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노무현 이야기

노무현과 계몽주의

by 격암(강국진) 2010. 1. 25.

2010.1.25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이 계몽주의의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너무 객관적으로 옳은 말로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했다는 거지요. 인간의 이성을 높이 평가하는 계몽주의는 사람들에게 합리적이 되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다보면 모든 것을 객관화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모든게 인간을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인간들이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중에는 이성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부 줄을 서면 빨리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줄을 안서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결국 모두에게 악몽같은 현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성과 논리가 세상을 채우면 사람들은 갑갑하게 느낍니다.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살기가 힘듭니다. 이것은 똑똑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였던 개혁당에서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보면 이것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의 인터넷에 의한 다수결투표로 일을 결정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사건건 다수결로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모든 사람이 모든 사안에 대해서 공부하고 투표에 참여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얼마나 성가시고 비효율적인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어느정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너무 많은 이성을 요구하게 됩니다. 

 

노무현의 비판자들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 종류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움직이려면 역시 권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역시 잘난놈과 못난놈으로 나뉘어지며 잘난놈들이 사회를 잘 장악하는 것이 사회의 기강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렇지요. 

 

제가 약간 비판적인 어조로 쓰긴 했습니다만 모든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움직일것을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현실의 한국사회에서 문제인것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따라서 권위주의와 감상에 기대는 낭만주의가 사회적 안정에 어느정도 기여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현 대통령인 이명박대통령은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정도 낯뜨거운 쇼를 잘 연출하며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서 논리와 증거는 번번히 뒤로 밀리고 일관성따위는 어딘가에서 실종되어 버리고 맙니다. 

 

노무현을 비판하는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정책을 실시하면 한국사회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사회가 바뀌어 간다는 계산을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정책도 노무현이 실시할 때와 박정희나 이명박이 실시할 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독일의 지하철을 그대로 중국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해도 중국에서 똑같이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인간으로 이뤄져 있으며 따라서 특정한 정책의 실행이전에 한국 사회의 체질과 관습의 개선이 보다 중요한 일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나 국회에서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절차상으로는 옳지만 그것이 저소득계층에게 잔혹한 일이 될수 있어 보인다고 해 봅시다. 그걸 막기 위해 만약 힘을 쓴다면 그것이 성공해도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관행을 남기게 됩니다.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세력구도를 보았을 때 그것을 시도했다고 해도 성공했을런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탄핵의 마지막까지 갔습니다. 이명박정권 탄생이후에 발생한 여러가지 일들 즉 광우병파동, 용산참사, 독도 발언, 4대강에 관련한 땅투기 의혹등 여러가지 일중 하나만 있었어도 노무현 정부는 무력화되었을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계몽주의의 함정에 빠졌으며 능력이 한계가 있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비판을 씁슬한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한국 시민들이 그만큼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장통 나가서 손잡아 주고 나서 그 재래시장 없애버리는 앞뒤가 안맞는 일을 해도 국민들은 모른다는 식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의 마지막 무렵에 지인들에게 정치보다는 책을 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정치적 투쟁만으로는 한국은 바뀌지 않으며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신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싶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