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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왜 실패했을까.

by 격암(강국진) 20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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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노풍이 불던 시절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더 구체적으로 정치언론적 환경을 바꿔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의심하던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은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고 있었고 전에 정보가 닿지 않던곳 전에 연결되지 않던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런 인터넷이 실패했다. 물론 세상엔 진짜 실패는 없다. 포기하지 않는한 언제나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거나 이미 이룩된 것에 찬사를 보낼 수는 있다. 촛불집회도 인터넷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영향력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왜 그랬을까?

인터넷은 진짜로 실패했는가.

촛불집회는 위대한 실패다. 미래를 위한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성공으로 부르고 싶다면 그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상적 의미를 덧붙이지 않는다면 촛불집회는 광화문을 가득 메웠지만 87년의 운동처럼 실질적이고 만져지는 것을 성취하고 끝나는데 까지 나가지 못했다. 그토록 대단한 집회를 했는데도 지금은 그것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남은게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박은 물론 어청수도 추부길도 강만수도 누구하나 별로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 법이 제정된 것도 아니다. 아니 주로 반대방향으로 인터넷을 장악하려는 법이 제정되거나 제정되려고 한다.

인터넷 정치를 표방했던 개혁당은 문을 닫았고 더 이상 인터넷 공간이 진보적인 사람들의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판은 인터넷을 망할대로 망한 뒤 최후에 기대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며 무엇보다 언론은 전보다 인터넷을 덜 두려워 한다. 인터넷은 대단하다. 그러나 전처럼 통제불능의 어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훨씬 예측가능한 것이 되었다.

인터넷은 오프라인 세계와 몇번이나 대규모로 충돌했다. 탄핵반대만 그런것이 아니다. 광우병만 그런 것이 아니다. 황우석과 디워 그리고 아프칸 선교사건등에서 인터넷은 오프라인 세계와 충돌하고 졌다. 패배가 잦아지므로 인터넷의 힘에 대한 신뢰는 줄어들었다. 그것들이 인터넷의 패배가 아니라던가 그 사안들은 애초에 인터넷쪽 사람들의 의견이 틀렸었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각 사안들의 시비 이상으로 그 사안들이 어떤 모양새를 가지고 끝이 났는가 하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주관적 측면이 있으므로 그걸 패배가 아니라고 누가 부른다면 반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패배라고 부른다. 인터넷 세력의 체면이 손상되면서 담론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충분한 권력을 가졌다면 인터넷이 틀리게 되지 않는다. 인터넷은 만능이라는 것이 아니다. 오프건 온라인이건 여러가지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고 인터넷에 권력이 있었다면 설사 어느정도 무리가 있었더라도 그것들을 어느정도 추스려서 권력을 가진 자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게 끝이 난다는 것이다. 바로 오프라인이 그러하듯 말이다.

디워의 영화적 완성도나 각자의 취향을 뒤로 하면 디워는 중국에서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렸으며 미국에서도 한국영화중에서는 그렇다. 심형래감독은 디워가 1억불의 수입을 올렸다고 밝혔다. 화려한 성적 아닌가? 애초에 디워는 오프라인의 비판을 받지 않았다는둥 심형래감독이 왕따취급받지 않았다는 둥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이것부터 들어야 한다. 온라인에서도 디워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말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단지 그냥 보통 영화로 봐야지 코메디언의 영화라던가 이런 영화가 화제가 되는게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식으로 이 영화를 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냥 영화라는 것이다. 다만 디워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라는 제목으로 백분토론같은 것까지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했을 뿐이다.

 

그러나 온라인의 사람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광기어린 군중으로 묘사되었다. 미쳤다는 건 정상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대화의 상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모두가 악플러수준으로 격하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디워에 관한 논쟁이 끝이 나 버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이 졌다는 것이다. 최진실 사건이 일어나자 마찬가지로 논평이 흘러나왔다. 모든 네티즌이 악플러가 아니고 황색언론들이 세상을 더더욱 시끄럽게 만들어 화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덮어버리고 인터넷= 악플러 = 사람죽인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이러니까 패배라고 하는 것이다.

황우석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가 황우석이 연구한게 뭔가를 떠나 황우석 사건은 아직도 재판이 끝나지 않을 정도의 사안인데도 그 건도 결말짓기를 인터넷에는 미친 사람들이 산다는 식으로 결말이 나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이 졌다는 것이다. 고금을 통해 항상 권력이 강한 자는 자기 체면과 평판을 유지하고 권력이 없는 자는 미친 놈소리를 들으며 비웃음을 산다. 인터넷은 아직도 오프라인의 권력으로 부터 비웃음을 받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인터넷은 아직도 패자쪽이다. 

