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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없다.

by 격암(강국진) 2009. 3. 19.

머릿말


10년전쯤 인터넷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즐겁고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즐겁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이제 나는 인터넷이 새로운 금광이 되는 시대는 한동안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이 이렇게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대에 이 무슨 웃기는 소리냐고 할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인터넷 없이는 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뭐든지 검색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인터넷으로 결재하면서 살지 않는가?


인터넷은 없다?


인터넷이 없다는 말은 따라서 인터넷이 사라진다거나 인터넷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도가 줄어든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터넷이 변화의 중심으로 작동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역사를 보자. 초기에 기계어만 알아먹던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머란 요즘 기준으로는 입자물리학박사나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펀드매니저, 천재 음악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컴퓨터와 대화할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였으며 그들은 신기한 능력을 가진 전문가로 생각되었다.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천재해커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게 거기서 나온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요즘은 어떨까.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사실 가장 싸구려 직종에 속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일해도 직접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 고위직이 아니다. 설계와 영업같은 것을 하는 사람이 고위직이며 직접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은 가장 저임금의 노동력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일하고 노조도 없고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중의 하나다. 나이들면 어차피 프로그램 짜기 힘들다. 새로운 것은 계속 나오고 새로운 젊은 세대는 기꺼이 박봉에도 밤을 세워 프로그램한다. 


지금 우리가 프로그램을 안쓰고 있는가? 천만에 전보다 훨씬 많이 쓴다. 컴퓨터 프로그램없이 우리는 살수가 없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점점더 확장되어 갈것이다. 그러나 획기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한 적어도 당분간은 인터넷이란 단순한 수단으로 정착할것같다. 


원래 그랬다고?


여기서 원래 인터넷은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원래 단순한 수단이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 상당히 다르게 대화가 진행된다. 심지어 내 성격도 내가 말하고 있는 언어에 따라 변하는 것을 느낀다. 


인터넷이란 사람들과 사람들이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같은 것이었다. 인터넷이 없어도 편지를 써서 인터넷이 하는것을 대부분 할수 있지만 단순히 인터넷이 아무것도 아닌것은 아니다. 단순한 수단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언어였고 새로운 문화고 새로운 생활방식이었다. 단순하 도구가 아니라 그걸 쓰는 사람을 바꾼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인터넷의 확산이 한국에서 특히 빨랐던 것은 특히 한국인들이 그런 종류의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언어는 한국의 인간관계는 어떤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훨씬더 경직되어 있다. 한마디로 진실이 흐를 통로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본것에 대해 오프라인에서 제대로 말할수 있는가? 공사가 잘 구분안되는 한국의 분위기에서 진실은 항상 어딘가에서 실종되었다. 온라인에서도 그랬지만 오프라인에서는 특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비난이 많았다. 객관성이 실종되니 누굴믿어야 할지 모른다. 지금도 언론보도가 편파적이라고 느낀다면 인터넷 이전을 생각해 보라. 그때 영화평이 제대로 나왔을까? 그때 경제관련보도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을까. 언론사 사장이 맘대로 횡포를 부린다면 누가 그걸 보도해 주고 지적할수 있었을까. 


두 언어의 충돌


지난 10년간 두개의 문화는 여러곳에서 충돌해 왔다. 인터넷에 기반한 문화는 당연히 평등과 자유와 개방과 투명성을 주장하는 쪽이며 오프라인을 고수하고자 하는 쪽은 불평등을 유지하고 불투명성을 유지하고 대면접촉에 의한 낙점찍기 식의 인맥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지키려고 해왔다. 당연히 전반적으로 봐서 후자는 기득권 세력이 된다. 


그래서 기득권 쪽은 처음엔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에는 관심도 없었다. 지식인은 그런데 글쓰는게 아니다는 식이다. 유언비어고 할일없는 백수나 미친사람들이 우글대는 곳이라고 경멸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런데 그결과 놀랍게도 기득권세력은 커다란 패배에 직면한다. 가장 상징적 패배는 노무현의 당선과 탄핵 촛불집회다. 조중동의 허구적 보도는 금새 비판되었다. 구질구질한 정치인들이며 기업가들의 부패나 비리는 인터넷을 타고 널리 퍼졌다. 정보는 짜맞춰지고 분석되고 배분되었다. 


인터넷은 한때 자유의 물결의 축제의 장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하던 창작의욕은 인터넷 소설붐을 만들어 냈다. 무수한 사람들이 인터넷 소설을 쓰고 소비했다. 서점에서 돈주고 보는 것보다 그것이 더 훌룡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정치평론사이트는 크게 번성해서 신문의 사설보다 네티즌, 논객의 평론이 훨씬더 좋은 관점을 제시해준다고 느껴졌다. 


기성의 틀로 정보를 차단하던 벽이 무너지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주장하는 공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깃발을 올리자 단숨에 정당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게시판에 돈보낼테니 빨리 구좌번호를 올리지 않고 뭘하냐고 성화였다.  


