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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깨달음의 역사

by 격암(강국진) 2009. 11. 4.

9.11.4

지식이란 모두가 나눌 수 있는 것이며 자동차나 자전거처럼 그 원리를 알지 못해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일식이 몇월몇일에 일어난다라는 것을 알면 일식을 예측하는 원리따위는 몰라도 일식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간단한 원리뿐만이 아니라 실은 복잡한 과학적 주장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통 지혜니 깨달음이니 창의력이니 하고 부르는 것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비약적 상상과 안착을 통해서만 얻을 수가 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그의 책 과정과 현실에서 그것을 다음단계로 떠오르는 비행에 비유하였다. 언어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 논리나 정의 이전에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할수 있는 것, 말로 표현할수 있는 것 너머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느끼는 것은 진짜로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이나 논리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마치 더러운 손으로 깨끗한 옷들을 어지럽히는 것처럼 세상의 어떤 말이나 행동을 듣고 봐도 그 생각때문에 그것들을 단순한 것으로 자기가 서있는 차원의 것으로 격하시키고 만다. 그들은 창백한 진공으로 뛰어오를 상상력이 없거나 용기가 없다. 따라서 괴롭다고 하면서도 답을 거부한다. 

 

정의할 수없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도 소통될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실제로 그 사람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모순된 어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혜의 사람을 보려면 자기를 비우고 차분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선입견을 없애고 그냥 봐야 한다.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 온 많은 종교의식은 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제대로 일때도 있고 엉터리로 겉모양만 흉내내는 것에 그칠 때도 있다. 북미 인디언들은 요즘 우리가 마약으로 여기는 약물을 먹고 밤을 지새우는 예식을 가졌다고 한다. 이 약물은 환각을 만들어 내고, 요즘말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상태와 비슷한 것을 임시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듣고 이것이 마약먹고 미친 사람들의 파티라고만 생각할것이 아니다. 정신분열증상태는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판단기준이 고장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미친 것으로 여겨지는 부조화스러운 정신상태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제한된 조건아래에서 이것은 정신적 비약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랜동안 명상에 잠긴다던가 조용한 공간에서 오랜동안 머무르는 것도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모순된 어법은 논리적으로 보면 말이 안된다. A는 B이기도 하고 B가 아니기도 하다는 식이다. 엄격한 정의에 따르면 B인것과 B가 아닌것은 동시에 될 수가 없다. 새는 초롱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이런 화법을 쓰는 사람은 둘중의 하나다. 자기도 그게 뭔지 모르면서 어디서 그런 어법을 듣고 흉내내는 것이거나 정신적 비약을 촉구하는것이다. 

 

그럼 이 정신적 비약이니 깨달음이니 하는게 뭔가. 그걸 추구했던 북미인디언들이 멸종한거 보니 별거 아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있을수 있다. 물론 누적된 지식으로 성장시킨 문화와 과학의 힘도 강력하다. 하지만 이 정신적 비약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 둘은 서로 깊은 관련도 있다. 정신적 비약을 이룬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세상일에서 여러가지 결정을 잘할 수가 있다. 이것은 진짜와 그림자를 알고 있는 사람의 차이다. 그림자를 진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똑똑한줄 알지만 엉터리 결정을 내리거나 아예 기계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반복하는 것이외에는 전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가치판단이 안된다.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도 살 수는 있다. 왜냐면 우리는 문화와 관습이라는게 있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들에 의해 정착되어지고 발전되어진 문화와 관습은 다시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쓸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문화와 관습이 답을 주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지혜로운 행동이고 선택일 것이다.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이상 그것들이 유효하지 않아질 때까지는 말이다. 기존의 시스템에 너무 안주해서 틀을 깨는 깨달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점차로 무력해진다.

 

깨달은 사람들은 그 수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항상 많이 있는 것도 아닌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문화와 관습은 대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 노장에서 무위로 세상일을 한다던가 신인이 세상의 일을 다룬다는 말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럽의 성공은 그들의 과학적 지식의 발전이상으로 그 문화와 관습을 잘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들의 정신을 보존하고 널리 퍼뜨리는데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둘이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둘로 부르기 어렵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만으로 사회적 발전이나 국가규모의 성장이 있을수는 없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단순히 서구문화 즉 유럽문화의 승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실은 유럽문화와 아메리카 토속 인디언 문화의 잡종이 태어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즉 공식적 역사는 미국의 자유사상이 유럽에서 전해진것으로 말해지지만 그 자유사상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깨달음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접촉하면서 배운 거라는 주장이다. 소위 말하는 개척자정신은 실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말로 전해진게 아니다. 따라서 말과 물질로만 세상을 본 사람은 무식한 인디언이 유럽인에게 뭔가 엄청난 것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깨달음이 뭐라고 했던가.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을 윤리적 힘이라고 부른다. 이 윤리적 힘의 진짜 근원은 정신적 비약을 통해 말과 논리 이전에 있는 실체를 본 사람들의 행동과 말들이다. 부처가 그렇고 예수가 그렇고 소크라테스가 그렇다. 그들은 모두 책을 쓰지 않았다. 사실은 공자도 논어를 쓰지 않았다. 부처는 평생을 말하고 죽기전에 말한 것이 없다고 했다. 예수는 기도를 할 때는 다락방에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라고 했다. 

 

이 윤리적 힘을 포기하고 버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치명적으로 바보같은 결정들을 내리게 된다. 이 세상을 언어와 논리와 지식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럴게 될 수 있다. 한국에는 한국의 전통 윤리가 있다. 그것은 분명 낡고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윤리적 힘따위를 믿지 않고 그걸 전부 버리고 서구 사회의 지식만 수입하면 어떻게 될까? 윤리적 붕괴가 온다. 결정장애가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제일 이해되기 쉬운 것들이 바로 논리적인 언어들이다. 그것들은 물론 그것대로 매우 중요한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보는 사람들은 사회를 붕괴시키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가치판단 능력의 붕괴가 일어난다. 말이 넘쳐나는 가운데 어린 아이도 바보짓이라고 할 것을 어른들이 행한다. 이해하기 쉬운 과학기술문명은 사실 오늘날 윤리적인 힘이 굳건하면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바로 윤리의 힘이다. 윤리의 힘이란 우리가 보통 '윤리'라고 말하는 전통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동시에 깨달은 선현들이 남긴 쓰레기 같은 것이다. 천년전에 선인이 비올 때 도롱이 들고 나가더라 했더니 천년동안 무지한 사람들이 보고 따라하는 것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 소통하기 쉬운,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학기술적 지식은 획득하기 쉬운 것이다. 사회적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돈이나 그런 지식이 아니다. 그 사회의 정신적 내면적 힘이다. 모두가 깨달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세상은 물질이나 언어 이전의 것이 있다는 것,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현실의 일부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애써 잊어버리려고 하는 원초적 불안감은 바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없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무수한 것을 가지고 배우고 머리속에 집어넣어도 진짜로는 정신적 가난뱅이고 아는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당장 다음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살던대로 살고 남들이 하는대로 살뿐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다른 사람도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는 걸 안다. 그러니 우리는 불안할수 밖에 없다. 세상을 바꿔 온 것은 지식이 아니다. 깨달음이다라고 말하면 그건 틀리다. 그 반대도 틀리다. 지식과 깨달음은 둘이지만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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