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7
저는 지금 일본에 삽니다. 지난 주말에는 동네의 주택전시장에 또 한번 구경을 갔더랬습니다. 일본에는 주택전시장이라는게 동네마다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주택시공사들이 각자 집을 한채씩 지어놓고 자기들의 집을 선전하는 공간으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같은게 모여있는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의 모델하우스는 대개 아파트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지만 주택전시장은 일본의 보편적 주거인 단독주택을 선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부터 저는 그릇이라던가 집의 구조라던가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적인 이유로 해서 좀 더 관심도가 증가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주택이라는 것을 많이 둘러보고 일본의 집이라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요. 그 결과 양쪽의 큰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지적해 둘 것은 양쪽의 주거문화의 차이입니다. 한국의 대중적 주거양식은 아파트이며 일본은 단독주택입니다. 한국이라고 단독주택이 없는것이 아니며 일본이라고 맨션이나 아파트 -일본에서 맨션이라고 불리는 것이 보통 한국에서 불리는 아파트입니다-가 있지만 주류는 그렇습니다. 동경 외곽과 경계선 너머의 주택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장면은 2-3층 수준의 단독주택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광경입니다. 한국과는 반대죠. 저는 한국사람이지만 외국 생활을 좀 길게 해서인지 아파트 숲이라는 것이 충격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바로 강남에서 수원으로 가는 버스를 탓을 때였는데요. 그야말로 고층아파트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더군요. 한국사시는 분들은 그게 일상적이겠지만 외국사는 사람에게는 너무 특이하고 거의 충격으로 느껴지는 광경입니다.
집 외양의 차이
그렇지만 이 주거문화의 차이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직 단독주택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주거문화의 차이가 단독주택의 발전과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즉 일본에서 단독주택이란 대개 건평과 대지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상황에서 짓는 건물입니다. 주차장이나 좁은 정원부분이 있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이 축적된 것이죠. 이는 일본의 단독주택들은 보편주거로 대개 밀집주거지에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보통 땅값이 비교적 싼 교외에 지어지고 이때문에 이를 전원주택이라고 부르죠.
제가 전에 산책하면서 찍어둔 동네의 일본집 사진 두개를 소개해 봅니다. (특별히 예뻐서 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예를 들기 위한 동네의 평범한 집들입니다.)
한국에도 물론 단독주택이 여러종류가 있습니다만 시골촌집들과 오래되거나 아주 비싼 도심주택을 제외하면 아무래도 최근에 많이들 짓고 있는 전원주택이 주류인것 같습니다. 저작권과 프라이버시 문제로 특정인의 집을 올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이 최근에 짓는 전원주택들은 분명히 일본의 집들에 비해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애초에 짓는 장소가 다르니 생기는 당연한 차이인데 그래도 이런 차이가 대개는 무시됩니다. 즉 한국에서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런 전원주택을 떠올린다는 거죠.
제가 둘러본 바로는 한국의 전원주택들이란 첫째로 단층집이 많고 둘째로 집을 이루는 외곽선이 울퉁불퉁한 경우가 많습니다. 2층이 있어도 1층과 2층이 똑같다기보다는 넓은 1층에 좁은 2층이 있는 구조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집들은 여기저기에 방을 박아넣고 쌓아서 무슨 버섯송이들이 이리저리 모여있는 듯이 생겼는데요 그래서 저는 그걸 스머프 집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집들은 미장을 잘하면 더 아름다워 보일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비싸고 나쁜 집일 수 있습니다. 일본 주택전시장에 가면 있는 집들중에는 건물내 정원을 가진 집들 즉 중정을 가진 집들이 있습니다. 이런 집들은 네모 반듯하게 생긴 집이 아니라 한쪽이 움푹들어가서 그곳이 정원이 되는 형태거나 아예 집이 큰 네모 안에 작은 네모난 정원공간이 있는 형태를 가집니다. 이런 건물내 정원의 단점을 묻는 저에게 건축설계사가 이렇게 간단히 말합니다. '돈이다' 즉 돈만 있으면 있는게 좋다는 거죠.
결국 집이란 공간과 벽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빈공간에 건축비가 들어갈 일이 없으니 건축비는 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을 많이 가질 수록 더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면적을 최소 길이의 선으로 둘러치는 도형은 원입니다. 그러나 원형집은 세우기 힘들겠죠. 그 다음에 정답은 정사각형일것입니다. 그러니까 길쭉하거나 울퉁불퉁한 집보다 정사각형 집이 훨씬 더 실내공간이 넓어서 같은 평수의 집을 짓는데 정사각형 모양으로 지으면 벽의 길이가 짧아집니다.
면적으로 하면 그렇고 입체로 하면 다시 답은 정육면체가 될것입니다. 즉 구형 건물은 비현실적이므로 최소한의 표면적으로 최대한의 부피를 가지는 건물은 정육면체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40평짜리 1층주택과 20평짜리 2층주택을 생각해 봅시다. 계단면적 같은 것을 고려하는걸 제외하면 둘다 40평짜리 건물입니다. 그런데 건축비는 40평짜리 1층주택이 더들어간다고 합니다. 왜냐면 첫째로 2층 건물의 기초가 들어설 면적이 절반이기 때문입니다. 즉 밑바닥의 면적이 절반이죠. 기초공사를 절반만 해도 됩니다. 둘째 지붕의 넓이도 절반입니다. 즉 위뚜껑의 면적이 절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건설비 이야기만 주로 했습니다만 단열을 생각해도 뭐가 답일지는 뻔합니다. 열을 빼앗기는 것은 표면적이 적을수록 적게 빼앗깁니다. 40평짜리 1층주택보다 20평짜리 2층주택이 표면적이 적기 때문에 춥고 더운 바깥과 접하는 면적이 더 적으므로 열을 빼앗기는 문제에 있어서도 보다 정육면체에 가까운 쪽이 유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골에 전원주택지어 난방비걱정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게 지어지는 전원주택은 제가 위에서 스머프 집으로 말한 집들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네모나 직사각형 1층주택도 아니고 엄청나게 표면적이 넓은 집으로 지어집니다. (그렇게 짓고 노출된 표면적이 작게 만들어진 아파트와 비교하면서 역시 따뜻한 건 아파트야라고 하지요.)
