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6.21
스스로에 대한 수많은 질문은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개혁에 대한 많은 질문도 결국에는 새로운 사회를 살아갈 새로운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은 우리는 어떤 사람을 모범으로 해서 살아가야 할것인가. 말하자면 어떤 인간이 상식적인 인간일까? 예를 들어 조선시대가 열리고 유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선비였다. 힘써 학문을 익히고 도덕적 철저함을 추구하는 인간이 바로 새롭게 제시된 개혁적 인간인 셈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모두가 선비를 자처하고 선비로서의 자질과 의무를 논했다.
개혁적 인간형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선전되어야 한다. 미국에는 카우보이가 있고 영국에는 신사가 있으며 일본에는 사무라이가 있다. 인도에는 간디나 네루가 있다. 이들은 책과 방송을 통해 선전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때 서부영화시대의 영화배우인 존웨인의 팬이었다. 정의를 수호하는 카우보이는 독립적이고 자유롭다. 그리고 물론 이성적이고 사려깊다. 그들은 똑똑하지만 여차하면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행동력 있는 실용적인 사람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미국시민의 모범이 되었던것 같다.
한국도 앞으로 나가는데 있어서 개혁적 인간상의 제시라는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그저 한두개의 정책제시로 개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무수히 많은 일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추종이나 허구적 인물의 창조를 통해 이뤄지는데 우리 한국에도 예를 들어 김구가 있고 이순신이 있으며 이명박이 있고 박정희가 있다. 드라마에는 대장금이 있는가 하면 꽃보다 남자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명박과 박정희를 개혁적 인물상으로 꼽을 생각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일개 개인에서 하나의 개혁적 인간상으로 제시되게 된 것이다.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은 개인으로서의 노무현을 추모하기도 하지만 실은 하나의 정치적 개혁적 상징으로서의 노무현을 지지하고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노무현을 본받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개혁적 인간상이 가져야 할 품성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어떤 인간이 새시대를 여는 개혁적 인간일까? 나는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인간, 소통과 조화의 인간 그리고 가족에 헌신적인 인간이 그 답이라고 믿는다. 21세기는 더이상 누군가가 개발독재식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사람들을 이끌면 나머지 사람들은 인형처럼 행동해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의 이성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은 반드시 사회적 소통의 능력, 조화의 능력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뾰족한 주장으로 싸움박질이 계속되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의미는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이것은 출산율 전세계 최저로 대한민국의 증발이라는 현실을 두고 봤을 때 자명한 가치라고 생각된다. 국가와 사회 이전에 우리는 세대를 이어주는 최소단위의 공동체로서 가족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인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신지식인? 뭐 한번 그렇게 불러보기로 하자. 위의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노무현이 신지식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합리적이고 독립적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소통에 능했으며 그 가치를 알았다. 그리고 그는 가족의 가치를 저버리는 일이 없었다.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그의 형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이것은 분명히 들어난다.
이런 신지식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까 하는 것은 열린 질문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중요한 한가지는 이런 사고의 결과로 나타난다. 신지식인의 선전이 개혁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와 노래와 연극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라는 인간상을 개혁적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뒤집을 수 있을까.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상의 관습적 사고가 결국 시대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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