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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산산보보, 도시의 신비감

by 격암(강국진) 2009. 11. 16.

2009.11.16

요 근래에는 일본의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을 산보하는 것을 주말의 일정으로 삼고 있다. 이 집에 산지도 몇년은 되었지만 나는 집주변을 다 모른다. 사실 살다보면 유명한 유원지나 관광지는 여러번 가봐도 정작 집 코앞에 있는 공원은 가보지 않게 되는 일이 있다. 유명하지 않은 곳이니까 그렇다. 모처럼 시간이 나면 남들이 다아는 하코네, 에노시마, 오다이바 같은 곳은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귀찮으면 그냥 집에 있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가까운 곳에 차를 타고 가서 외식을 한다. 그러니 정작 동네구경은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걷는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은 상식이며 굳이 좋은 곳을 찾아 차를 타고 갈 것이 아니라 집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집주변을 탐험하기로 한것이다. 

 

몇주전에는 우리집앞의 공원을 가로질러 그 건너편의 오이즈미 공원을 관통하고 다시 거기서 전에는 가보지 못한 거리를 따라 걸었다. 그 거리와 공원들은 어디다가 관광지이니 와서 보세요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편안하고 즐거운 산보였다. 일단 차를 타지 않으니 뭔가 행사를 하는 것같은데도 시간이 많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좋다는 산이나 들로 가려면 최소 왕복으로 두세시간은 차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절약되고 그런 에너지가 절약되는 것이다. 

 

집을 나와 공원으로 들어서니 뜻밖에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나에 몇십엔하는 것부터 몇백엔 몇천엔 하는 것까지 다양하게 있다. 돌아오는 길에 벼룩시장에 다시 들러서 아이들은 천엔어치씩 장난감을 사고 따로 보드게임을 두개 더 샀다. 아내는 천엔주고 긴 중고 부츠를 사고 메밀국수를 먹는 그릇셋트를 5백엔인가 주고 샀다. 아주 흡족한 쇼핑이었고 즐거운 쇼핑이었다. 돌아와서는 그 그릇에 메밀국수를 담아서 점심을 먹었더랬다. 

 

모르는 길을 따라 걷는것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이렇게 기대하지 않던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날 산책을 했던 날만해도 우리는 벼룩시장 말고도 멋진 카페며 전자상가며 아주 아름다운 일본과자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더랬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얼마오지 않는 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는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배가하고자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복잡한 주택가 골목길로 걸어들어가서 순전히 방향감각에 의거해서 걸었다. 그리고 그길에서도 감이 열린 나무라던가 멋진 채소밭이라던가 집문앞에 놓인 예쁜 개인형따위를 발견하였다. 물론 다시 우리가 아는 길을 찾았을 때도 우리는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며 즐거워 하였다. 

 

이번 주말에는 차로 10분쯤 걸리는 옆동네로 가서 차를 편의점앞에 세워놓고 걸었다. 아이들은 탁구를 치러 보냈고 이번에는 부부둘만 이었다. 우리는 관월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오이즈미 학원역앞까지 걸었다가 다시 반대로 돌아와 걸어서 중고품 물건 파는 가게를 구경했다. 오늘은 비가 왔었다. 그래서 많이 걸을 수는 없었지만 그건 그대로 좋았다. 오이즈미 학원역앞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아침세트를 시키고 비오는 창밖을 보며 커피나 코코아를 마시는 것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멈춰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번에 했던 것처럼 큰 길의 뒷 쪽을 따라 걸었다. 뭔가를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게 되는데 아주 중요한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신비감이다. 뭔가 끝없는 신비를 가진 것은 당연히 두고 두고 봐도 질리지 않고 마치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보인다. 일본의 도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신비감이 없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다. 역전에 가면 전국에 체인을 가진 가게들이 어디나 들어서 있기 때문에 역전앞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그러나 역전을 벗어나 걸으면 일본 도시의 신비감을 금방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고층아파트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대표적 주거형태가 아파트이지만 일본은 저층건물이거나 독립주택이다. 큰 길을 벗어나 뒷길을 따라 걸으면 아주 다양하게 생긴 여러가지 집들을 만난다. 집들이 다양하고 주택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차를 타고 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단독주택과 저층건물들의 바다를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길을 걸어도 왠지 저기 모퉁이를 돌면 뭔가 아주 괴상한 집이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은 귀신 이야기를 하면 믿기가 쉽겠다고 했다. 이렇게 다양한 집들이 있으니 어딘가에 귀신이 나오는 괴상한 집, 괴상한 가게가 있을 법도 한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가게, 몇몇사람들만 알고 방문하는 조그맣지만 따스한 분위기의 가게가 어디 구석에 있을 법도 하다. 주택가를 걷다가 보면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 중고차 가게가 있다던가 까페가 있다던가 아주 멋진 과자가게가 있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도 마찬가지로 신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고층 아파트 숲이 점점 더 싫어진다. 모든 집이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생긴 집들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뭔가 신비가 숨어있을 만한 것이 없다. 아주 멋지게 조경을 해서 산책로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들 신비감이 없다면 그 산책로는 조깅머쉰위를 걷는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운동을 위해 기계적으로 걷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종로의 피맛골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커다란 도시의 한복판에 남들이 잘알지 못하는 보석처럼 숨어있는 허름한 맛집골목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서울이란 도시가 가지는 신비감을 크게 증진 시켜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청계천처럼 콘크리트로 물길을 내서 단지 1분만 보면 신비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장소를 만들었을 때 서울의 사랑스러움은 사실 그만큼 감소하고 만다. 그냥 뻔한 콘크리트 아파트다. 

 

전국의 강들을 깍고 다듬어 어항으로 만들어 버리면 강도 또한 그 신비감을 잃어버리고 말것이다. 수백년 수천년의 역사와 사연을 다듬은 장소가 아니라 그저 몇년전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공원이 되고 만다. 죽어 없어지는 것은 단순히 자연과 그곳에 적응하여 사는 사람들의 삶뿐만이 아니다. 국토의 신비감이 사라지고 만다. 

 

신비감따위 돈안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돈안되는 헛소리같은 신비감때문에 관광산업이 되고 미친 사랑에 목을 매서 인생을 던지고 엄청나게 비싼 돈을 주고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이다. 3백년 역사의 위스키를 판다고 할때 팔리는것은 단순히 맛과 품질이 아니다. 그 가격의 상당부분은 신비감이다. 신비감이 돈이 안된다고? 그 반대다. 싸구려 거주지인 아파트, 품질따위는 상관치 않는 개도국의 사람들은 신비감에 낼 돈이 없다. 그래서 신비감을 무시하는 것이다. 선진국사람들은 신비감에 지갑을 연다. 싸구려 모조품으로 똑같은 것이 무한대로 존재하는 그런 상품에는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음주에는 어느쪽으로 걸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요즘은 즐거움이다. 마르지 않는 신비감을 가진 도시, 그런 사람, 그런 , 그런 나무, 그런 , 그런 , 그런 바닷가, 나는 그런 것들이 좋다. 사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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