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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것이다.

by 격암(강국진) 2008. 8. 1.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자다. 이말은 누가 처음했는지 모르겠으나 드라마 하얀거탑에도 나오고 영화 황산벌에도 나오는 등 많은 곳에서 나오는 말이다. 비슷한 말은 이렇게도 만들수 있다. 정의로운자가 승리하는게 아니라 승리하는 자가 정의로운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이길수 있을까? 그런데 왜 승리하지 않는가. 배부른 소리 아닌가. 나도 맘만먹으면 저쯤 할수 있다. 저까짓거 별거 아니다. 단지 이런 저런 걸 안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패배한것이다라는 말은 변명이 아닐까? 아 여기까지 읽고 이사람이 아주 반사회적이 되어버렸구나 하고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도덕적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사람, 법을 지키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한 부류는 그냥 관습을 깰 용기가 없어서 그걸 지킨다. 또 한 부류는 그걸 지키는 것이 진정한 승리고 그걸 지킴으로서 진정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승리가 뭐고 살아남는다는게 뭔가는 생각에 따라 다르다. 부정부패로 착복해서 부자가 되서 살아가는 것을 승리로 생각할수도 있고 그렇게 살다 죽는게 뭐가 행복하냐고 그건 패배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당장 불법선거해서 선거에 이기는거 보다 떳떳하게 지게 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진짜로 살아남는 길이라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다. 역사상 수많은 인물들이 그렇게 믿고 소신을 지켜서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이 되지 않았던가?

 

생각이 있어 지키는 것과 그냥 습관으로 지키는 건 마찬가지가 아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는 철학은 반드시 도덕과 법에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소신에 따라 사는 사람은 때로 도덕과 법에 저항하는 입장에도 서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 온것이다. 과거의 많은 주변인들이 지금의 실세가 되어 법이되고 도덕이 되었다.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정의가 무엇인지 도덕이 무엇인지를 설파하고 지키고 떠들어 대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살아남아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도 번영하고 선거에서도 승리하는 것을 보여줘야 그 정의와 도덕이 새로운 사회의 정의와 도덕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불매운동을 일으켜서 조선일보 실제로 망하게 할수 있어야 한다. 그정도 실력행사를 못하고 세상이 바뀔거라고 믿는것은 착각이다. 우는 소리 좀하고 도덕심에 대한 촉구 하면 가진자들이 양보할거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양보란 없다. 실력으로 빼앗아 와야 한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고 살아남는게 강한자다. 정의로운자가 승리하는게 아니라 승리하는 자가 정의로운 것이다.

 

 해방이후 독립투사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은 약삭빠르지 못했고 국민들을 충분히 감동시키지도 못했다. 그래서 해방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지만 그들은 종이위에서만 정의로운 자들로 남아있고 그 당시에 친일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있냐는 소리만 세상에 가득하다. 승리한 자들이 그들의 정의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은 해방직후의 혼돈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재벌의 원칙없고 탐욕어린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재벌가문 방식의 경제운용이 오늘날 효과가 적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소액주주연합이 그들을 막을수 있어야 하고 중소기업이 재벌기업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이 재벌에 대해 징벌을 가할수 있도록 통일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IMF를 터뜨리고 그밖에도 차떼기며 성추행이며 무수한 무능과 수준미달의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유치한 쑈를 하건 파렴치한 언론플레이를 하건 그래도 살아남아 이젠 청와대와 국회 모두를 장악했다. 살아남았으니 강한자가 되었다. 그들의 정의를 설파할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반면에 민주화세력, 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과 친화할수 있는 대중기반도 경제기반도 문화기반도 다 취약하다. 정치의 큰 부분은 경제인데 그들은 스스로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여전히 그저 대중과 양심적 지식인의 피만 요구한다. 개혁을 설파할 학문적 기반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고 개혁을 보여줄 경제적 상징도 없다. 문화운동에는 어느정도 기반이 있으나 인터넷도 문화판도 모두 기업화되면서 세가 오히려 약해졌다.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강한자가 아니다. 승리하지 못했으므로 그 스스로의 정의란 공허한것이 되었다. 지난 대선 직전 손학규를 영입하고 서프라이즈같은 친정부 토론사이트는 이회창과 연합하자는 소리가 나오고 원칙도 없는 당부수기와 당합류로 내부 경선은 초라한 것이 되었다. 그들이 개혁을 말하니 설득력이 있을리가 없다.

 

 우리는 강자에게 승리를 구걸할수는 없다. 실력으로 함께 사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 실제로 강한 힘을 보여준다는 것을 보여줄때 강자가 되는 것이다. 노사모가 강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게 아니다. 내부경선을 승리로 이끌자 노사모라는 집단에 대한 실력예우가 사회에서 일어난 것이다. 강한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 실력을 보여줄 수 없으면서 사실은 우리는 강자라고 말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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