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사회적으로는 일반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철학을 비롯해서 모든 현대의 학문은 주로 전문화의 결과로 대중에게 나아갈 힘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전자통신의 발달로 세상이 더욱 빨라지는 지금 오히려 점점 소통이 느려지고 불가능해지는 것 같아보이는 부분도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것을 넘어 비극적인 일이다.
오늘날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지적 환경을 비유하자면 이런 것같다. 여기 자동차도 한 번 타본 적없는, 기계문명에 무지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가 있다. 이 동네에는 최첨단 제트기가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게 뭐에 쓰는지도 모르고 나머지 소수의 사람들도 그저 그 것이 사람들을 날아다니게 만들어준다는 건 알지만 조종법을 모른다. 사람들은 설명서를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설명서는 알아듣기 힘든 말로 되어 있고 무척이나 길다.
상황을 나쁘게 하는 것은 단지 제트기 조종법이 어렵다는것이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헛소문을 퍼뜨려서 간략한 조정법이라던가 알기쉬운 조정법을 내놓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틀린 말들이거나 주객이 전도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전투기의 바퀴부분이 움직이는 것을 강조해서 전투기를 밭을 가는데 쓰는 것으로 설명하고 전투기 조종법을 가르쳐준다면서 전투기 표면에 붙은 로고를 그리는 법이나 전투기 조정석에 들어가 앉는법, 전투기 조종사의 옷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제 일반인들은 전투기가 도대체 뭐에 쓰는 것인지 더더욱 모르게 되었다. 그나마 조금 더 안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전투기란 애초에 타고 날으는 것이며 엔진을 켜고 활주로를 뛰어가서 하늘로 날아올라야 한다고 말을 하면 사방에서 소란이 난다. 전투기는 본래 밭을 가는데 쓰는 것이며 소달구지와 친척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공격을 한다. 이들은 애초에 자신들의 약점을 알고 있으므로 파벌을 이뤄 학파를 만든다. 그럼 이제 꼼짝 못하고 전투기는 밭가는데 쓰는 것으로 굳어질 판이다.
여기서 이 학파에도 들지 못하면서 그나마 조금 더 안다는 사람을 앞장서서 죽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 설명서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특정부분은 열심히 읽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나서서 말한다. 저사람은 비행기를 탈 때 조종사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도 안했다. 저사람은 시동스위치라는 말도 없으며 활주로를 뛰어간다라고 했는데 사실 본문에 보면 활주로를 달린다고 나와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전투기 조종법에 대해 줄줄이 이야기하면서 단 하나라도 틀리면 이것은 틀린 것 따라서 저사람은 기본도 없다는 식의 지적을 한다. 결국 극히 소수의 전투기 조종법을 조금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때문에 침묵할 수 밖에 없다.
한 사회안에서 사상이 독점되고 그것이 묵인되는 모습은 이런 것같다. 위대한 정신을 가진 철학자가 우리를 태워줄 전투기같은 위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내놓아도 그것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단순히 그 철학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고 독점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며 거기에 기여하는 자잘한 트집잡기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기는 밭을 조금 갈다가 버려진다. 소달구지가 전투기보다 밭갈기에는 좋더라는 평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여러 현대철학자들이 소개되지만 한국 대중의 정서와 신문방송에서의 정서를 보면 도대체 반세기 동안이나 미국을 사랑한다고 외쳐대면서 이렇게 까지 미국의 사상을 학습하는게 늦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난 미국을 모두 따라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좋아한다면 따라해야 할 것 아닌가.
우리 교육을 보라. 미국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서 미국 초등학교교과서를 쓰고 링컨을 배우고 그들의 발음을 흉내내게 하는 그런 학원이나 학교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 한국 학생이 학교를 다니면 미국선생님은 그 한국학생에게 뭘 가르칠까? 미국 선생님은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되라고 가르친다. 남을 흉내내지 말고 자기 생각에 따라 살라고 가르친다. 빈대떡에 삼겹살 구워먹다가 미국 사람보면 피자먹고 스타벅스가고 하는 것으로 취향을 바꿔 흉내내는 것은 '미국식' 이 아니다. 결국 정신은 빼먹고 겉모양만 흉내내서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 우리는 늙으면 낚시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가?
이런 답답함은 일종의 문명사적인 위기로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복잡함이 소통을 막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만든다. 그들은 정치 철학적 논의에 가담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방송에서 교수니 장관이니 하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시스템이 만들어 낸 프로세스를 거친 사람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쳐다보고만 있어야 할뿐이다. 광우병 사태가 벌어졌을때 4대강에 관련한 논의가 벌어졌을 때도 우리는 그것을 느꼈다. 복잡한 시스템이 논의를 독점하게 만든다. 결국 일반인이 택할 수 있는 방향은 시스템의 일부가 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고 무기력하게 살거나 시스템을 논리적 근거없이 맹종하는 경우밖에는 없다. 이런 문명은 결국 효율성이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세상일은 항상 의외의 일이 발생해서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그런 모든 복잡함을 한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정교한 철학적 메세지를 전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같은 것이 나타나서 추종자들을 만들고 한세대를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드디어 모두가 제트기를 타고 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런 의외의 일이 좀 빨리 벌어줘 줬으면 한다. 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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