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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역사에 대한 생각

한국을 보는 방식

by 격암(강국진) 2009. 8. 1.

2009.8.1

오늘은 한 철학교수의 강의를 녹음한 것을 들었다. 그는 그리스에서 왜 철학이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의 환경 특히 항해술이 발전하는 환경을 강조하고 있었다. 나는 그 교수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매우 재미있게 들었지만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서 강의에 집중하는데 조금 방해를 받았다.

 

나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과 인문계 사람과 종종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와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다. 물론 과학의 역사, 수학의 역사 그리고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들이 정치적인 변화와 어떻게 연관되었는가 하는 문제따위는 매우 중요하고 재미있는 주제다. 예를 들어 보어나 아인쉬타인이나 하이델베르크 같은 사람의 개인적 성격은 물론 정치성향, 생활태도 같은 이야기는 듣기에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수학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인간적 관련성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참인것은 지금도 참이고 천년전에도 참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참이고 미국에서도 참이고 내가 말해도 노벨상수상자가 말해도 참이다. 얼마나 엄밀하게 이것이 진리인가는 논해볼 수 있는 문제지만 기본적으로는 과학과 수학은 절대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수학을 배우면서는 이 수학이 왜 이렇게 발전되었는가, 이 수학공식을 누가 어디서 증명했는가, 이 수학자는 사회적 영향력이 있었나 없었나 따위는 기본적으로 핵심이 아니다. 이것은 인문적 분야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거기에서는 같은 문장이라도 누가 어떤 문맥에서 이야기했는가 언제 어디서 이야기했는가에 따라 사람들은 그걸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사물을 기술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앞서의 철학교수는 분명히 철학에 있어서 역사적 사회적 문맥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써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쪽에 시간을 들이면 그리스철학의 논리자체를 이야기할 시간은 줄어든다. 이야기는 역사가 그러하듯 항상 공평한 사물의 기술이 아니라 선택적 기술이다. 

 

우리가 어떤 것 예를 들어 한 물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물병에 대한 이야기, 정보는 끝이 없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건 그것은 가치에 대한 선택, 즉 그것이 중요하다는 가정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 물병이 만들어진 역사적 과정을 설명한다거나 이 물병이 다른 가구들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가를 설명한다면 그것은 다시 말해 그런 정보가 중요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우리는 물병자체의 물리적 특징 즉 색깔, 모양, 무게, 재질 등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수도 있다.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므로 서로 관련성이 있다고 하지만 역시 말을 하는 방식은 물병에게 뭐가 중요한가를 보여주게 된다. 

 

이제까지 쓴 것은 조금 추상적이었다. 그럼 아주 구체적인 것으로 가보자. 예를 들어 딸아이가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해보자. 그 부모는 딸아이에게 그 남자는 집안이 어떤지, 그 집안은 대대로 뭘한 집안인지, 혹은 그 남자친구가 교우관계는 어떠한지, 아는 사람은 많이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해 묻기에 바뻐서인지 그 남자가 상냥한지 성실한지 어떤 것을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며 키는 얼마고 건강한지따위는 물을 시간이 없다면 과연 이 부모는 옳게 질문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예도 있다.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갔는데 나오는 질문이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전라도 사람인지 경상도 사람인지 아버지 월급은 얼마나 되는지만 묻는다면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거나 지역감정에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 그리고 가난뱅이 아버지를 둔 사람은 분노할 것이다. 판단기준이 어떤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 이 글의 제목을 한국을 보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과학도인 내가 보기에는 한국에서 한국을 말할 때 지나치리만큼 역사적 맥락과 국제적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란 어떤 나라인가를 말할 때 우리는 줄줄이 역사를 말할 수 있다. 한국이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유럽등과 어떤 정치 사회적 영향을 주고 받는가에 대해서도 말할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 이상이 되면 그건 마치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집안보고 판단하고 아는 사람보고 판단하는 것과 같은 태도가 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도 중요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걸 넘어서 한국 그 자체를 직접 바라보는 것에 우리는 너무 게으른 것이 아닐까?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 과거에 어떤가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때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역사와 국제관계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우리는 그런 걸 모든 것의 이유로 삼고 핑게를 대기 쉽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러저러한 심성을 가지는가. 역사가 이러저러하기 때문이다. 미국때문이다. 일본때문이다. 중국때문이다. 지극히 수동적인 관점이 아닌가? 이거 범죄자 아들은 역시 어쩔수 없다던가 하는 소리나 힘쎈 사람에게 아부하면서 살면서 나는 저 힘쎈 사람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렇게 산다며 핑게대는 소리와 매우 비슷하게 들리지 않는가? 

 

한국을 역사적 국제적 관계의 틀에서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수학적 과학적 시각에서 한국의 모습자체를 바라보려고 할 때 우리는 보다 스스로에 대해서 책임지는 자세가 되지 않을까? 한국이란 결국 한국인의 총합이며 다른 나라, 과거의 역사가 어찌되건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스스로에 대해 책임이 있다. 바로 그 책임감을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는 자세가 되지 않을까? 한국이란 결국 한국인들 즉 우리를 말한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우리 동네와 우리지역과 우리나라에 대해 전적인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한국을 과학적으로 보자. 전국의 인구분포가 어찌되는지, 경제활동은 어찌되는지, 범죄율은 어떻고 학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때때로는 의식적으로 과거가 어찌되었다던가 다른 나라가 어찌되었다던가 다른 지역이 어떻다던가 하는 소리말고 지금의 한국을 있는 그대로 보고 우리가 사는 지역을 보고 우리동네를 보자. 

 

우리가 놓치고 있는게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마땅히 봐야했는데 보지 못했던 뭔가가 거기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수출만 걱정하지 말고 내수를 보게 된다던가, 서울만 보지 않고 지방도 보이게 되지 않을까? 어느 나라보다 가난하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한국인의 삶의 질을 좀더 크게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남의 문화보다 우리 문화, 우리가 가진 것에 좀더 신경쓰게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너는 누구냐고 물었을때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집안은 어떤 집안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 누가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우리는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 존재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해서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인가. 우리는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인가? 고조선이래 빛나는 역사를 만들어온 나라로? 아니면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 자신에대해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인가이거 중요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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