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들/철학을 위한 여행

철학을 위한 여행 4 : 문명이란 무엇인가.

by 격암(강국진) 2009. 8. 18.

4.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엔진이 왜 중요한가 하는 거죠. 자동차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세상을 본다. 본래도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했지만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복잡한 수학계산을 하는 훈련을 받았다. 아주 길고 복잡한 계산을 손으로 해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쾌감, 그 사람만이 느끼는 느낌이 있다. 내가 했던 계산중에는 소위 레플리카 계산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계산일리야 없지만 이론 계산을 하는 사람들중에서도 당시에는 아주 지저분하고 고된 일이라고 말해지는 일이었다.

 

석사과정때의 일이 생각난다. 나는 6개월째 하나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계산은 물론 수학이므로 A = B 하는 식으로 나가는 것이지만 문제의 A가 한페이지도 넘는 것이다. 너무 길어서 특정부분을 a, b, c라고 별칭으로 불러서 줄이는데 계산은 너무 복잡해서 나는 나중에 알파벳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리스 문자도 쓰고 글자위에다가 점도 붙이고 일렁이는 선도 붙여서 써야 했다.

 

이렇게 복잡한 계산을 할 때는 두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직감이다. 또 하나는 길고 긴 계산을 해나갈 수 있는 계산 능력이다. 계산을 할 때 계산능력이 중요한거야 당연하게 들리지만 직감이 중요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먼저 복잡한 계산은 대개 어떤 그럴듯해 보이는 가정을 도입해야 할 때가 많다. 이것은 나중에 실험에 의해서 정당화되어야 하는 가정이다. 그렇지 않고 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종종 그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 가정이 뭔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수학으로 풀어서 알 수 있는게 아니다. 직관적으로 그걸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아주 복잡한 계산에서는 그것도 꽤 오래걸린다. 그러니 당시의 미숙했던 나의 경우처럼 하나의 가정을 세우고 문제를 풀어서 6개월을 푸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릴까 말까 하는 것이 복권을 사고서 복권이 당첨될것인가 말것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된다.

 

한동안 인공신경망의 학습문제에서 어떤 연구주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끝에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실은 이제 그 가정이 뭔지도 잊었다. 뒤에 나오지만 그 가정은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났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정을 도입했다. 지도교수는 나의 제안이 그럴듯하다고 믿었고 우리 모두는 이제 그 문제가 풀렸다고 믿었다. 우리는 심지어 독일의 학회에 가서 그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초록을 보내고 발표시간과 장소까지 받았다.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그 학회가 한 달이 안 남았던 어느날 나는 드디어 결론을 낼 수가 있었다. 나의 가정은 틀린 것이었고 지난 몇 달간의 계산은 헛수고였다. 나는 도저히 지도교수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학회발표는 어찌해야 할것인가하는 생각에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당시에는 학회발표가 대단한 일이었고 외국에 가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어서 없던 일로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교의 구석에 있는 맥주집으로 가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맥주를 혼자서 그 집의 2층에서 한동안 마셨다. 그곳에서는 아랫층이 내려다 보였다. 그런데 지도교수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그를 만나면 그는 나에게 어떻게 됬냐고 물을테고 나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곤란한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 나는 매우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도 뭔가를 하고 있다고 할 만한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빠져들어서 나도 모르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하나의 가정이 생각이 났다. 나는 그걸 생각해 내는 순간 이 문제가 풀렸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머리로 문제를 풀기시작했다. 실제로 그 문제는 일주일만에 그 가정에 기반해서 풀렸고 나는 그것을 독일에 가서 발표했다. 그날 지도교수는 2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만큼 세상을 본다. 요약이 50페이지나 80페이지쯤 되는 계산을 해서 그래프 하나를 그렸다고 하자. 이제 이 그래프는 그저 선하나가 아니다. 몇 개의 가정 그리고 수많은 논리적 계산을 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컴퓨터 모의실험을 해서 그 결과가 그 선과 정확히 일치할 때 우리는 커다란 쾌감을 맛본다. 거기에는 어떤 신비롭다고할 느낌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복잡한 기계를 만들어 본사람은 모두 느끼는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위치를 올렸는데 그게 작동하는 것이다. 길고 긴 도미노를 만들었을 때도 실제로 작동하면 기쁘지 않은가. 생각과 현실이 합쳐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수학적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 자동차 같은 복잡한 기계를 볼 때 느끼는 느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적어도 약간은 다르다. 그들은 그 안에서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를 본다. 길고 긴 논리의 사슬을 본다. 그 안에서 역사를 보고 문명을 본다.

