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4.18
먼저 오해할까봐 써두는데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노무현의 지지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의 실패라는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의 한국사회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남북문제도 경제문제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화합입니다. 국민화합이란 국민들간의 기본적 신뢰의 문제이며 국민들이 공유하는 삶에 대한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철학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이 갈라질때 무슨 일이 생기는 가를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익히 경험했습니다. 화합할 수 있는 합의와 철학에 이르지 못하면 분열이 생기고 모순이 쌓이면 극단에 이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앞의 어떤 일도 국민화합이 된다면 능히 다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만큼 현재 한국에서 이 문제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국민은 남북문제에 관련된 영화에 열열히 지지를 보내는 편입니다. 붉은 악마처럼 모두가 함께 나라를 응원하는 하나되는 경험을 할 때 크게 감동합니다. 뒤집으면 이것은 우리국민들이 서로 분열되어 긴장관계를 유지하느라 너무 지쳐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처럼 축구에서라도 하나로 뭉치면 너무 통쾌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 작다면 작은 일에서 조차 모두가 마음이 통할 때 우리는 큰 감격을 받습니다. 믿지못하고 감시하고 조심하며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더 못먹고 못살았을 때 어찌보면 훨씬 더 국민화합이 좋았습니다. 목표가 분명하고 확실했으니까요. 해방이후 좋은 나라라는 것은 그저 기본적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아주 기본적 인권이 지켜지면 되는 나라라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장과 목표를 위해 고도의 철학과 대단한 합의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서 부자되자는 말이면 족했습니다.
이제는 틀립니다. 이제 우리는 고도의 철학, 삶에 대한 깊은 이해,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정신적 틀이 필요합니다. 그런 깊이가 없다면 국민은 갈라지고 갈린 줄의 양편에서 불신의 골은 깊어만 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돈이나 혈연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대한민국이 아직도 이 수준에 있다는 것은 실패입니다. 저는 이 실패가 노무현만의 잘못이라고 생각지는않습니다. 더구나 누구의 잘못을 말하기 위해 실패운운 하는게 아닙니다. 노무현은 노무현의 몫을 충분히 했는데 안된거겠지요.
그러나 노무현은 결국 약자의 편에선 지도자로 그쳤습니다. 노무현의 사고방식, 노무현의 철학은 간결한 메시지로 정리되어 국민모두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조중동은 끝까지 그에대한 불신을 들어냈습니다. 이명박과 노무현에 대한 입장태도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의 차이 이전에 불신과 신뢰의 차이입니다. 이명박은 밀어주면 결국 우리에게 좋은 세상 만들거라는 생각, 노무현은 더 밀어주면 우리를 말살해 버릴거라는 생각이 입장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좋은 세상이 오게하는 게 개혁이라면 개혁이란 정의가 악을 징벌하는 식으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개혁이란 모두에게 바람직하고 좋은 것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이러 저러한 당위, 도덕, 욕심을 넘어 너무나 상식적인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진짜 개혁입니다. 정의가 악을 징벌하면 악의 입장에서는 정의의 편이 악일뿐입니다. 원한은 점점 쌓입니다. 한나라당이 입만 열면 김대중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것은 그저 구호가 아닙니다. 그들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세상은 이쪽 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세상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행적을 보면 이 글의 제목은 잘못된것일지 모릅니다.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해나가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철학책을 쓰거나 고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피하는 편이지만 경상도의 고향으로 돌아와 살기좋은 시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29만원밖에 없다며 변명하면서 서울 생활을 즐기는 전두환, 정치판주변에서 맴도는 김영삼을 노무현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냐 안하냐를 떠나 현명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노무현은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 경상도에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의 시도가 성공할 때 더 많은 경상도 사람들이 그들이 써온 색안경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살기좋은 농촌을 만들어 낼때 투쟁하는 농민도 도시생활에 지친 국민들도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것입니다.
이명박은 콘크리트로 바른 청계천을 만들어 미래를 제시합니다. 그건 그저 더 많이 가지게 되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철학적 깊이의 현실은 선진국들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부족합니다. 우리의 종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종교란 우리를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이대로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프랑스나 독일처럼 가진게 많아진다면 한국은 반드시 역풍을 맞아 침몰할것입니다. 그건 나룻배에 짐이 너무 많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의 크기를 키워야 합니다.
노무현이 살기좋은 농촌을 만들려고 하는것에는 아무런 개인적 고상한 목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하고 싶으니까 지금 이 순간엔 그걸하는게 옳아보이니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보는 오늘날 한국이 절실히 필요한 어떤 것과 이어져 있다고 봅니다. 국민화합입니다. 그걸위해서 노무현은 다시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래를 생각하자면 노무현의 성공을 기원하게 됩니다. 부자 농촌, 부자나라 이전에 살기좋은 농촌,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이 과거의 노풍처럼 일어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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