인터넷 퇴조의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음 아고라가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싶지만 인터넷 담론이 아고라라는 감옥 혹은 최후의 벼랑에 걸려있다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 아고라의 화면구성이나 추천수 정책이 조금만 바뀌어도 인터넷은 절체절명의 무인지경으로 가버릴 듯한 상황이 벌어진다. 더이상 인터넷 언론의 중심이 될만한 다른 곳도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 : 인터넷의 정체

나는 인터넷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이란 신진세력이다. 신진세력은 본래 권력도 돈도 인맥도 없다. 그들이 이기려면 기성세력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대책을 세우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화해야 한다. 신진세력은 새로운 게임을 해야한다. 기성세력은 장기를 두는데 신진세력은 체스를 두는 것이다. 게임자체가 다른 게임이란 것을 기성세력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아이디어와 기동력을 제외하면 신진세력의 장점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진화가 2002년의 대선직후 어디선가에서 멈춰버렸다. 한나라당도 인터넷을 이해하고 장악할 수있을 만큼 인터넷이 네이버와 다음에 의해 독과점 되버리고 말만큼 변화는 느려졌다. 

물론 하드웨어적인 발전도 그렇다. 한국은 노무현 정권출범쯤에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없는 인터넷 선진국이었다. 2002년 무렵엔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전화모뎀인터넷인 AOL이 대세였다. 우리는 동영상 방송을 하려고 하던 시절에 말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자랑하던 정보통신부의 계획은 뭐하나 된게 하나도 없는 것같다.

내 느낌으로 대기업에게 좌지우지 당하여 속은 것같다. 왜냐면 대기업이 사업권을 따내고 담합하여 고의적으로 발전이 늦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와이브로도 인터넷 방송도 DMB방송도 발전은 늦기만했다. 그사이에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추월해버렸다. 적어도 이제는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크게 앞서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엠피쓰리를 전세계에서 처음만들었고 피엠피를 일찍 만들었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구글이나 애플이 핸드폰을 만들고 나서 삼성이나 LG의 핸드폰도 사실 좀 첨단이라는 느낌이 바래지고 있다. 소니도 그러다가 별볼일 없어졌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소프트웨어적인것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만나는 방식에 대한 발전이 거의 정체되었다. 세계최초로 아바타나 지식인이나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를 만들고 온라인 게임의 선진국이었다는 이미지도 많이 희석되었다. 도대체 우리는 참여정부때 뭘한걸까. 그것이 온전히 참여정부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해도 참여정부때 가장 무능햇던 장관을 말하라면 나는 진대제를 말할 것이다. 지금와 돌아보면 마치 그 정권내내 자랑만했을뿐 발전은 완전히 정체되어 있었던 것같다. 와이브로는 사장되는 기술이 될판이고 위피도 그렇다. 

사이버 세상의 사상적 정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그런 것의 바탕엔 사이버 세상을 더더욱 발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사상의 정체가 있었다는 느낌이다. 의자의 디자인하나 마을 협동조합을 하나 만들려고 해도 거기에는 정신이 있다.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인터넷 발달의 초기에 무수히 있었던것은 유목민족정신이었다.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말을 하는 것이며 어떤 종류의 조직화도 터부시 되었다. 그것은 자유와유목민족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사람과 정보가 흘러다니는속도가 느렸던 초기에 그것은 그럴듯했다. 마치 서부개척시대의 미국에 개척자에 비해 땅이 얼마든지 있었던것처럼 웹은 사람을 더더욱 필요로 했고 무한한 자유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전세계에서 더더욱 빠른 장치로 올려지는 정보들의 세계, 더더욱 복잡한 세계에서 그 자유는 이제 자유를 파괴하고 있는 것같다. 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를 강조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런데 그 미국이 또한 가장 법을 강조하는 나라라는 것은 잊혀진다. 자유는 자유를 위해 제한되고 조직될 필요가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서프라이즈 같은 정치평론사이트가 채용하는 대문글 시스템이 탄생하는 것을 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안다. 자유롭게 게시판에 글을 쓰게 내버려 두면 한명의 무례한 도배쟁이가 천명 만명을 감당해 낸다. 결국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게시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마치 자유롭게 주먹을 휘두를 수있는 마을의 폭력배같은 사람들 뿐이다. 중앙에서 글을 선택하고 편집권을 행사하여 좋은 글을 대문에 내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무슨 이야기를 할 수있고 도배쟁이들이 사이트를 멈추게 하는 것을 막을 수있다.

