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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노무현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격암(강국진) 2009. 5. 23.

2009.5.23

노무현 대통령의 빈자리가 나를 너무 채워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지기 전에 몇글자를 적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약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46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남. 집안은 가난했다. 그 가난으로 인해 초등학교때는 결석이 잦았고 중학교 1학년을 외상으로 입학할 정도 였다. 그러던 중에도 조숙한 사회의식을 보여주어 1학년 말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글짓기 대회에 백지동맹을 선동하여 정학을 받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가난으로 중학교는 휴학과 장학금을 받기를 거쳐서 겨우 졸업했으며 부산상고를 진학하여 졸업한후 변변치 못한 직장과 막노동을 하면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20대를 보냈다. 

 

판사와 변호사를 하면서 생활이 안정되었으나 30대중반인 1981년 부림사건의 변호에 가담하게 됨으로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88년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 당시 정치입문의 후원자는 김영삼이었으나 1990년 삼당합당을 부도덕하다고 비판하고 김영삼과 결별한다. 

 

1992년 부산동구에 민주당후보로 출마하여 낙선. 1995년 부산 광역시장후보에 출마하여 낙선. 1996년 서울 종로구 통합민주당후보로 출마하여 낙선.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나 2000년 부산북 강서을 지역구에 나가서 다시 낙선. 

 

2000년 선거패배후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역임한다. 2002년 새천년 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 소위 노풍을 일으키며 대통령후보로 당선되고 많은 우여곡절끝에 대통령으로 당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사회에 합리주의에 기반한 질서를 가져오고자 노력하신 분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국민에게 생방송으로 중계된 5공청문회였는데 이때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은 청문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뻔뻔함이상으로 비합리적이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합리적인 모습으로 단연 뛰어남을 보여 노무현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합리성은 그후로도 계속되어 대화에 의한 합의, 토론하는 자세를 가장 강조하는 정치인으로 노무현은 기억됩니다.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감격하게 했던 것은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이었는데 그 꿈이란 어찌보면 대단한게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던 것입니다. 

 

비밀과 야합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노무현은 어찌보면 최초로 권력을 국민에게 개방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권력이란 결국 정보고 국민들에게 가장 투명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놓고 합리적으로 따질 때 결국 그 이익은 평범한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가 국민과 직접소통했던 노하우 홈페이지는 다시 재현되기 힘들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으며 그만큼의 감격을 국민들에게 안기기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평범한 시민들이 쓴 수십만건의 글이 올라와 그 글들을 읽으며 눈물흘리고 밤을 지새웠던 그 감격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노무현은 분명 세계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정권을 창출한 세계역사에 남을 일을 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비판하다가 정치적으로 패배를 겪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원칙과 투명성 그리고 국민을 믿고 용감하게 살았던 노무현의 태도에서 찾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성이라는 이름아래서 구부려 뜨렸던 원칙을 노무현은 지키고 지켯습니다. 

 

그런 사건중 가장 큰 사건은 물론 탄핵사건이었습니다. 노무현은 탄핵의 위협에도 뒤로 물러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을 결의하려고 하자 탄핵결의를 막지 말라고 했으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탄핵이 통과되면 기꺼이 대통령직을 던질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대통령직이란 권력도 결국 그의 원칙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권력을 던지고 가장 큰 모욕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겪는 모욕과 고난이 그대로 국민적 분노로 바뀌고 그것이 개혁을 추친하는 원천적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가장 큰 권력인 대통령으로서 몸을 낮춰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권력들의 실체를 국민들이 그대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광화문을 질서정연하게 채운 탄핵반대 촛불의 추억은 한국 국민들에게 우리도 이렇게 대단한 국민이구나 하는 국민적 자존심을 높이게한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한국사회의 희망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외국인들도 평화시위로 국난을 해결해 나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탄핵 후폭풍은 그전만해도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열린우리당을 단숨에 과반이 넘는 집권여당으로 만들고 한나라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중 하나였으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오던 그것은 변할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은 천사도 초인도 아니었을 것이나 한국에서 가장 큰 희망을 보여주던 진정한 어른이었습니다. 그 하나가 사라짐으로해서 생기는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전국을 밝히던 촛불이 모두 꺼져버린것처럼 슬픔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시는 길에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분들은 모두 촛불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슬픔과 허전함이 넘쳐서 더이상 말하기 힘들어지기 전에 몇글자 씁니다. 처참한 심정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국진 (필명 , 격암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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