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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운동화 끈을 묶으며

by 격암(강국진) 2008. 5. 15.

아이들의 학교에 학부형으로 참석하고 머리속에 하나둘씩 늘던 흰머리가 이젠 도저히 무시할수 없어집니다. 어리게만 보이는 동안이라던 거울속의 내얼굴에서 굵은 주름한자락을 발견했을때 아 이젠 나도 젊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나이는 몸으로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말투가 달라지고 기억력이 약해지고 어느새 시시시비를 따지기 피하는 내모습을 보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내가 젊거나 어렸을때 선생님이며 친척어르신들이 젊은게 좋은거라고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지 알게 됩니다. 밤을 세워 술을 먹거나 몇일을 야근을 하거나 목이 메도록 슬프게 몇밤을 보내도 끝끝내 나를 구원해 준것은 그 젊음입니다.  

 

짝사랑이며 지긋지긋한 시험공부며 어른들의 무시며 하고 싶은 것은 잔뜩있지만 주머니는 텅텅비었고 어른들의 간섭만 잔뜩있었던 그시절에는 젊음의 아름다움이란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시험문제가 어렵다고 한들 답은 교과서 안에 있고 4지선다형문제라면 고작해야 4가지중의 하나는 답인 공부가 이제는 너무나 쉬워보입니다. 인생의 시험범위는 무한히 넓은데다가 답이라는게 있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진것은 많으나 책임도 많아집니다. 더많은 사람들이 더많은 것을 기대하며 나에게 의지합니다.

 

나이가 들면 상처입고 쓰러졌을때 다시 일어설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가진 것이 많아진 만큼 책임져야 할것도 많아집니다. 청년이 끝나갈 무렵 많은 사람들은 10억을 꿈꿉니다. 10억만 가지면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로 살아갈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쉽고 금전적 보상이 좋은 것들은 대개 나쁜짓입니다. 에너지가 넘치지 않고 심신이 지친 가장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대게는 나쁜짓을 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쁜짓은 댓가가 크기 때문입니다. 10억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픈 소망인 것입니다.

 

약간의 생각이라도 있고 약간이나 책을 읽었다면, 세상을 모르고 보다 가진것이 없고 약했을때 세상에 분노하고 없는자들의 것을 덜어 배부른자들에게 퍼주는 그 시스템에 분노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느새 나이들어버린 우리들은 이제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폭탄에 들어갈 스프링한개를 만들어도 폭탄을 만들어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가 들어 아는 것없거나 가진것없는 사람들을 등쳐먹는 일에 참여합니다.

 

시장의 원칙이 어떻다던가 세상은 본래 그렇다던가 그나마 나는 낫다던가 위엣놈들은 더하다고 말하는 수많은 변명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처자식이나 부모를 부양하기 위한거라는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어디선가들려오는 분노의 목소리들을, 아무것도 모른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같은 순진한 사람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잊으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대개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들만은 나같이 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세상에 좋은 일만 하면서도 편하고 폼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처럼 당연히 그것을 가져야할 누군가의 피땀을 가져다 자식의 학원비를 내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식들을 사랑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돈이 흘러넘치는 자리보다는 더러운짓 덜하고 살수 있는 세상을 물려줘야 할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살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운동화를 꺼내 조깅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시 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조금만 젊으면 나는 조금더 좋은 세상을 만들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금더 좋아진 세상에 우리들의 아이들이 살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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