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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수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시각에 대해서

by 격암(강국진) 2009. 6. 24.

현대수학과 과학은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플라톤적인 사고의 연장에서 태어났다. 서구 과학의 강점은 표준화와 엄밀성에서 나온다. 즉 1+1=2라는 수식은 언제 어디서나 참이다. 이렇게밀화되고 시공을 초월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을 쉽게 축적할수 있다. 

 

우리가 여러개의 부품으로 로켓이나 컴퓨터 같은 복잡한 기계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의 부품만 고장나도 이 기계가 서버린다고 할때 각자의 부품이 매우 정밀하고 확실하지 않다면 이런 기계를 만들수 없을 것이다. 현대과학이나 수학은 이런 것이다. 작은 증거와 논리를 엄밀하게 갈고 닦아서 다른 사람도 가져다 쓸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혼자힘으로는 이룩하기 어려운 엄청난 논리와 증거의 건축물을 현대수학이나 과학에서는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약간 수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하나의 부품이 불량일 확율이 1/2이라면 부품 2개로 이뤄진 기계가 작동할 확율은 얼마나 될까

 

1/2*1/2 = 1/4다.

 

그럼 부품 10개로 이뤄진 기계가 작동활 확율은 어떤가. 답은 1/1024다. 즉 하나의 부품이 불량일 확율이 1/2이라면 부품10개로 이뤄진 기계는 천개중에 하나 정도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인문학적인 논의를 생각해 보자. 즉 수학적 엄밀성은 없이 말로 어떤 것들을 증명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누가 왜 한국사람들은 슈퍼맨이란 영화를 좋아하는가에 대해 설명을 시도 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문장들로 이뤄져 있고 문장은 단어들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단어와 문장들은 그뜻이 중의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꼭맞지 않는 비유가 등장하거나 틀린 논리가 끼어들 확율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위의 결과를 생각해 보라. 누가 장황하게 한두페이지에 걸쳐 수학적 엄밀성없이 떠드는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을 확율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도대체 문제의 시작과 결론사이에는 얼마나 튼튼한 논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유명한 3단 논법도 오류가 쉽게 발생한다. 삼단논법은 이런것이다.

 

A는 B다.

B는 C다

따라서 A는 C다.

 

그렇다면 다음의 논리를 보라.

 

그녀는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형용사이다.

따라서 그녀는 형용사이다.

 

말이 되는가? 어려운 책들이 상당부분 외래어를 번역한 애매한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논리가 춤을 춰서 결론과 시작이 아무 관계없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적어도 그것이 제대로된 증명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은 수학적 엄밀성을 항상 가질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즉 우선 어쩔수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적 정의와 표준화는 나름의 문제성을 가진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엄밀히 정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수 있고 어떤 것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아이스크림의 맛이나 무지개를 본 아이의 마음을 수학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한 인간은 복잡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인데 계량경제학이나 수학에서 처럼 열사람이 있다라고 말할때 모든 인간은 그저 같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뭔가 중대한 것을 놓치는 오류를 범한다. 노자에서 말하듯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즉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고 정해진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서양의 수학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엄밀성의 소중함이 경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소통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 공과 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규칙을 엄밀하게 지키지 않는 문제를 만든다. 왜냐면 개념이 항상 불분명하여 사고 방식이 복잡한 문제에 다다르면 엉터리 결론을 만들어 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회의를 하다가 반론을 당하면 난데 없이 버릇이 없다던가 여자가 옷차림이 어떻다던가 하는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약속은 쉽사리 깨어진다. 

 

한국 사회가 변화를 모색하자면 한국인들이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 우리는 이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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