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18
지난주에는 집안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래서 3명의 외가 친가쪽 중3 아이들을 만났고 한 아이와는 꽤 길게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었다. 그 아이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준비중이라는데 고민이 있었다. 본인은 이과에 관심이 있는것같고 소질도 있는 것같은데 외고에 들어가면 인문계로 미래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니 한국교육이 정말 몰상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문과 이과 구분이란 시대에 뒤진 것이며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 만의 악습이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대학들도 학과간의 구분의 없어지는 판국이며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과학기술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왜 문과 이과 같은 것을 구분해야 할까?
설사 그런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한국 고등학교는 아주 묘한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간다는 외고, 자사고, 과학고 영재고등의 학교가 상당히 숫자가 많아져서 실질적으로 고교평준화가 깨지고 명문고 시스템이 들어선것이나 마찬가지다. 얼마전에는 고려대에서 일반고 학생보다 외고학생을 크게 우대해서 사회문제화 된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특수고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과연 어떤 학생들일까? 우열반 시스템은 바보를 양산할 뿐이다. 실질적으로는 영재가 아니라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라는 것이 내가 들은 이야기다. 똑똑한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는가. 어려운 문제를 내서 시험을 보게 하는데 그 어려운 문제라는게 중학생아이들에게 고등학교과정에서 배울만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열반 상황에서 우등생그룹에 끼고 싶은 학생들은 고교과정공부를 미리해야 한다.
전에도 한국에 아인쉬타인이 태어나면 대학에 못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더하다. 선행학습같은게 더욱 중요하다면 관심사에 상관없이 선행학습하는 단순 공부벌레만 시험제도를 통과할 것이다. 영재보다는 비싼 과외를 따로 받는 아이들에게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시스템은 진정한 영재를 죽인다. 진정한 영재는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폭넓은 공부를 할 필요가 있지 초등학교부터 시스템의 노예로 교과서만 봐서 성장할리가 없다. 자기 관심사를 쫒아갈 시간이 없는 것이다.
시스템의 폐해중의 하나가 바로 위에서 말한 문과 이과 시스템이다. 여기 한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미리 과학고 입시같은 것을 준비한 학생이 아니니 이 학생에게 들어갈만한 우등생학교는 외국어학교밖에 없다. 그런데 외고는 문과를 가는 학생이 가는 것이다. 이제 이학생은 열등생사이에 끼면 안된다는 부모들의 조언에 따라 문과로 가기로 일찌감치 결정을 해야 한다. 안그래도 입시때문에 자기의 소질과 관심사를 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결정도 중3때 내려야 한다. 이 학생이 큐리부인이라면 우리는 큐리부인을 문과로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특히 한국에서 영재교육을 믿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한국의 엘리트 사회를 어느정도 알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한국의 초 엘리트로 한국에서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다는 식의 건방을 떠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지적엘리트라는 대학교수사회의 수준을 나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영재고니 민사고니 하지만 거기에 한국 최고의 지성이 가서 고등학생을 가르칠리는 없다. 솔직히 말해 한국최고의 지성이 간다고 해도 나는 영재교육에 회의를 느끼는데 세계의 규모에서 보면 한국 학계의 수준은 여전히 초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등학교때 까지 죽자고 공부하다가 대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요즘은 대학생들이 취업공부한다고 바쁘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런걸 제외하고 대학본연의 학문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왜 그럴까? 많은 예외적인 경우와 단순화로 인한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한마디로 한국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가르칠것이 없어서다. 여기에는 대학생들이 입시공부가 아닌 학문을 하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라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한국 학계의 수준이 높지 않은 것이 큰 이유다.
대학생은 왜 노는가. 대학교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현실에 크게 소용이 되지도 않아보이고 따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취업에 필요하니까 대학간판은 따러왔지만 교수들은 자기 연구가 왜 재미있는지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열심히 하겠는가. 영어공부나 하는 것이 현실에서 더 도움이 되니까 영어공부만 하는것이다. 대학생들은 게으른 바보가 되어 취업때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고등학교 비평준화 시스템은 이런 상황을 고교입시후로 바꾼다. 똑똑한 아이들이 죽자고 공부해서 고등학교과정까지 중학교에서 끝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들은 도대체 고등학교 때 뭘 배울까? 고교수준을 넘어서는 대학수준의 강의? 한국대학교수도 잘못하는 것을 명문고 선생님들이 잘한다고? 기자재만 좋고 건물만 좋으면 교육이 되나.
