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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역사에 대한 생각

전통적 인간형의 발전적 계승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09. 12. 1.

09.12.1

머릿말

이 시대 한국의 최대과제는 차세대 산업의 발굴도 아니고 취업이나 교육문제도 아니다. 한국의 위기는 가치판단의 붕괴에서 온다. 우리는 가치판단의 문제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있다. 한국은 이제 가난한 개발도상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복사를 통해, 남이 내린 가치판단을 단순히 따라해서 전진할 수 없다. 다른 선진국과 우리와의 차이가 작아질 수록 우리의 변화방향은 오히려 그들과는 달라져야만 한다. 차이가 클 때는 선진국의 보편적 상황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발전일 수 있으나 차이가 작아지면 한국의 역사, 지리, 정치, 자원등에 있어서의 특수성이 부각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선진국사이에서 한국만의 고유한 자리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또다른 미국이나 일본이나 영국은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은 미국에게 좋은 것이 한국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 유럽과 일본에서 옳은 것이 한국에서 옳은 것이라고 말하기 힘든 시대다. 한국은 가난했던 시절 단순히 수입을 증대시키고 선진국의 것을 모방하는데 전력하는 것으로 성장해온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시절 군대식 권위주의가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었다. 이제 여기서 벗어나서 주체적인 가치판단을 내려야 할때다. 그래서 환경문제, 세계평화문제, 교육문제, 인권문제등에 있어서 우리의 가치판단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서구 문명의 특수성

서구 문명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므로 그 보편성만이 크게 부각되어 왔지만 나는 서구 문명이 세계화하는데 한계를 가지는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서구 문명의 과학이 아니라 윤리학에 대한 논의를 주목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서구에서 신학에 기반하지 않은 윤리적 명제는 주로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되거나 칸트의 정언명령식으로 정당화 되는 것이다.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던가 보편타당한 입법의 원리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방향의 윤리적 논의를 따르던 이런 논의는 개개인이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는 윤리와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구체성이 크게 부족하다. 그리고 신학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 서구문명은 그것에 대해 그저 사적인 일에 대한 추구는 자유라고 말하고 말뿐이다. 

 

이것은 추상적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서구 문명은 윤리적, 가치관적으로 허술하다. 그들은 결국 쾌락의 추구를 쫒는 가치관밖에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서구문명을 받아들일 때 전통적 가치관과 윤리가 약화되는 기타 다른 지역에서는 이 문제가 심각해 질수 있다. 서구문명은 너희들의 전통문명은 야만이라고 하고 이성적 합리주의로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기독교적 윤리전통이 없는 사회가 과학적 합리주의만을 받아들여 윤리적 진공상태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것같지만 그것이 서구 이외에서 성공적으로 이식된 예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선진국이 된 비기독교전통의 나라가 있는가? 오직 일본이 있을 뿐이며 일본을 제외하면 그나마 한국정도가 유일하다. 싱가폴, 홍콩등은 사실 그 규모가 작아서 강력한 예로 들기 어려우며 대만도 선진국이라 하기 어렵고 한국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한국도 물론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일본이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일까? 여기에도 의혹은 많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는 길게 논의하면 복잡해지기만 할뿐이므로 그냥 일본이외에는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경우가 없었다는 점, 특히 식민지를 가지지 않았던 나라라는 조건까지 붙이면 아무 나라도 없다는 점을 말하고 이 부분을 정리하도록 하자. 

 

중심문화의 부재

한 국민의 생활 양식은 당연히 수없이 많은 부분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유기물같은 것이다. 우리는 생활의 각부분을 자동차 부품을 갈아끼우듯 다른 곳을 그대로 유지시킨채 그곳만 변화시킬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서로 얽혀있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는 지역개발문제와 충돌하는데 이때 어떤 조화가 가능할 것인가. 도시 미화내지 개발 과제는 저소득층의 생활변화와 부딛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부동산문제는 교육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식이다.  


한국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의 주장이 종종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은 그들이 종합적 변화를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생활의 한쪽면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너무 쉽게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육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현실을 보면 취업의 문이 대단히 좁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한 요구조건이 높아져만 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이런 가운데 경쟁의 나쁨을 말하는 것이 어느정도 공허하게 들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진보주의자가 변화를 원한다면 그들은 일종의 종합적 가치판단의 꾸러미를 한꺼번에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문화의 형태로 국민에게 보급하고 그 현실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는 바로 가치판단의 꾸러미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상충하는 상황에서 답을 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를 생각해 보면 이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사무라이는 여러가지 문화활동을 통해 정리되어 하나의 종합적 인격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어느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예를 들어 이직이라던가 사교관계에서 어떤 결단의 순간이 있을 때 그는 사무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것인가라고 질문함으로서 하나의 답안의 예를 얻을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종합적 가치판단의 꾸러미를 제시한다는 것의 예이다. 이런 예로는 물론 예수나 부처의 삶을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종교의 예도 들 수가 있다. 

 

우리의 진보도 그 핵심적 과업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지 않을 때 제 아무리 길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수치를 들어 설득에 나선다고 해도 개혁은 어렵다. 변화도 어렵지만 모처럼 변화가 일어나도 반발이 일어나서 다시 제자리가 되거나 오히려 전보다 더 악화된 것처럼 되기 쉽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진보가 그런 종합적 인격의 모범을 제시할수 있는가, 제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의문시된다. 

 

맺는말

현재는 한국의 중심문화가 약화된 채로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정체성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노동자를 다량으로 들여올 경우 한국은 다민족 국가로 이스라엘의 민족분쟁을 재현하는 난장판 국가가 되어 해결불능의 상황으로 갈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 보수층은 경제논리로 거부하고 진보측은 극우적 민족주의 논리로 비판하거나 인권의 차원에서 그런 우려를 눌러야 한다고만 말하는 것같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부족하니 천만명쯤 들여오자고 말하는 것이 흔한 보수의 태도라면 다문화 정책만 강조하면서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만 말하는 것이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 어디서도 앞에서 말한 한국의 문화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전통의 인간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종합적 가치판단의 꾸러미가 될것이다. 그것이 전통의 계승이기 때문에 그것에 유교적 불교적 도가적 냄새가 스며드는 것은 피할수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선비문화의 발전적 계승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시대의 인간형이 그것인만큼 우리는 그것의 문제점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개선하고 재해석하여 발전적으로 계승하려고 해야지 그걸 완전히 거부하고 무에서 시작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우리도 개방하고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서양의 문물을 들여오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점이 다양한 이유로 거부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사회의 불안을 증폭시키고만 있다. 우리는 결코 영국신사나 서부개척자상을 흉내낼 수 없다. 문화에는 비약이 없다. 여러세대가 가진 모든 관습과 가치관을 한꺼번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기독교가 크게 번성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자들은 서구적 인간관에만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인간관은 사실 기독교를 제외했을때 가치판단의 측면에서 매우 빈약한 것이다.  

 

미시적인 곳에서의 개혁이라는 이야기가 흔히들 나오고 있지만 미시적인 개혁이 중요할수록 전반적인 개혁의 그림이 필요하다. 그 전반적인 개혁의 그림이란 정책적 요소 이전에 종합적 가치판단의 기준점이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인간형의 제시다.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세세한 각자의 일에서 논리적으로 시비를 따지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으나 이런 방향에서의 노력이 없을 때 그런 노력들은 효과를 보기 힘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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