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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노무현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해야 하는 것들

by 격암(강국진) 2009. 5. 26.

2009.5.26

머릿말

 

어제는 문득 홍길동 이야기가 생각나서 아내에게 반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율도국이나 세워서 살면 어떨까. 빈터에 홀로서서 바람맞고 지쳐서 마지막 남은 몸을 던져버리신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면 마땅히 그의 주변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어야할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한국에 있었으되 흩어져 있었고 미약해져 있었죠. 저처럼 무기력했습니다.

 

서프라이즈 같은 노무현의 지지사이트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비단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것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유시민의 열린우리당내 선거에서도 나타납니다. 분명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대중적 소통과 교류의 장소이외에도 참여정부의 철학과 정신을 증류하고 발전시켜 선전할 지식인 집단도  물적토대도 없었습니다.

 

물적토대의 부재와 비극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이 노무현을 좋아할까라고 물어보면 대개는 아니라는 답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모든 것은 아니라고 해도 사는데 중요한 부분인데 노무현을 받쳐줄 물적토대가 없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세상에는 합법적으로 돈을 건네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슨 상을 주거나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시켜서 엄청난 월급을 주거나 강연회 연사로 부르고 하는 이런 유명한 방법말고도 많습니다. 하다못해 좋은 정보 한자락이면 합법적으로 부자만들어 줄 수 있지요.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닙니다. 범법과 결백의 사이에는 굉장히 많은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들 유학보내는 자금 따위 이야기가 나오고 빚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하는 말입니다. 그를 지켜줄 지적 방어막도 없고 물적토대도 없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빈터에 우두커니 홀로서 있었던 셈입니다. 비극이 시작되는 진원지중의 하나는 그런 것입니다.

 

대안의 나라.

 

봉하마을은 이제 시작중의 시작에 불과합니다만 위대한 한걸음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위대하게 커졌다면 말입니다. 대안학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대안 마을, 대안 도시, 대안 대학, 대안 연구소등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첫걸음일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그런 것을 계획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의 주류 문화가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살 방법을 주장한다면 왜 실제로 그렇게 살아서 그런 방법의 효율성을 실증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통해서 지방의 농촌도시가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살만한 마을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거기가서 살겠죠. 상업도 발전할것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어제는 또 알고지내는 대학교수후배와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한국대학의 현실이 제가 알고 있는 현실들과 합쳐지면서 처참한 그림은 좀더 생생하게 다가 오는 것 같았습니다. 후배 교수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후배가 동의한 것은 재단이 대학을 지배하는 가운데 재단은 사업적인 철학만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그저 경쟁만 강화하면 답이 나온다는 식의 생각이외에는 하는게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학은 그저 기업일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책도 본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대학의 지식인은 그저 월급쟁이 일뿐일꺼라는 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거 같습니다. 교수들은 이렇게는 교육도 연구도 모두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지식인들은 자본에서 독립하여 직접 바람직한 지적인 분위기를 가진 대안 대학을 만들지 않을까요. 결국 돈이죠. 물적토대를 마련할 방법이 없으면 말이 안되는 겁니다. 

 

자본의 시대. 지식인의 시대

 

해방이후 이제까지 한국은 정치와 돈이 지배하는 나라였습니다. 권력자가 뭔가를 결정하면 다른 사람은 그냥 생각없이 따라하는것입니다. 재벌 총수가 뭔가를 생각하면 그냥 따르는 것입니다. 자본을 가진자가 뭔가를 결정하면 지식인은 단순한 월급쟁이로 따르는 것입니다.

 

현 시대는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시대로 자본을 가진자의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천박한 철학과 윤리때문에 한국은 혼란만 겪고 있습니다. 시대는 이제 전문가와 지식인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또한 지식인의 무능을 보여주는 시대입니다.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에 따라 리더쉽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여전히 자본을 가진 자의 명령을 듣고 수동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대안언론, 진정한 대안적 교육과 학문연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월급쟁이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벤쳐처럼 나갈 용기는 보여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방시대를 예견하고 당위성을 말하면서 노통처럼 지방으로 내려가 마을을 만들지도 않고 대학운영의 문제점을 말하면서도 새로운 지적 분위기를 만들만한 문화운동이 터져나오지도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지적은 부당한 면이 있습니다. 하고 있는데 성공하지 못했거나 못하거나 저에게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큰 화제가 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죠. 대안적 대학교도 벌써 이야기 나온지 꽤 됩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대안으로 고려될만큼 성공하지 못한 것이죠.

 

노무현이라는 대안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질문이지 답이 아닙니다. 이것이 대안이다라는 것이 답인 것이죠. 노무현이 상징하는 가치가 대안이라면 그 대안을 기성언론에게 설득하고 지역주민에게 설득하고 기성 회사와 상인들에게 설득하고 기성 대학에게 설득하는 것이외에 대안을 실행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것이죠. 노무현이 생각하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던 곳이 봉하마을이고 따라서 이것이 그렇게 위대한 첫걸음이 될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현실인식을 완전히 부정할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이 가진 대안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하거나 참여정부는 비전 2030같은 것을 통해 나아갈 바를 이미 다 밝혀놓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정책적으로 답은 나와 있고 이제 권력만 확실히 잡으면 실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권을 잡고 권력을 쥐는 것과는 별도로 혹은 그것들을 가지고 싶고 지키고 싶으며 그러면서도 제2의 노무현비극을 재창출하고 싶지 않다면 국가 규모가 아니라 작은 규모에서 대안적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먼저 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봉하마을이 있고, 협동조합의 건설을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문화적 지적 대안을 찾고 정리하는 연구집단의 건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프와는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서프는 서프의 길이있고 그건 그것의 길이 있겠죠. 노무현에게 공감을 한 사람들이 그저 개인에게 공감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에 공감했다면 그것이 대안적 움직임으로 나갈때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단지 다음 대선이나 총선을 기약하자는 태도로 물러나고 만다면 승리하기는 힘이 들고 열린우리당의 승리가 보여주듯 승리해도 할 수있는게 거의 없으며 노무현의 비극이 재발할 수 있는 비극의 토대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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