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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우중충한 집에 대한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by 격암(강국진) 2009. 11. 5.

2009.11.5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쇼핑에 관심이 있다. 장난감에서 자전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물론 너무 비싸서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지만 견물생심이라 보고 있으면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물론 가격의 비현실성을 생각하면 금방 그 욕심은 꺼진다. 그런 것중에 하나가 바로 집구경이 있다. 한국의 집은 구경할 것이 별로 없다. 물론 예쁜 펜션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내가 가볼 수 없는 고급집을 가진 친구가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한국에서는 집이란 사실 구경할 것이 없다. 일단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파트 설계는 전국통일이라도 된 것인지 아무 특징도 없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자기집을 개조해서 자기만의 집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이 없다. 왜냐면 팔아야 하니까. 아파트는 상품이니까 그렇다. 규격화되어 만들어 진 아파트를 개조해 놓으면 가격이 애매해진다. 인테리어 잘했다고 가격을 더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구조가 변경되면 오히려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 대개는 가격에 반영이 안된다. 사람들은 말로는 난 투기를 하는게 아니라 그저 고향이라 여기 산다고 말하지만 살아가는 행태를 보면 그 말의 진실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강남에서 초라한 아파트에 앉아서 고치지도 않고 불쌍하게 사시는 분들이 살려고 거기에 사는 것일까? 그분들은 팔고 나갈 사람이니까 더 돈을 들이지 않는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 집사람이 일본사람이랑 이야기를 했단다. 한국집에 비하면 일본집들은 참 공간활용잘하면서 예쁘게 해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부자라서 그런가 보다고. 그런데 이에 대해 일본인 아주머니가 뜻밖의 대답을 하더란다. 일본도 사는게 참 한심했단다. 부동산 거품이 올라가니 값으로 보면 그 집이 엄청난데 결국 그 집은 작고 초라하고 오래된 집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변하는 결정적인 시기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던 90년대에 왔다. 알려진대로 일본의 부동산은 거품파괴 이후 4분의 1 심지어는 10분의 1로 주저앉은 곳도 있고 지금도 일본의 집중 열채중 하나는 비어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동산 거품때 잔뜩 지었는데 거기 들어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리조트 지역에 지은 산장같은 곳이 아직도 대단히 싼 값에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곳들은 경기가 변하면서 매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렇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서 일본인들의 인식이 바뀌었단다. 집값은 이제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동차처럼 점점 싸진다. 이제 집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재다. 집에 투자해서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거기에 살려고 집을 사고 짓는다. 그러니까 자기의 필요에 따라 투자를 하고 가꾸기 시작한다. 원하는 실내구조를 만들고 가구를 들여서 장식한다. 창을 만들고 작은 화단도 만들고 테라스도 만들어 본다. 

 

일본에는 주택전시장은 쉽게 본다. 그러나 아파트(일본에서는 맨션이라고 더 자주 말한다)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을 집으로 쓰면서 폼나게 산다. 집이 집이 되니까 불쌍하게 사는 사람이 줄었다. 집은 넓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실용적으로 변했다. 

 

그러고보면 일본 부동산 거품의 절정기였던 80년대에 나는 믿을 수 없이 작은 동경의 아파트에서 사는 일본사람들에 대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부자나라가 저러나면서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세월이 흘러 일본에 살면서 한국을 쳐다본다. 이제 한국의 주거환경에 대한 다큐를 만들면 일본사람들은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할것인가. 분명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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