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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역사에 대한 생각

김용옥의 동아시아 30년사를 다시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1. 9. 30.

지난 밤에는 동아시아 30년사에 대한 김용옥의 강의를 유튜브에서 다시 한번 봤다. (http://www.youtube.com/watch?v=R8z4CUFT2uc) 기억력이 별로인 나는 전에 본거라도 다시 재미있게 본다. 재미있었기에 여기 기록으로 남겨 본다. 


김용옥의 강의는 유익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좀 비판적인 시각으로 봤다. 긍정을 일단 인정하고 부족한 것 다른 것을 본달까.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한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거기에는 주체로서, 주인으로서의 시각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역사가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떻게 흘러갔다라는 것을 인과론적인 고리로 나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인과론의 고리가 지나치게 외부적 환경적이어서만은 안될것이라는 생각이다. 즉 병이났었다고 할때 '그때 독감이 아주 유행했었다'라고 말할수도있고 '내가 몸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다'라고 말할수도 있는데 후자에 대한 강조가 작았다는 이야기다. 


남북으로 갈라져서 한민족이 싸운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수 있고 그런 것들이 이유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남의 편가름이나 이념싸움에 말려들어 전쟁이 되고 만것에 대해 좀 더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반성은 물론 우리는 원래 안되는 사람이다라는 식의 뉴라이트식 반성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되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일을 겪었으니 이제 하나 되는 힘, 가랑잎처럼 수동적으로 역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길을 선택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힘을 길러야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반성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남북한을 하나로 하려다가 순국한 김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을 이야기한 김구가 더욱 위대하게 생각된다. 김용옥의 설명이 틀렸다기 보다는, 미국이나 일본 중국의 잘못이 없다기 보다는, 밀려다니다가 결국 동존상잔의 전쟁을 대규모로 치루게 된 것까지 모두 남탓만 하고 있어서는 미래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묘한 것이다. 자기비하적 역사관을 치유하는 시도가 더 깊은 곳에 가면 자기를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게 되는 효과가 있고 자기 반성은 자칫 뉴라이트식의 자기비하로 가기 쉽다. 그걸 구분해서 실행해야 할것이다. 


두번째로는 나는 역사란 많이 알수록 좋고 자세히 많은 것을 들어둘 가치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거기에 빠지면 안되고 다들은 다음에는 좀 잊어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멋진 역사라고 해도 그건 사실 엄격히 말하면 일이 일어난 이후에 입맛대로 다듬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도올 스스로가 강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다. 역사는 진실의 작은 일면이지 결코 진실의 전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그럴듯하면 할수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굳게 믿으면 바보가 된다. 


역사를 굳게 믿는다는 것은 그 역사가 기술하는 역사의 법칙, 역사의 인과관계를 믿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아 그래서 이러저러하게 일들이 일어났구나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건 우리의 시야를 막는다. 역사란 그런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도 인간이 묘사할수 없을 만큼 복잡한 과정이다. 마르크스가 주로 경제 사회적 관계로 역사의 발전법칙을 말할때 그것을 굳게 믿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상상할수도 없었던 끔찍한 일들을 했다. 사상적 창시자로서 마르크스는 자기가 말한 것 이외의 것도 잊지 않았겠지만 그를 믿었던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말만 너무나 믿어서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유시장주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는 유익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노예가 된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고 좋은 놈은 좋은 놈이라는 나 개인의 직관적 관점이 점점 작아진다. 내가 늘상하는 말이지만 전두환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계속 듣고 있으면 거기에 거짓이 없어도 전두환이 잘못한 일이 점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두환을 중심에 놓은 역사라는 좁은 시각으로 점점 세상을 보게 되어 안보는 곳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이 안보이게 되기 때문이고 전두환 이라는 일개개인의 고뇌와 좌절은 잘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훌룡한 역사를 말한 사람은 그 관중을 노예로 만든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는 관객을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이게 맞습니다.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너무 강조하면 좋지 않다. 하나의 역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누가 누군가를 세뇌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 김용옥강의는 이명박 시대가 오기전에 했던 거라는 것이다. 김용옥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차있다. 나는 우리가 하나가 되야 한다는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없었기에 나만 좀 더 편해보자는 사람들의 이기심, 배금주의가 억눌러지지 못했고 결국 이명박시대가 온것이 아닌가한다. 그게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남과 북을 가르는 혹은 보수와 진보진영을 가르는 선을 긋고 상대편이 나빠서 이세상이 이모양이꼴이라는 식의 수준낮은 분열의 이데올로기로 살아가는 것을 그만두고 모두가 함께 할수 있는 통합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분열과 무책임의 역사는 지겹게 망할때까지 계속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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