인터넷의 패배


그러나 인터넷으로 촉발된 자유의 축제는 패배하기 시작한다. 그 결정적 이유는 두가지 인것 같다. 하나는 자유로운 주장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사상, 사회개혁의 이데올로기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누군가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대체하겠다고 하는 것은 훨씬 힘들다. 이명박을 욕하기는 쉽지만 이명박대신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훨씬 어려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인터넷으로 사회를 바꾸는데 가장 세계에서 앞서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철학적, 사상적으로 수용할 능력이 없었다. 비판은 기존의 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대안은 권력과 돈과 자원의 배분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는 것이다. 자유를 끝없이 주장할수는 없다. 자정능력만 주장할수는 없다. 예를 들어 불법다운로드나 작가나 분석가들이 어떤 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자제가 필요했다. 그래야 그들이 계속 성장해서 변화를 지지하는 것이다. 철학을 바탕으로 구조를 세워야 사회가 바뀐다. 그러나 누구도 개혁이 뭔지에 대해 알기쉽게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정치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흐름으로 보면 개혁당에 사람들이 합류해서 참여정부가 확실한 사회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정도였다. 그러나 개혁당은 외면당했고 사실 개혁당 스스로도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너무 부족했다. 인터넷 정당을 외쳤지만 유시민도 자기도 그게 뭔지 모른다고 말할정도였다. 여전히 정치 철학쪽으로는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새로운 질서를 줄 새로운 시각은 없었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크게 성장하고 여러가지 인터넷 사업이 크게 부흥할 조짐이 보였으나 그것은 모두 참여정부 기간동안 헛된 꿈으로 가라앉고 만다. 새로운 변화를 가장 크게 지지할수 있는것은 새로운 산업인데 그것이 오히려 후퇴했다. 이제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보다 인터넷 환경에서 크게 앞서있다고 할수 없다. 뒤져있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이런 첫번째 이유가 컷지만 굳이 두번째 이유를 말하자면 이때문에 인터넷 엘리트, 자유의 개혁세력이 인터넷에서 떠나버리는 현상이 생긴다. 예를 들어 언론은 언론의 자유만을 주장할까? 한국에 엠비씨라는 방송 하나만 있다고 해보자. 지금 내가 모든 확성기를 다가지고 있는데 인터넷이 나와서 다른 소리를 하고 그 영향력을 늘려간다. 신규사업자들의 참여를 막는 관행을 비판한다. 그러면 엠비씨는 언론의 자유를 기반으로 그걸 찬성해 줄까? 내가 박사고 교수라서 한국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중요한 의견을 내는 사람인데 인터넷에서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나와서 나를 바보만들면 그사람을 칭찬해 줄까 그사람을 막고 싶을까. 


인터넷은 몇번이나 크게 기성 언론과 기성 지식인 집단과 충돌한다. 아프칸 선교테러 사건, 디워 사건, 황우석 사건등 여러번에 걸쳐 인터넷은 바보 취급을 당하고 한때 인터넷세력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거꾸로 욕을 먹는다. 이는 나쁘게 보면 배신이지만 정확히 보면 인터넷이 스스로 철학과 구조를 세워 엘리트들을 수용하지 못한 결과다. 그들 모두가 적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터넷은 포용력보다는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인터넷은 지나치게 무질서하고 수익구조를 만들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희생만을 요구한다. 따라서 변화에 공감하면서도 인터넷을 변호해 주지 못하거나 상처받고 증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책쓰고 자기연구하면 돈벌고 명예가 생기는 사람도 공익을 위해 봉사활동하겠다고 나오면 쪽박을 차는게 아닐까 싶게 만들어 버리는 두려움이 생긴다.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정체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첫번째로 돌아가는 것이다. 맞다. 인터넷은 수단이다. 수단을 철학으로 정체성으로 승화시키고 그 정체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나오고 그래야 세상을 바꿀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터넷은 그러지 못했다. 인터넷의 편에서서 변화에 동참하던 많은 사람들은 중립적입장으로 돌거나 오프라인의 세계로 자신만의 블로그로 회귀했다. 말도 가려가면서 한다. 이제 인터넷은 정말로 수단이 되버리고 말았다. 


맺는말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 나름이다. 인터넷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한것은 아니지만 또한 수단에 불과하기도 하다. 단순히 수단이라고 하면 인터넷이라는 변화안에 있는 철학적 가치적 알맹이를 보지 못한 것이 되고 수단이 아니라고 하면 인터넷에서 그 철학적 가치적 알맹이를 끄집어 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 되는 것같다. 물론 세상에 필요한 모든 좋은 말씀은 이미 오래전에 성인들이 다 말해 두셨다. 문제는 이 조각들을 잇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설득력있는 질서와 포용성을 가진 문화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개혁은 춤추기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따분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을 버리고 우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자고 하지만 모두가 미친듯이 움직인다면 서로를 때리고 상처입힐 뿐이며 도무지 이 군무의 어디에 끼어들어야 하는지 알수가 없게 된다. 광란이니 폭도니 하는 소리나 들을 뿐이다. 거기에는 박자와 리듬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에게 호흡을 주고 움직임을 준다. 보다 자유로운 춤이지만 다함께 출수 있는 춤이다. 그 박자와 리듬이 개혁의 정체성이다. 딱 한줄로 쓸수 있어야 한다. 몇단어로 말할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 불었던 자유의 축제가 불이 꺼진 것은 그게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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