 

이걸 위해서 수학과 기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 어떤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를 한다는 것은 대개 그것을 보다 단순한 어떤 사실로부터 추론을 해서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탁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탁자가 어떤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탁자는 다리와 상판으로 되어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이런 탁자의 구조 말고도 탁자의 색과 재질, 무게, 촉감등 여러가지 성질도 나열할 수 있다. 이런 환원론적인 묘사를 한 끝에 우리는 대개 우리는 이제 탁자가 무엇인지를 이해했다고 말한다.

 

물론 물건들의 성질과 부품들은 단순히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서 관계를 이루며 커다란 하나가 된다. 기계만 그런게 아니라 수학도 그렇다. 수학이란 이런 추론과정을 하나 하나 만들고 그것을 쌓아올리는 것이다. 수학은 매우 논리적으로 엄밀하다. 엄밀성을 최대화했기 때문에 각각의 논리적인 증명들은 표준화, 규격화된 자동차 부품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적 논리는 누가 만들었던지 간에 정해진 조건을 만족하면 나는 그것을 가져다가 쓸 수가 있다. 우리 스스로가 구구단을 만들지 않았어도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외워서 쓰는 것이 기본적인 좋은 예다. 마찬가지로 규격품인 부품이 있기만 하면 누가 그것을 만들었건 나는 부품을 가져다가 자동차를 조립하는데 쓸수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수학적 정리를 증명하는 세부사항은 몰라도 된다. 그것은 증명된것이고 테스트를 거친것이니까 그냥 쓸 수가 있다. 수학적 논리는 유효기간도 아주 길다. 2천년전에 증명된 것이라고 해도 지금의 나는 그것이 마치 새 것처럼 쓸 수가 있다. 2천년전에 만들어둔 수레바퀴를 쓰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눈으로 자동차를 본다면 엔진을 보고 구동축을 보고 차체를 보고 내장을 보고 바퀴를 보게 된다. 엔진은 다시 그 내부의 구조로 나뉘고 내부의 구조는 다시 그 내부의 부품들로 나뉜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쌓아올려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동차다. 간단한 수학공식을 조합해서 복잡한 수학정리를 증명할 수가 있듯이 우리는 여기저기서 모은 부품을 조립해서 크고 복잡한 기계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여기저기 있는 부품공장들에서 모은 부품들이 모여 크고 복잡한 자동차 같은 기계가 된다. 우리는 수천년을 두고 만들어낸 수학적 논리들을 종합해서 아주 크고 복잡한 결과들을 유도해 내기도 한다.

 

믈론 현실의 기계는 완벽하지 않다. 수학적 논리처럼 완벽하지 않으며 오차 범위 아래에서 같은 부품들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완벽한 원은 수학적으로만 존재하지 현실의 원은 완벽하지 않다. 기계의 부품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자동차는 시간이 흐름에따라 조금씩 낡아지고 고장이 나게 된다. 이상적 자동차는 실체로 현실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 자동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들뒤에 있는 생각들, 논리들, 각각의 의미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상호관계로 추상적으로 존재한다.  이 자동차의 논리, 구조, 정신, 영혼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영원한 것이다. 기계를 설계한다는 것은 이런 구조적 논리적 부분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다음에 실질적인 기계를 만든다. 기계를 만드는 것이나 수학공식을 증명하는 것은 다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논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길고 긴 수학적 증명은 보석을 사랑하는 여자가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보는 것과 같다. 그것들은 거대한 아름다움, 거대한 예술품, 거대한 건축물이다. 논리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 안에 있는 원리와 구조를 생각하면서 감동에 젖는다. 예를 들어 복소함수론을 써서 어떤 적분을 몇줄에 해치웠을 때 우리는 응당 감동해야 한다. 그 적분을 하는 공식들의 이면에는 오랜 기간 수학자들이 쌓아올린 높디높은 논리의 피라미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계와 수학만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세상은 바로 이런 것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이런것이다. 우리는 통상 과거의 사람을 미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리스인 혹은 크로마뇽인들도 예술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못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욱 뛰어났을 수 있다. 학교라고는 가보지 못한 무식한 농부도 사실은 학교만 다녀서 지식만 많은 사람보다 뛰어난 면들이 있다. 흙과 농사일에 대해 학생들이 뭘 알겠는가. 차이는 누적된 지식이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를 바꿔온 것은 바로 이 지식을 누적한다는 이 발상이었다. 잉여 식량의 비축이나 잉여자본의 비축이전에 세상에는 지식을 누적한다는 발상이 있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꾼 것이다.

