 실패해서 죽을 판이고 상당수가 무인도로 떠난다면 남은 사람들은 배를 고칠 능력이 없어서 물에 빠져죽을 판이다. 이럴 때 무인도까지 헤엄치는 데 자신있는 사람들은 쉽게 무인도로 가자는 것을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헤엄을 못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배를 수리하자고 할 것이다. 무인도에 도착하기 전에 물에 빠져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수와 진보가 흔히 겪는 상황이다.
한국에는 한가지 크나큰 미스테리가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고 휴머니즘을 외치는 진보가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 저소득층중에는 보수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왜 이런 것일까. 이 미스테리에 대한 답을 한국국민의 지적 수준이 낮아서, 세뇌당해서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차마 그렇게 말하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한국의 진보가 우선 진짜 휴머니즘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할만한 이야기다. 위 이야기는 진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진보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를 반대한다. 수영에 자신없는 사람에게 물에 뛰어들라고만 외치는 것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보수를 지지하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도 나름 일리있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의 성질
진보적인 인사는 종종 같은 특징들을 공유한다. 진보인사들중에는 고학력자가 많고 젊고 패기에 차있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를 개혁하자고 하는 것은 세상에 그런 개혁을 할 에너지가 있어서 그 개혁의 와중에 변화를 이겨낼 능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게 모두에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많은 진보주의자들도 그들이 비판하는 돈만 아는 보수층못지 않게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어떤 세상이든 그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살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영화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버스요금은 신용카드로 내고 공중전화는 없어지고 모두가 핸드폰을 쓰고 문자를 보내는 환경에 둘러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변화가 환상적인 것이며 더 효율적인것이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새로운 환경이 지옥같다. 핸드폰 사용에 서툰데 어디가면 이제 공중전화도 없다. 영화한편 보러가면 나는 길게 줄서고 돈을 많이 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싸고 편하게 산다. 버스요금도 잘못내는 신세가 된다. 이런 노인들의 입장은 무시하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찬양만 한다면 이 젊은이들은 정말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일까.
진보적 인간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사상과 주장을 외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실은 자신 스스로도 그 주장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설사 책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고 해도 외국의 사상, 과거의 사상이란 당시 시대를 살고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큰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는 노예제도에 근거한 사회였던 그리스 아테네 같은 곳의 제도를 민주주의 제도 라고 말하거나 인디언 학살에 열심이었던 미국 건설의 아버지들을 평등과 자유의 아버지로 이해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큰 오해다. 프랑스 대혁명때의 누군가가 경제적 평등을 외쳤을때 그 상황이 지금의 한국의 상황과 정말 같을까?
외국의 것이면 뭐든지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세상을 훨씬 복잡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우리가 적응하지 않은 세상으로 크게 바꾸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권력욕
진보에 대한 비판을 더 심하게 하자면 그들도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세상을 물로 가득채우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에게 좋을 것이다. 세상이 뭐든지 주먹으로 해결되면 주먹싸움 잘하는 사람에게 좋을 것이다. 세상이 사상적으로 법적으로 복잡해지면 머리좋은 사람들만 자유롭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리저리 눈치보며 살아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단지 무력이나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사회구조, 관습따위를 지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보적 사상을 수입하여 스스로의 정신적 향상을 꾀하는 것이야 자신의 자유지만 왜 그것을 국민전체에게 보급하려고 할까? 건강식품 권하듯이 몸에 좋으니까? 어떤 사람에게 성적인 개방은 자유사상의 보급이고 개인주의의 긍정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 구조를 파괴하고 불안전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폭동이나 마찬가지다.
진보적 주장, 언뜻보기에 중립적이고 모두를 위한 것같은 개혁안도 상당부분은 권력에 대한 의지때문이다. 이 세상을 자신에게 편한 세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머리에 든 것은 없으면서 돈만 많은 사람들이 돈이면 뭐든지 되는 세상으로 세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다르지 않다. 무식하지만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뭐든지 주먹으로 결판내자고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다.
진보도 언론에서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주장으로 세상을 가득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언론의 자유같은 것도 당연한 주장같지만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란 정확히 정의되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에서 수백년간 싸움이 날 이유가 있겠는가. 미국 역사에서 집권세력이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를 찬양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마음이 먼저고 머리와 물질은 두번째
결국 진보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거나 정책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서 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 저소득층은 미안하지만 거기서 진심을 느끼지 못한다.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세뇌를 하는 것 같고 정책문제도 어떤의미로 돈을 줘서 매수하는 고등수법처럼 여겨진다. 즉 일단 세상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고 나면 잔인하게 그들을 내버릴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랜 세월 이미 정착해서 변해오지 않았던 시스템에 머무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왜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를 신뢰하지 못하는가. 본래 진보는 감동적일정도로 헌신적인 휴머니즘이어야만 한다. 작은 당근정도로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민노당이 오랜간 한국사회에 있었지만 그들은 대중적 지지를 사실 받지 못했다. 왜일까? 사람들은 노풍을 가르켜 파퓰리즘이라고 비하하지만 그들은 정권을 창출하고 국회 다수당을만들어낼 정도의 에너지를 발휘했다. 개혁당을 단숨에 만들어 내고 비교적 무명의 노무현을 청와대로 보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논리? 정책?
맺는말
복잡한 말을 하지 않아도 논리적인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전략 전술에 능하지 않고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매우 이해하기 쉬운 정치를 했다. 그때문에 비판도 엄청나게 받았지만 나는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현실을 보고 있는가 의심스럽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세력이나 반한나라당 세력도 자신들이 사회과학서적에 익숙하고 경제학서적에 익숙하고 박사니 교수니에 익숙하니까 온국민이 그럴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보통의 사람도 기죽지 않고 편하게 살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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