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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유가와 노장, 합리주의와 회의론 그리고 한국

by 격암(강국진) 2009. 9. 6.

동양에서 어떤 사람이 명예나 돈을 가지려고 노력하다 지쳐있으면 흔히 노장사상이 동원된다. 노장사상은 세상만물이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으며 인위적인 노력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 노력은 오히려 자기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와 하나가 되라고 하는데 이 도라는게 말하자면 거대한 질서고 정의되지 않는 진실이다. 

 

반면에 누가 쳐져서 아무런 뜻이 없고 행동거지가 올바르지 않으면 우리는 유가사상을 동원한다. 유가사상은 인간의 도리가 무엇이고 인간이 해야할일이 무엇이며 세상을 나아가 개혁하라고 말하고 있다. 일단 공자가 그런 사람이다. 애매한 것은 논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최대한 명철하고 논리적으로 세상을 보려는 합리주의가 유가사상이다. 

 

이러한 노장과 유가사상의 공존과 대조는 시대적 변화와 지역적 차이, 개인적 차이에 따라 균형을 맞춰주는 두가지 방식을 제공한다. 너무 인위적인것이 지나치고 삶이 견디기 어려우면 노장이 도와주고 게을러지지 말라고 채찍질할때는 유가가 등장한다.

 

비슷한 철학적 태도는 유럽에도 있었다. 버틀란트 러셀은 철학사를 쓰면서 유럽의 철학사는 자유와 질서 사이를 반복하는 것같다라고 말했다. 자유를 강조하는 사상은 회의론적 시각으로 세상에는 진리란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물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소피스트들이 이런 태도를 가졌는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함께그래도 진리는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위 이데아론이다. 

 

진리가 있다. 신도 하나뿐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예를 강조하는 유가를 연상시키며 유럽의 중세시대를 연상시킨다. 과학적 증거도 없는 신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논증으로 중세유럽은 바빴다. 신에게서 탈출하여 인간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근대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같은 것이다.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이 들어가 있을 뿐이다. 

 

노장사상은 실존주의와 다르지만 어울리는 경향이 있고 포스트모더니즘도 그런 것같다. 어떤 거대담론적인 사상에 의해 인간이 전체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싫어하는 그모습은 인위적인 것은 결국 이루는 것이 없이 몸을 망칠뿐이라는 노장사상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역사상 노장사상이 집권자의 논리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세상에 존재하는 독을 해독하는 역할을 할수는 있어도 세상을 진정으로 개혁하는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합리주의가 지나쳐서 형식의 늪에 빠진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대중은 합리주의적 정신이 부족하다. 미국에서는 터무니 없는 소송으로 법이 비웃음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고무줄처럼 맘대로 늘어지는 법처리를 한다. 인간의 평등개념도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 한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에 빠져드는 것은 사막에서 스키선수 흉내내는 꼴이 될수가 있다. 풍토가 다른데 어떻게 처방이 같을 것인가. 

 

한국사회가 필요한 사상적 문화적 집대성이 일어나야 한국은 문화적 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다. 다만 이에 필요한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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