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민주당을 대체할 정당의 창당에 대해 소위 친노 신당이라고 언론에서 이름붙인 신당의 창당에 대해 사람들이 이리저리 말이 많다. 친노무리의 주요한 인물인 이해찬은 정치에서 은퇴했다고 말하고 있고 유시민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데도 그렇다.
신당창당에 대한 의견을 보면 결국 민주당이 있는데 왜 신당이어야 하는가라는 의견과 민주당은 안된다는 의견이 부딪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출생의 한계
어떤 단체는 시작하고 성공할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에 맞는 사람들이 영입되고 자리잡아서 성공을 한다. 문제는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 목적을 달성한 이후다. 그 단체는 일단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완전히 탈퇴환골하여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변화할수 있을까? 난 그걸 성공하는 경우를 별로 본적이 없다.
한국에서 민주당은 결국 민주화의 염원, 독재정권과의 싸움을 위한 정치세력의 핵심으로 커온 것이다. 이 염원은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 10년으로 실상 기대이상으로 달성되었다. 때문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이 싫어서, 그저 오랬동안 지지해오던 정당이니까 지지를 할뿐 국민들이 소비할수 있는 정치적 상품 혹은 개혁에 대한 비전이 민주당에는 없다.
한나라당을 결코 지지하지 않지만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한나라당은 경제적 부흥을 항상 목표로 두고 있으며 그 수단으로 엘리트내지 기득권층을 보호하는 것을 핵심에 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서비스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한 수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
오늘날의 이 괴상한 현실은 열린우리당의 실패때문이다. 새로운 개혁비전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과 더블어 열린우리당은 그 새로운 개혁비전을 추진해야 했다. 바로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고 보다 투명한 소통을 보장하는 사회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결국 국민이 더많은 정보를 가지고 상황을 이해할수 있는 사회다. 밀실에서만 정보가 돌아서 현실파악이 안되는데 뭐가 상식적인 결론인지 누가 알겠는가.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지지를 통해 과반의석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정당으로 자라났고 민주당은 사실 사라지기 직전까지 갔었다. 이정도면 뭐가 역사의 순방향이었는가는 분명하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묘한 행보를 보인다. 한나라당보다 청와대와 더많이 싸우며 국민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를 억누른다. 의원들끼리 결론 지을테니 다른 사람은 간섭하지 말라고 하고 자기들끼리 싸운다.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가 마는가는 둘째치고 자기들끼리도 그것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싸우지 않았는가. 당원제도에 대한 분란은 열린우리당의 시작부터 끝까지 존재했다.
참여정부는 탄생되었는데 참여정부의 정신을 현실사회에서 이룩할 정치세력은 제대로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 사회의 역량부족으로 봐야 할것이다. 적어도 열린우리당이라는 정당이 보여준 참여 틀 안에서 활동할수 있었던 국민들의 역량의 한계다. 이것은 정동영이나 학생운동권 386 의원들등 특정한 인물들을 비난하기 이전의 문제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열린 정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한나라당보다 인터넷에서 조차 지지와 이해를 받지 못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않았다.
정치의 기본
정치는 분명 불가능한 것을 위해 싸우는 것 처럼 보일수도 있다. 독재와 싸워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워 보일지언정 진짜로 불가능한 것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불치병환자 100여명이 우리가 정권을 차지하여 우리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발표한다면 이것은 제대로된 정치일수 없다. 그들은 연대해야 하고 그들이 도움을 얻을수 있으되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수 있는 정치비전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수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재벌총수들 100명의 연합이 불량청소년 100명의 연합과 같은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있어야 정치적인 힘이 나온다.
그렇다고 연대라고 해서 무조건 모이자고 해서도 안된다. 연대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왜 모이는가. 이 정치 세력에 참여하는 것이 참여하는 사람에게 어떤 만족감을 주는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그 답은 사회적 자유, 정치적 발언권의 증대, 문화-철학적 정체성으로 인한 친근감, 경제적 혜택등 여러가지 일수 있다. 그냥 모이라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제몫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제몫 이상을 차지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 실력이 있는데도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있는가. 누가 군방을 책임지고 세금을 가장 많이 내고 지식산업의 몸통에 해당하는 일을 해내는데도 정치적으로 미약한가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꼭 필요하다. 그들은 실력이 있고 사회를 바꾸려는 동기가 있다.
