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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즘, 진보, 선입견 그리고 2PM의 박재범

by 격암(강국진) 2009. 9. 8.

2009.9.8

선입견은 나쁘다. 그런데 선입견을 찬양하는 책이 있다. 테오도르 데일림플이 쓴 선입견을 찬양하며라는 책이다. 이 책은 선입견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선입견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라는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 테오도르는 이 책에서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든다. 그것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는 진보적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자가 오랜동안 한 남자를 사귀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결혼을 거부했고 이 여성은 자살을 시도했다. 이 남자에게 테오도르가 왜 결혼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더니 이 남자는 결혼이란 그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며 아무 의미도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즉 결혼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더라는 것이다.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제도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은 것에 의구심을 던지고 선입견과 관습을 타파하려고 하는 진보적 사람들중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 남자에 대해서 테오도르는 이런 평가를 내린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이런 편리한 태도를 취한다. 즉 자신에게 편리할 때는 관습이나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자유나 이익이 관련될 경우 법이나 전통적 도덕, 지혜등의 무의미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의미를 주장하기 위한 철학적 논리는 이 시대에 너무 흔하다. 

 

테오도르는 이 남자에게 만약 결혼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면 그녀를 위해 그 의미없는 결혼서류에 사인하는게 어떻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이 남자는 당황해서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고 변명한다. 기본적으로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은 여자와 살면서 원하면 언제나 헤어질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혼서약을 하기 싫어하는 것을 진보적 정신으로 가장했을 뿐이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우리 역시 어떻게 공산주의 같은 사상이 같은 민족과 가족을 갈라서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로 만드는가를 경험한 역사가 있다. 따라서 오늘날 진보적인 사상을 배웠다는 사람들은 거대담론에 저항하고 사상에 저항하며 민족주의같은 것을 시대에 뒤진 타파해야할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진보는 보통 자유를 주장하고 모든 종류의 전통적인 것을 깨부시는 경향이 있다. 깨어져 나가는 것에는 분명 나쁜 관습이 있을것이나 그 선입견과 관습의 타파는 사실 무차별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무시하고 국적이나 전통문화를 무시하고 결국 나중에 가면 세계의 평균적 흐름을 따르자는 메세지가 되고 마는 것같다. 

 

그러나 이런 진보가 과연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누구를 지켜줄 수 있을까. 가족이나 결혼제도에 대한 진보적 태도가 과연 누구를 구원했는가? 엄마 아빠의 성 두개를 달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성을 두개로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아빠성을 먼저쓰는지 엄마성을 먼저쓰는지 궁금하다. 순서도 중요한거 아니겠는가.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날마다 순서를 바꾸는가? 게다가 그 엄마의 성도 결국 외할아버지의 성이다. 외할머니의 성은 어쩔셈인가. 모두가 특별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보통사람이다. 즉 친가와 외가의 구분을 없애봐야 남는 것은 대가족 제도를 붕괴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누구를 구원하는가?

 

국가라는 제도나 한민족이라는 개념,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행위는 확실히 개인을 억압하고 전체주의적인 결말로 가버릴 위험성이 있다. 국가를 위해서 국산품쓰라고 하면서 그렇게 벌어진 돈은 개인이 착복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전통적 개념에 진보의 망치를 들이대고 부셔대고 나면 남는 것은 그저 집없는 고아같은 외로운 존재다. 

 

나는 외국인이 한국인과 비교했을 때 인간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말해보자. 경상도 사람들이 굶어죽어간다던가 천원짜리 백신이면 살 수 있는 질병때문에 죽어간다면 우리나라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빈민국에서는 지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가만히 있는가. 도와준다고? 사실 체면치례만 할뿐이다. 그럼 도와주자고? 우리나라 재산을 다 털어넣어도 세계인들의 생활수준을 모두 우리 나라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법은 없다. 솔직히 인정하자. 우리는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정하고 분명히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목숨하나와 외국인의 목숨하나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 글은 자칫하면 지독한 극보수적인 글로 읽힐 수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보수중에도 아무생각없는 멍청이 보수가 있듯이 진보도 추악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안그래도 살기 힘든 사람이 버티고 사는 기둥들을 맘대로 파괴하는 단순한 이기주의자들이다. 모든 진보주의자가 이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사람들이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일은 흔하다. 

 

한국은 식민지를 겪어서 정체성의 혼란이 있다. 그런데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은 나라를 깨어부실 생각만 하고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은 아예 국가적 정체성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보수의 집회를 보라. 웰컴 아메리카고 아리가또 니혼 아닌가? 정체성없는 보수도 골치아프지만 낭만주의 진보도 그 이상으로 골치아프다. 그래서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소리를 하기 싫어한다. 그냥 옳은 비전이 있을 뿐이다. 철없는 사람, 시야가 좁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2PM의 박재범씨가 한국비하사건으로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벌써 진보적 매체에서는 관용을 호소하는 사설이 올라온다. 그렇다. 다 관용하자. 군대안가도 관용하고 마약먹어도 관용하고 성추행범이라도 관용하자. 뭐는 관용 못하겠는가. 이건 너무 심하다고? 아무도 박재범씨를 사법처리하자고 한 사람이 없다. 싫어할 사람은 싫어했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는 가운데 비난이 세상에 퍼지니까 개인적으로 그만둔 것이다. 관용이란 말도 남용하면 언론통제 비슷한 것이 된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자유가 이 나라에 있다면 나는 그녀석이 싫다라고 말할 자유도 이 땅에 있는거 아니겠는가. 습관적 진보말고 제대로된 사람들의 주장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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