현실은 둘중의 하나 혹은 둘다다. 하나는 이 아이들은 입시기계가 되는 것이다. 미리 대학입시까지 준비 다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서 대학입시가 코앞에 있는데 입시관련공부말고 다른것을 하기에는 심적인 여유가 없다. 그러니까 이미 공부한 것을 계속 반복해서 문제푸는 기계가 된다. 전에는 1분에 풀수 있엇던 수학문제를 30초에 푸는 것이 목표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앞의 단순노동자처럼 이들은 고교수준의 문제를 대학입시에 나올정도의 수준의 것을 풀고 또 푼다.
두번째로는 소위 특별한 교육이라는 것을 받는다. 이것은 일정부분 미국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일정부분은 올바른 영재교육이라고 믿어지는 것을 실시하는 것이다. 영어원서를 읽는다던가 토론회를 한다던가 취미활동반을 운영한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모른다. 미국이나 영국의 전통적 사립명문고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엄청난 지성인들에 의해 그 사회에 적응해서 교육방법을 짜낸 것이다. 그 사립명문고교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배끼는 것만으로 명문고교의 교육을 행할수 있다면 왜 전세계가 그러고 있지 않겠는가.
미국에서 달에다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올려 사람을 보냈다고 해서 한국의 비전문가들이 양철을 두들겨 대포비슷한 것을 흉내내서 만들고는 당신의 아이들을 거기에 넣어 달로 보내주겠다고 하면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을 거기에 넣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모든 종류의 영재학교는 이런 문제가 있다. 그 좋은 조건의 학교들은 실은 당신의 아이들을 실험재료로 삼기위해서 그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영재를 데려다가 자기들 멋대로 교육시켜서 잘되면 그 학교는 진정한 명문 교육기관으로 남지만 잘안되면 그만이다. 실험재료로서 실패한 아이들만 뒤에 남는다.
나는 포항공대 출신으로 이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몸으로 체험했다. 포항공대도 최초에는 소수영재학교로 시작했으며 이것은 대학이므로 학생들은 어느정도 성장해있고 교육자는 대학교수중에서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지성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명문고등학교라지만 그 고등학교의 선생님이며 그 커리큘럼 짜는 사람들, 그 고등학교에 투자되는 돈이 과연 포항공대 이상의 지성인들이 그 이상의 재원을 들여서 할수가 있을까? 대학교수가 관여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엄청난 위험도가 있다. 포항공대 학생들이 받았던 스트레스나 부작용의 정도보다 훨씬 커다란 스트레스와 부작용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해질 것이다.
과거 비평준화 시절의 명문고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그시절은 명문고를 졸업하고 명문대로 진학하면 미래가 결정되는 일종의 엘리트 코스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으며 과거의 명문고도 수십년의 전통을 통해 커리큘럼을 안정시킨 명문고지 지금처럼 급조하는 학교들이 아니다. 명문학교는 급조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에는 국제중이라는 것도 있다. 내가 여태 쓰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중학교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상상할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지성이 중학교에 취업해서 그들을 가르칠 것인가. 실험적 커리큘럼을 중학생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그들은 청소년기에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지금은 어떨지 모르나. 초기 포항공대는 20-25%정도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대학생은 그럴수 있는 나이고 그래도 된다. 대학교때 휴학하고 대학을 5-6년 다닌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학생이 그러면 어떨까?
한국의 학부형들은 상당수 이런 현실을 잘 모른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매우 위험한 베팅을 하면서 그 위험도를 모른다. 대학교수들은 상당수가 자녀들을 아예 미국학교로 보낸다. 그들은 세계를 알고 교육적 시야가 넓기에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부작용을 상당부분 해소할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그렇게 한다. 시대가 요청하는 교육에 대해 잘알지도 못하면서 실험적 커리큘럼에 아이들을 보내지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부모들은 한국에 가득차 있다.
요즘은 한국에서 체력도 인증제도가 등장했다고 들었다. 명문중,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서 일종의 인증을 받고 싶은 생각은 이해하며 그런 것이 전혀 의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짜 교육은 인증서를 받는것과는 조금 다른것이다. 나라에서는 좀 반대하지만 어린 나이라면 해볼만한 실험적 교육이란 존경할 만한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는것이다. 과외건 학교교육이건 심지어 부모라도 상관없다. 어린 나이일때는 길고 차분하게 소통할수 있는 인격자가 필요하다. 물론 명문중학교나 명문고등학교에 그런 선생님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시스템에 억눌려 학생이 망가질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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