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유이의 꿀벅지와 파시즘

by 격암(강국진) 2009. 9. 28.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한물간줄 알았던 유이의 꿀벅지 논쟁이 아직도 세상에 여진을 남기고 있는 것같다. 이 사건은 이 사건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그안에 있는 전체주의적 한국 사회의 사고방식 그리고 황색언론들의 행태가 큰 의미를 주는 것같다. 


유이의 꿀벅지 사건이란 가수 유이의 허벅지를 가르켜 부르는 단어로 꿀벅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네티즌 논쟁이 시작됨으로서 가열되었고 그것이 크게 확산된것은 다시 온갖 언론매체에서 확대생산을 했기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이의 허벅지를 뭐라고 부르건 크게 관심은 없으며 굳이 말하자면 여성의 허벅지를 꿀벅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눈쌀을 찌푸리는 편이다. 마치 쇼프로그램에서 여성 가수의 가슴이나 엉덩이에 대해 한시간 내내 떠드는 꼴을 보는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 상업방송이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쳐도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는 꿀벅지라는 말을 계속 쓰는 사람들을 크게 단죄하고 심각한 사회적 의미를 가져다 붙여서 심판하고 할 생각은 없다. 생각과 취향이 다르니 그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달라지는게 불편하다면 내 의견을 '어느정도' 밝힐 것이다. 


문제는 여기다. 한국 사회에는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이 너무 퍼져서 남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면 다르다고 인식하는게 아니라 비난을 한다. 정중하게 말하건 직설적으로 욕설을 하건 그렇다. 다음 뷰에서 큰 조회수를 받은 꿀벅지에 담긴 속사정이란 글을 봐도 이런 것을 느낀다. 


이 필자는 보면 꿀벅지에 대해 논하면서 성희롱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사무실 여직원에게 너의 꿀벅지를 보여줘라고 말한 사람이 아니라 상업적인 이유로 스스로 허벅지를 노출하고 엉덩이를 흔드는 여가수의 허벅지를 가르켜 꿀벅지라고 말한 사람들까지 성희롱 옹호자들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주장이 스스로 부담스러웠는지 남자의 복근이 초컬릿 어쩌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너도 신고하란다. 이 논리적 도약에서 파시즘을 못느끼는 사람이 많은게 문제다. 세상에 이 필자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모두 위선자가 아니라 진심에서 그런다면 이 세상은 손가락하나 까딱할수 없는 곳이 될것이다. 


네티즌들이 흥분했다면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 부자유의 파시즘때문이다. 이런 식의 논리가 계속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런거니까. 아니나 다를까 필자는 네티즌이 던진 돌맹이에 맞아죽는 개구리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왠지 글이 누군가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바로 인터넷 검렬을 주장하는 현 정부의 목소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전에 한번은 미니스커트 논쟁이 인터넷에서 잠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논쟁에서 남자들 몇몇은 보기 민망하고 보고 나면 당황스러우니 자제하라는 주장을 했는데 여성들중 몇몇이 미니 스커트는 남자들 유혹하려고 입는게 아니라면서 예쁘니까 입는건데 왠 참견이냐는 주장을 했다. 그렇다. 같은 사람이 한 주장은 아니지만 꿀벅지 논쟁에서 나온 논리와 미니스커트 논쟁의 논리를 합치면 한마디로 들어내놓고 다닐 권리는 있지만 그걸가지고 뭐라고 남자들이 코멘트하는 것은 성추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물론 이런 식의 종합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전체주의적 사고다. 어쩌겠는가. 남자들이 불평하지만 여자들이 벗고 다니건 어쩌건 내버려 둘것이다. 여자는 그러면 안되나? 성이 상품으로 사방에서 꿀처럼 흘러내리는 이유가 다 남자탓이라고 비난하고 남자를 구속하려고만 하면 그것으로 그만인가? 


모든 것을 남자탓이라고 말하는 여권주의자는 기묘한 모순을 범하고 있다. 그것은 여권주의자만큼 여성의 능력과 자주성을 저평가하는 사람도 없는 것같다는 것이다. 왜냐면 모든것이 남자탓이니까 그렇다. 거꾸로 말해여자의 매력이 너무 커서 성추행을 범할수 밖에 없었다는 소리를 하는 한심한 남자만큼 스스로를 비하하는 남자가 어디있겠는가. 남자들이 우리는 여성의 허벅지를 보면 성추행을 참을수 없으며 그런 노출은 성추행에 준하는 것이므로 모든 여자들은 싸매고 다니라고 주장한다면 여성들은 물론 그렇다고 할것인가?


성의 상품화의 상징같은 추세가 바로 누드 화보집이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팔리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유명 여배우나 모델들이 이런 화보집을 찍어 팔았다. 이효리는 유명한 섹시함의 심벌이다. 진짜 보기 민망한 자세를 춤이라고 출때도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 여성부가 항의한다고 하는 소리는 들어본적이 없다. 그들은 성의 상품화의 피해자들인가? 남자들의 욕망의 피해자라서 그런가? 왜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인가. 


인터넷에서 자주 큰 논쟁이 벌어지는 것의 배후를 보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매도하고 구속하려고 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수의 네티즌을 자극하고 반발을 불러온다. 또하나는 싸구려 언론의 확대다. 그들은 그걸 확대해서 마치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거나 모든 네티즌이 이렇다는 식으로 단순화한, 역시 마찬가지의 착각을 만들어 낸다. 


이런 패턴을 따르는 것은 2pm 재범사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기분나쁘고 그를 싫어하고 그러러면 미국으로 가라고 할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걸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다. 대통령뽑는 것도 아니고 인기를 팔아 먹고 사는 가수를 싫어하고 좋아하는것도 누구 허락맡아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찬반의 양쪽진영을 광기어린 군중으로 매도하는 것은 역시 전체주의에 빠진 일부 네티즌과 황색언론이다. 4대강 사업보다 재범에 대해 네티즌이 뭐라고 하는게 훨씬 중요한가? 


다르게 사는게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살자. 안그래도 숨막히게 제약이 많은 세상에서 이것도 저것도 모두 못한다고만 하면 우리는 살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티즌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