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사람,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다보니 문제가 없는 답이 양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은 해방이후 아니 한일 합방이후 온갖 것이 몰려들어와서 이제껏 내내 끌려다녔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주도하지 못했던 역사때문이었겠지만 우리의 정신도 결국은 이러저리 끌려다니녀 소위 '모르면 그냥 외워' 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그러나 한국에 있었던 전통적 사고방식의 수준이면 사실 해방이후의 가난하고 단순한 사회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독재시대가 무슨 문제가 없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개인의 도덕차원에서 한국은 경제수준에 비하면 훨씬 위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효를 중요시 하고 배우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근검절약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한국에 이미 있었다. 한국은 그러니까 못먹어도 공부시키고 일해서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다. '결코' 한두명의 독재자나 위대한 위인이 손몇번 움직여서 이렇게 부자가 된게 아니다. 그게 가능하면 독재국가중에 극빈을 못벗어날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지금이다. 한국 사회가 극빈을 벗어 선진국에 진입했거나 하려고 하는 지금 한국내부의 정신적 질서, 규범따위가 물질을 쫒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자꾸 사회적 댓가를 치루고 있다. 한국이 겪는 문제는 여러가지겠지만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한국이 겪는 문제는 소위 근대에서 현대로 가는 문제고 서양에서는 니체며 화이트헤드며 들뢰즈며 하는 사람들이 과정철학이니 생성철학이니 하는 것으로 극복하려고 하고 했던 그런 문제들이다. 이것은 다원화 시대, 극도로 기계문명이 발전한 시대에 정신적 안정을 제공한다.
그럼 우리는 화이트헤드나 들뢰즈나 니체를 받아들이면 문제가 해결될까? 물론 열심히 그렇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있으며 우리나라 인문학계에서 그런 책들이 팔리고 있고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문제가 없는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문제는 사회적 역사적 현실이고 답은 그에 대한 반응과 대안인데 다른 언어로 다른 사회적 현실에서 만들어진 그 철학들을 소개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된다. 그들의 철학의 세부사항까지 파고들려고 하는 것은 이 좀 쑤시자고 대들보를 깍고 있는 꼴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철학을 불교란 이것이다 기독교란 이것이다를 한줄정리하듯이 정리하면 아무 도움이 안되거나 혼란만 키우는 것같다. 유목주의 운운 하다가 그건 침략주의라는 지적이 나오고 그건 전혀 엉터리 이해라는 반박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걸 느낀다. 그래서 현실정치나 경제에 뛰어든 사람들은 이진경같은 사람을 가르켜 추상적 언어만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걸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냐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건 니체를 수입하고 화이트헤드를 수입하고 들뢰즈를 수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현실을 통째로 씹어서 나름의 언어로 말할수 있는 우리의 니체, 우리의 화이트헤드, 우리의 들뢰즈이다. 그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에 도올 김용옥같은 분은 자기 철학을 개발하겠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김용옥이 아니라도 여러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번역이나 해설이 아니라 자기 책을 쓰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은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는 것같다. 적어도 자기만 자기머리에서 이해한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수 있는 언어로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는 것같다. 미안하지만 자기만 이해한 구세주를 찾자면 계룡산에 가서 도사를 찾으면 많이 있을 것이다. 국민모두가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도 상당한 수의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수 있는 가치와 철학이 필요하다. 그 공감대가 있어야만 한국은 앞으로 나갈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는 한국 사회의 희망일까. 한국 시민들의 사고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는 증거일까. 여러가지 희망찬 해석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지난 광우병 사태이후 촛불집회는 실질적으로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때가 촛불집회의 최대치였던 것같다. 사람들은 그것으로는 안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변한것도 이룬것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보자면 그렇다. 소고기수입은 변함이 없고 이명박정권은 멀쩡하고 시위참가자들은 조사받고 벌금을 내고 여러가지 인권탄압은 더 심해졌을 뿐이다.
누군가 통쾌한 책한권가지고 나타나 한국을 정화시켜주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모두가 그 책을 읽고, 시중의 종이값이 올라가도록 그 책이 읽히고 새로운 시대가 뭔지 정확히 알게 되는 날 그 날이 와야 한국은 다음단계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러면 한국사람들은 자기 나라안에서 남의 나라에 온 것처럼 될것이다. 그게 재앙이 아니면 무엇일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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