이것이 과연 인터넷 정치평론의 문제만일까. 한국인터넷에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신뢰의 문제인것 같다. 지금 세상이 결국 다음이나 네이버 세상이 된것은 이때문이다. 다음이나 네이버의 운영진이 공평한 네티즌의 대표가 아닐지라도 중앙에서 질서를 잡지 않으면 폭력배가 날뛰는 무법천지의 시민들이 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다. 인터넷은 성장했고 따라서 질서유지를 위해 조직이 필요한데 네티즌은 스스로 그것을 세우기를 거부했다. 낭만적 자유를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질서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지금 인터넷의 모습은 포털이라는 식민지 총독들이 네티즌을 식민통치하는 꼴이다. 네티즌은 포털에 빌붙어 산다. 포털이 뭔가를 결정하는데 그다지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네티즌이 통제가능 해졌다. 정부와 자본이 포털을 장악하면 네티즌을 장악할 수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자유의 공간이지만 그 자유를 지키려면 네티즌은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무법자와 악플러와 알바를 막아내야 하고 선량한 네티즌을 보호해야 한다.

일어났어야 하는 변화

결정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변화는 네티즌 스스로가 모여서 헌장을 만들고 대표를 선출하여 네티즌의 자본으로 돌아가는 포털같은 것이다. 그걸 꼭 포털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고 실제로 포털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즉 네티즌의 공화국인 인터넷 공화국을 세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세우자는 말은 나자신을 비롯하여 여러사람이 했지만 중요한 것은 몇몇사람이 이야기한것이 아니라 전체 네티즌이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감은 적었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서 질서를 위한 자정작업이 이것이 중요한데 한국은 일본, 미국 중국보다 작기 때문에 독과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경쟁에 의한 자정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네티즌이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리눅스운동처럼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사이버공간을 만들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있는 새로운 규칙이 있는 자치공간이어야 하고 그 형태를 인터넷 공화국이라 부르던 네티즌이 만든 자치 포털이라고 부르던 또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네티즌간의 의사소통은 포털들이라는 외부적 권위의 통제에 들거나 흙탕물싸움이 되고마는 수준에 머므르고 마는것이다. 

네티즌들이 스스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뭉치지 않았기 때문에 네티즌은 힘을 잃게 되었다. 교수들같은 오프라인의 지식인들중의 소수만이 온라인의 담론형성에 끼어든다. 그것을 나무랄수도 없다. 왜냐면 고급 지식인들은 굉장한 자기 소신이 없다면 지금의 온라인에 끼어드는 것이 크나큰 희생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동네 야구대회에 와서 댓가없이 경기하라는 것이고 세계적 명배우에게 동네 학예회에 와서 무료로 개그한번 하라는 것이다. 전문가는 그것이 되기위해 노력을 했고 그들의 평판이 그들의 자산인데 아무 자리에나 끼어들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있을까?

네이버가 누구를 초청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엄청난 사람들이 사용하고 조단위의 자산규모를 자랑하는 회사가 어떤 행사를 주관한다면 훨씬더 형식이 서는 것이다. 네티즌에게는 이것이 없다. 네티즌이 전문가를 초빙할때 그것은 진흙탕 속으로다. 솔직히 대의명분에 대한 강한 느낌이 없다면 거기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전문가들로서는 이익처럼 느껴진다. 네티즌은 네티즌에게 우호적인 지식인조차 악플러가 드글대는 돼지우리속에 쳐넣어 버리고 알아서 생존하라고 하는 식이다. 질서와 조직이 없으면 전문가는 살아가지 못한다. 전문가란 슈퍼맨이 아니라 어떤 방면으로 몰입한 존재이고 따라서 오히려 다른 방면으로는 매우 취약해서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인간들이다. 전문가는 안정적 사회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생물들이다.

맺는말
 
인터넷은 물론 그저 수단이다.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따라서 필요한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일어날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 내년 내년이 아니라면 10년뒤라도. 그러나 물론 필요한 것이라면 10년뒤가 아니고 내년이 아니고 빨리 일어나는 것이 좋다. 한국이 뒤쳐져서 어디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국은 인터넷 선진국 운운하던 시절을 그야말로 전설처럼 가지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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