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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1492년의 아메리카

by 격암(강국진) 2009. 8. 27.

2009.8.27

아메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을 비교하면서 왜 아메리카 대륙의 발전은 늦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다. 유라시아 문명이 아메리카 대륙보다 빨리 발전했던 이유는 대륙의 생김새때문이라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뻣어있고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뻣어있다. 위도가 다르면 기후가 다르다. 그래서 농경기술같은 것이 전파되기 쉽지 않다. 반면에 위도가 같은 즉 동서로 뻣어있던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어느곳에서 기술이 발전되면 쉽게 다른 곳으로 전파되어 사용될 수가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 익숙한 것이 우리들이지만 실제로 유럽인들이 오기전까지 아메리카 평원의 인디언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걷고 씨뿌리는 농부였을 뿐이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카카오, 호박, 땅콩, 아보카도, 토마토, 파인애플, 고추등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래되었다. 아메리카에는 바퀴가 없었고 큰 배가 없었다. 멀리 가질 않으니 바퀴가 쓰이지 않았고 바다는 너무 커서 배가 소용없었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만남은 비극적이었다.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했던 1492년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대충 7쳔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원주민들은 대부분이 빠르게 죽는다. 학살도 많았지만 유목민족이었던 유럽인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병의 전파는 반대의 사례도 있다. 콜럼버스가 돌아온 직후 유럽에는 빠르게 매독이 번졌다. 이는 점령군의 성적착취와 유럽에서의 성적 방종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다. 매독은 기이한 문화도 만들었다. 서구에는 가발을 쓰는 전통이 있다. 아마데우스같은 모짜르트 영화를 보면 이 남자가 쓰는 가발을 잘 보여준다. 이 전통도 매독으로 인한 탈모를 숨기기 위해 발달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메리카의 발견은 유럽사람에게 최소한 두가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경제적 수탈이다. 아메리카에 경쟁적으로 진출해서 그 부를 취한 유럽국가는 부의 축적을 통해 발전한다. 중세시대를 종결하고 번영으로 나가는 시기가 신대륙을 발견한 시기와 겹치는 것은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쪽이 결과인지 말하기 어렵지만 일방적인 이유는 아닌듯 하다. 식민지 쟁탈문제로 유럽의 해군이 발전하고 민족주의적 경향이 촉진된다. 

 

미대륙에서는 노예산업이 발달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 기이했던 것은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는 쪽이 훨씬 값싸지 않았을까? 이는 사람이 노예가 되기위해서는 자신의 근거지를 박탈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기 고향땅의 인디언들은 결코 서양인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 반면에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들은 반항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미대륙의 발견이 가지는 또하나의 큰 의미는 그것이 유럽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여줌으로 해서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성서에도 언급이 없는 새로운 땅이 나타나자 성서를 중시하고 고전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태도에서 실제의 관찰을 강조하는 이성주의가 보다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불멸의 발견으로 칭송받을 만큼 대단한 일로 유럽에서 평가되었다. 아메리카에 대한 독점권때문에 유럽에서는 국제관계의 갈등에 대한 이론이 개발되기도 했다.

 

이는 중국의 정허가 유럽인들보다 더 먼저 미대륙을 탐험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1418년에 만들어진 중국의 고지도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모습이 상세하게 나온다. 미대륙에 이미 원주민이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1492년에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했다는 말은 돌아보면 낯뜨거운 이야기다. 하지만 미대륙의 발견은 중국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중국인들은 미대륙을 정복하지도 않았고 그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유럽인들이 15세기에 얼마나 미개했었나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신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중세유럽에 비해 극동 문화권은 이미 예전부터 공자를 좋은 예로 해서 이성주의가 발달해 있었다. 신세계의 금에 흥분했던 유럽인과는 달리 중국인들은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미대륙의 은은 엄청나게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역사는 서구의 승리로 흘렀다고도 할 수 있지만 과연 이것이 진짜 승리인지, 얼마나 오래갈 승리인지 알 수 없다. 이제 더이상 신대륙은 없다. 지구는 붐빈다. 제국주의없이 팽창없이 살아가는 법을 더 잘아는 쪽은 오히려 동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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