이런 것이 없다면 결국 정치적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 그 정치적 성공은 또다른 불로소득자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편만 들어준다면 나는 세금같은거 내기 싫고 나는 국방의무도 지기 싫으며 노동자 탄압도 마구 하고 싶다고 해도 일단 이기고 봐야 하니까 연대하자고 할수는 없다. 그런 승리는 의미가 없다.
참여정치 가설
참여정치 가설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노동이하로 대접받고 실력이 있는 사람들, 다음 정권의 핵심적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은 바로 도시 근로자 그것도 청장년 화이트 컬러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노조 설립이 제대로 안되고 직장안정성도 없으며 세금은 가장 열심히 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머니에서 주거비, 교육비, 세금등의 명목으로 흘러나가는 돈이 여러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데도 이들을 제대로 대표해주는 정치집단이 없다. 아이엠에프 이후 정리해고로 자영업자가 된 사람들도 이들이며 노풍을 만들었고 참여정권을 만들었던 지지세력의 핵심도 이들이다. 한국 사람들중에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 능한 사람도 이들이다.
진보정당은 거대노조나 농민들을 앞에 내세우고 민주당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지역구도에 크게 의존한다. 다시 말해 서로 대립하여 사회를 바꿔갈만한 정치진영을 가르는 전선을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진보정당은 블루컬러 노동자와 그 이외의 사람들로 나누는 경향이 있고 민주당은 전라도와 그이외의 사람들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성공할수 없는 정치구도로 애초에 정권을 잡아 사회를 개혁하기 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정치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대변인으로 남는 것에 만족한다는 구도다.
노무현은 민주당에 의해 탄핵당했으며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과 매우 강력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며 참여정부를 비하하는데 노력했다. 열린우리당은 자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정치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것을 막고 평일에 대회를 열고 인터넷 정치를 축소시킨다. 이 모든 것은 참여정치 세력의 부상을 막겠다는 기성 정치세력의 연합이다.
결론
모든 것이 실력대로 되는 것이 반드시 선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실력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이 계속되면 결국 내가 위에서 말한 참여정치세력의 힘이 증가할수 밖에 없다. 이공계 출신의 정치인들도 지금보다 늘어날것이다. 왜냐면 이공계를 나온 사람들의 사회정치적 실력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역구도는 강건하지만 동시에 한물간 것이기도 하다. 한국도 레져를 즐기고 전국이 고르게 발전하게 되면 관광산업의 중요성이 더더욱 커질 것이다.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지역따지면서 사는 건 해외여행도 국내여행도 잘 안하는 시대에나 가능한 것이다. 전라도가 경상도 사람들이 와서 소비하는 돈으로 먹고 살고 그 반대도 참일때 지역구도라는게 얼마나 가겠는가. 남북간의 경제교류만 남북한 감정을 해소하는게 아니다.
신당은 필요할까? 답은 지금 필요한 정치가 뭔지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린 일일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보고도 그저 신당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면에 민주당은 자기가 무슨일을 해야 하는지, 그게 적당한 사람들을 가진 당인지 알고 있는가하는 질문이 있다. 혹시 여전히 민주화 운동하고 영남정권의 압제에서 호남사람을 지키는 그런 정치하고 있는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세상은 포스트 모더니즘도 한물간 세상이다. 그런데 정치쪽을 보고 있으면 문화적으로 시대적으로 너무 뒤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두한 나오는 시대극 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먹고 그렇게 즐기고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면서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수 있단다. 이건 요즘 청소년에 대해 뭐하나 아는게 없으면서 돈이나 던져주고 넌 뭐가 불만이냐고 말하는 소통안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상과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잘사는게 뭔지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 그들이 배워야 하는거 아닐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개인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 사는 모습이 만족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메세지가 입이 아니라 온몸에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지지했다. 현 대통령의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하고 그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좋은 정치가 뭔가에 대해 배울수 있지 않을까. 좀 아름다운 사람, 세련된 사람들이 나서서 정치하면 좋겠다. 옆집에 살면 정말 싫을 것같은 사람들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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