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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서로게이트의 현실성과 비현실성

by 격암(강국진) 2009. 11. 9.

9.11.9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하드로 유명한 배우고 화려한 그래픽으로 미래사회를 그리는 영화라면 적어도 오락영화로 충분할 것이 틀림없다. 서로게이트는 적어도 이런 믿음을 배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믿음을 넘어서지는 못할 뿐이다. 

 

 

영화는 20년후의 미래를 그린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살짝 나오는 두개의 실험이 있는데 하나는 원숭이가 로보트 팔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하나는 뇌신호로 휠체어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둘은 실재하는 것으로 영화의 상상력은 이런 기술들이 만들어 낼 미래를 근거로 펼쳐진다. 

 

미래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대리인이라고 부를수 있는 로봇들을 조종하면서 산다. 이것은 로봇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조정되는 것으로 어찌보면 자동차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서로게이트를 보면서 인터넷 아바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 영화는 현재 즉 영화가 그리는 미래의 시대는 잘못되어있다면서 서로게이트의 발명자가 서로게이트 시대를 끝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하는 그리어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서로게이트가 파괴되면서 끝이난다. 

 

현실적으로 영화 서로게이트가 그리는 미래가 올지 안올지는 모른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알 수없다. 그러나 우리는 집집마다 자동차를 가진 시대를 살고 있다. 불가능한 미래는 아니다.

 

이 영화는 대단히 현실적인 영화다. 일단은 실현가능한 기술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많은 미래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미래를 그리는 듯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사실 현실은 이 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악하다. 일단 서로게이트들이 만나며 살아가는 영화 속의 현실을 보자. 

 

지금의 현실에서도 우리는 굉장히 많은 타인들을 만나며 산다. 그 타인들은 내게 개인적의미가 없고 하나의 시스템의 일부로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피자를 주문하면 누군가가 피자를 만들어 내게 가져다 준다던가 매일 아침마다 집앞에 신문이 도착하고 티브이 방송이 나오고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지금의 현실이 영화와 크게 다를 것이 있을까? 

 

영화에서 보면 서로게이트들이 클럽에서 만나서 춤추고 연애를 한다. 현실의 클럽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그들중 상당수는 사실 진실된 서로의 모습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돈을 가진 남자나 뜨거운 몸을 가진 여자등 어떤 필요나 어떤 환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기능'에 집중하여 만날 뿐이다. 육체와 육체가 만난다고 해서 이것이 서로게이트들의 만남이 아닌 것일까?

 

현실이 영화속보다 더 극악하다고 하는 이유는 현실에는 로보트 서로게이트보다 더 강력한 녀석이 이미 세상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인이라고 하는 생명체다. 법인이 법인을 만나서 사업을 하는 시대가 아닌가? 실제 현실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모습만을 보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인은 거대화되고 나름의 내부적 생존논리속에 인간의 개인적 감정은 억누른 생명체로 기능한다. 고작해야 뛰고 날아서 자동차 몇대 부시는 영화속 서로게이트 로봇과 그 파괴력은 상대도 안된다. 삼성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맥도널드같은 법인의 힘은 얼마나 강대한가. 그야말로 산과 강을 파괴하는 살아있는 신적인 존재다.  

 

이 영화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이나 서로게이트의 창시자가 단순히 서로게이트를 파괴함으로서 그 시대를 멈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악이 돈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면서 주식거래 컴퓨터들을 모두 파괴하고 은행의 전산망을 모두 파괴해 버리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자. 그 사람은 영웅일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굶어죽을 것이다. 물자의 흐름은 중단되고 생산된 물건은 소비자에게 닿지 못하며 결국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폭도로 변하고 법질서는 파괴되거나 파괴직전까지 갈것이다. 우리 사회는 거대한 시스템, 거대한 로봇, 거대한 기계다. 그리고 그 기계의 강력한 힘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있다. 분명 그 시스템이 우리는 비인간화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시스템을 파괴해야 할까? 

 

이 주제는 사실 브루스 윌리스의 흥행작 다이하드를 떠올리게도 한다. 항상 외로운 투쟁을 하는 형사였던 존 맥클래인이 외로운 투쟁을 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엉망이기때문이다. 그걸 이용하는 악당이 있고 그래서 그들을 막을수 있는 사람은 악당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형사 존 맥클레인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로게이트는 다이하드를 연상하게 한다. 다만 서로게이트는 인류전체의 시스템을 내려버린다는 설정으로 영화가 끝이나기에 그 무책임성에 놀라게 될뿐이다. 

 

그러나 영화의 감독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것밖에는 답이 없지 않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도 쉬운 답이 있다면 보다 합리적인 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옳다면 가능한 미래는 둘중의 하나거나 모두다. 영화가 그리는 것보다 훨씬 철저하게 기계화된 미래가 되거나 문명의 붕괴라고 말할수 있을 만한 대파국이 필요하다. 더 나쁜 것은 파국은 계속될것이라는 것이다. 답이 없다면 사람들은 계속 서로게이트를 다시 만들어서 사용할 것이다. 그게 편하고 생산성이 좋으니까 그렇다. 그리고 그게 절정에 다다르면 다시 대파국이 올것이다. 답이 없다면 그렇다. 

 

답이 있다면? 그 답은 무얼까? 인류앞에 놓인 커다란 질문이다. 

 

%2022년 현재 테슬라는 로보트 산업에 뛰어 들었을 뿐 아니라 뉴럴링크라는 컴퓨터 인간 인터페이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도하다. 이 두가지 기술을 결합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만 이것의 현실화가 이렇게 가깝게 다가온 것은 모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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