집 내부 구조의 차이
이제까지는 집의 외양에 대해 말했습니다만 집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도 일본집과 한국집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집을 둘러보고 저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자를 때는 사정없이 자르고 그렇지 않을때는 모든 공간을 통합하겠다고.
한국집의 내부 구조를 보면 종종 공간의 배분이 한마디로 똑같은 크기의 공간으로 등분해 놓은 느낌이 듭니다. 이건 한국 아파트도 그렇습니다. 물론 방사이즈는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비슷한 크기의 방들이 있고 부엌과 거실이 있고 그게 전부입니다. 이건 아파트도 그렇죠. 그리고 거기에만 익숙하신 분들은 집이란 본래 그렇게 생긴것이고 그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수 없다고까지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공간은 크게 쓸 때는 큰게 좋지만 자를 때는 자르면 자를 수록 좋습니다. 크게 쓰면 넓어보인다는 것은 당연하므로 자르면 자를수록 좋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칸막이가 많으면 한마디로 집이 미로처럼 됩니다. 그래서 숨을 곳 혹은 뭔가를 숨길 곳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주택전시장에서 보고 마음에 들었던 좁고 긴 서재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그 서재공간은 길이는 3미터가 넘지만 폭은 1미터 쯤 되어 보이는 작고 좁은 공간입니다. 정식방으로는 쓸수 없는 공간인데 벽에다가 책상역할을 하는 선반이 붙박이로 박혀 있어서 의자를 가져다 놓으면 마치 독서실의 자리를 옆으로 길게 늘여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쏙 들어가 앉아있으면 다른 식구들로 부터 떨어져서 혼자 있기 좋은 공간입니다.
큰 안방의 길이 방향의 4분의 1쯤 되는 곳에 1미터 좀 넘어보이는 벽이 솟아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 벽은 바닥에서 솟아나서 천장에 닿지 않고 옆으로도 옆쪽 벽에 닿지 않기 때문에 진짜 막힌 벽은 아닙니다. 소위 가벽이죠. 그러나 그 벽뒤에 책상을 놓고 물건을 놓아서 그것들을 숨길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것들 이외에도 작은 다락방 공간같은 것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즉 집이란 방과 거실로 이뤄졌다라는 것에서 방도 거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짐을 넣는 다용도 실도 아니며 겨우 사람하나 들어갈 것같은 작은 공간들을 몇개나 짜만들어 넣은 구조입니다. 이 작은 공간들은 짐을 넣어두고 숨기는 공간으로 쓸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각자 들어가 방해받고 싶지 않을때 유용한 공간이 됩니다. 사실 집을 2층이나 3층으로 만드는 것자체가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40평짜리 단층보다 20층짜리 2층 건물이 각자 위아래 층에 있을때 서로를 분리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보다 표면적이 작고 여러사람이 들어가도 각자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수 있는 집으로 만드는 것이 일본의 집이며 한국은 그 점에서 상당히 틀립니다. 한국의 집은 한마디로 사생활이 무시되고 다양성이 거세된 단조로운 집입니다. 아파트도 그렇고 단독주택도 그렇습니다.
맺는말
집에 이런 형태가 무조건 좋다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경제적 형편따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르며 기후따라 다르겠지요. 전통적 한국 가옥의 형태는 종종 중앙에 정원을 가지고 1층짜리 건물이 우물정자 형태로 지어진 것입니다. 옛날에 복층을 짓지 않은 것은 2층을 짓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온돌을 설치하는 것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우물정자 형태로 지어진 주택은 식구가 많던 시절 바깥쪽의 바람을 서로 막아주면서도 햇볕은 많이 들어오게 하고 식구들끼리는 서로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주택설계사도 내부 정원이 있는 형태의 가옥은 장점이 많다고 하더군요. 내부 정원쪽은 바깥이면서도 바깥이 아니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방된 구조를 가지면서도 안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전원주택 붐으로 지어지고 있거나 이미 지어진 집들을 보면 대부분 별 생각없이 유럽의 어떤 집을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전통의 집도 아니고 실용을 생각하고 고민한 것같지도 않은 경우가 많아보입니다. 그 결과 건축비는 비싸고 내부 공간은 좁으며 난방비는 더들고 가족간의 프라이버시도 지키기 어려운 집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넓은 땅위에 지어진 단독주택인데도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집이란 건축설계사가 짓는 것도 집주인이 짓는것도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건축설계사는 어떤 집을 지을까를 생각할때 주로 집주인을 바라봅니다. 즉 주문은 어떻게 되십니까 하는 식입니다. 돈내는 것이 건축주이고 자기집이 아니니 고객의 주문에 어느정도 맞추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단독주택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자라난 집주인은 어떤 형태가 가능한 것이고 그 형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되고 지어지는 것들이 바로 스머프 집들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그냥 예쁘다는 생각만 들뿐 재미도 없고 실용도 없는, 껍데기만 멋진 장식용집에 가까운 집이 탄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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