 

기억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식은 저절로 누적되는 걸일까? 그렇지 않다. 기술, 지식, 문명은 저절로 누적되지 않고 사실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아주 빠르게 유실된다. 그것이 유실되지 않는 이유는 개념화, 정량화 같은 것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표준적 자동차부품처럼 가져다가 쓰면되는 편리함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한 영국의 다큐멘타리에서 숫자 1이 위대한 이집트 문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모든 양들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모든 밭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모든 밀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한 개 두개하고 세는 도량형이 정해지지않으면 거래를 하고 세금을 바치는데 혼란이 생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불만이 생기고 문제가 생겨서 거대한 제국이 복잡한 기계처럼 움직일수가 없다. 기계는 멈추고 제국은 붕괴한다.

 

인간들이 말이나 소, 1이나 2같은 개념을 만들고 숫자를 만들고 언어를 발달 시키고 수학을 발달시킨 순간 그들은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논리의 벽돌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쌓는다. 그것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복잡하고 엄청난 일을 할 수가 있다. 언어는 이렇게 지식을 누적시킨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예술적 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누적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모짜르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모짜르트 시절의 기계공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요즘 기준에서 보면 장난에 불과하다. 기술과 지식은 누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엄청난 크기의 피라미드로 덮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는 볼펜한자루 간단한 컵 하나도 만들어 낼 수 없다. 필기도구를 만들 수는 있고, 컵의 역할을 할 도구를 만들 수는 있지만 흔한 거라도 우리가 지금 현대에서 쓰고 있는 상품을 그대로 혼자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볼펜심을 혼자서 어떻게 만드는가. 플라스틱을 처음부터 혼자서 만들 수 있는가? 세상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적되어 온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은 사회라는 시스템 전체에 퍼져있다. 문명이란 어떤 개인의 소유라기 보다는 우리가 적응하고 들어가 살아야 할 집이나 자연환경 같은 것이다. 즉 개인이 문명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문명이 개인을 지배한다.

 

이 지식의 누적은 특히 뉴튼시대 이후, 산업혁명 이후에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당연히 원자론이나 미적분의 발달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더욱 정밀하고 엄밀하게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아올릴 체계가 나온 것이다. 그 이후 최근까지 세계의 인구수나 일인당 생산성 같은 것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명의 위대함과 문명의 흉측함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 진것이다. 이것은 특히 수학적으로 훈련된 눈을 가진 사람의 눈에 잘 보인다. 플라톤이 수학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학교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이때문일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녀에게 긴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런일은 종종 일어난다. 난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에 따라 계속 말을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자동차에서 왜 엔진이 중요한지를 길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내가 그녀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고 마음을 쉬고 내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었다. 보통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지만 특히 많은 남자들의 유혹을 받았을 아름다운 여성에게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 그녀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렇군요라고 말하고 만다. 그 표정이 내가 오늘 괴상한 인간을 하나 만났군, 건드리면 안되겠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뻔한 일이다. 사실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괴짜로 볼 것이다.

 

하지만 난 본래 이번 여행에서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했었다. 따라서 그녀 눈치를 볼 생각이 없으므로 말이 되건 안되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길게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조용히 내버려 둘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장소였다면 했을지로 모르는 행동,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인척하면서 되지도 않게 고상하고 친절하게 구는 행동을 하는 대신에 그녀에게 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가버리라고, 나를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있었으며 그녀에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소리를 내면서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것에 가까웠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그녀가 진심으로 흥미를 보이며 과연 그렇다고 나에게 동의를 했을 때, 그리고 재미있으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 때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나를 이해해주기까지 하는 여자. 당신 같이 예쁜 여자를 보면 지적인 분노를 느낀다는 말을 농담으로 알고 웃을줄 아는 여자. 이런 여자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반칙같은 존재가 아닌가. 특히 내가 나자신의 문제에 빠져 낭비할 시간이 없는 이런 순간에 나타나서는 안되는 거 아닐까. 이것은 너무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일이 아닐까. 운명이 나를 조롱하고 놀리고 있는게 아닐까? 나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말하게 되었다. 이런 제기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